Diary 168

계속되는 고민, 다시 원점으로

짧은 부산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도 계속 연차였다. 오늘 삼일절까지 3일을 더 내리 쉬었다. 특별할 것은 없는 날들이었다. 밤이면 술을 마셨고, 낮에는 쉬었다. 화요일에는 강화도로 짧게 당일치기로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도 했다. 쉴 때는 시간이 참 잘 간다. 무엇인가를 해도,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참 잘 간다. 월요일 낮에 팀장님을 따로 찾아뵈었다. 퇴사에 관해 말씀을 나누기 위한 자리였다. 원래는 퇴사 사실을 통보할 요량이었는데, 팀장님과 대화를 하고 나니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퇴사를 만류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또한 같은 커리어를 거쳐온 선배로서 진심으로 퇴사를 만류하였다. 이직 자체를 말리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이직처를 찾아보는 게 좋을 ..

Diary 2023.03.01

광안대교 앞에서

오늘은 회사의 마지막 재택근무일이다. 3월부터는 재택근무가 완전히 폐지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리 출근을 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일까, 뭐 본질을 무엇이라고 평가하든, 사실상 주4일 근무가 주5일 근무로 돌아오는 셈이다. 내게는 그것이 본질이다. 마지막 재택근무인 금요일을 기념하기 위해, 부산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KTX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5만 9천 800원이다. 6만원으로 하지 왜 굳이 200원을 뺐을까. 예전 학부 때 마케팅 수업에서 저렇게 몇 백원을 빼는 게 소비자의 구매 의사결정에 나름 꽤나 영향을 미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차피 기차는 타야 할 사람은 탈 텐데 왜 굳이 200원을 기어코 뺐을지 모르겠다. 어제는 오후에 반차를 냈다. 서초동 법원 앞에 있는 작은 규모의 사무실..

Diary 2023.02.24

올림픽대로에서

오늘은 오전에 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있다. 팀장님께 미리 말씀 드리고 집에서 바로 법원으로 가는 길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을 더 잤다. 어제 야식으로 순대에 막걸리 그리고 맥주 한 캔을 마셨더니, 더 잔 것에 비해 피로가 풀린 느낌은 부족하다. 나이를 먹나 보다.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피곤하다. 평소보다 특별히 더 피곤한 날에는 선물로 받은 오쏘뮬 영양제를 먹는다. 이제 15개 정도 남았을 것이다. 어떤 선물들은 조금씩 그렇게 소모해버려야 한다. 택시를 불러서 집에서부터 법원까지 가는 길이다. 영등포로터리를 지나 노들길을 따라 올림픽대로에 들어선다. 항상 차가 막히는 올림픽대로이다. 요새 다시 Sting의 Shape of my heart에 꽂혀서 열심히 듣고 있다. 가는 길에 게임도 하고,..

Diary 2023.02.21

토요일 밤을 보내며

2월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공기에서 봄내음이 느껴진다. 며칠째 흐린 하늘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봄이 다가옴이 느껴진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방 안에서 전자담배를 피우느라 살짝 열어둔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다기보다는 시원하다. 이렇게 밤바람을 쐬고 있노라면, 4월에 내리는 봄비가 생각난다. 특별한 날이나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분위기가 생각난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하늘 아래로 얕은 비가 내린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또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끄적이며 노래를 들으며 빗소리를 감상한다. 그러다보면 괜시리 마음이 동해서 하릴 없이 담배나 한 대 태우고 돌아오곤 했다. 따듯하면서도 우울하고, 촉촉하면서도 축축한 기억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강남에 다녀왔다. 한 녀석..

Diary 2023.02.19

수요일은 너무 피곤하다

수요일은 너무 피곤하다. 어제 늦게까지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잠에 들기도 하였지만, 어제 저녁 수영까지 하고 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정신을 차리기까지가 월요일이나 화요일보다 곱절로 힘이 들었다. 집을 나서는 시간도 그에 따라 조금은 늦어졌지만, 다행히 회사에는 9시까지 잘 도착했다. 이번 주부터는 출근길에 뽑아가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사이즈를 벤티에서 그란데로 줄였다. 몸이 부족한 카페인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다음 주부터는 톨로 줄여봐야겠다. 그 다음 주, 3월부터는 아예 커피 없이 버텨볼까도 싶다. 무엇인가에 의존한다는 것은 썩 좋은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타성에 젖은 5년차 직장인 또는 변호사. 업무는 루틴하고 의욕을 품을 만한 성질의 것이 없다. 검토 같지 않은 검토..

Diary 2023.02.15

주말 동안의 기록

이래저래 주말이 흘러갔다. 더딘 듯 빠르게 꾸역꾸역 잘도 흘러간다.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없다는 뜻이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은 허송해버린 날들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이며, 시간이 꾸역꾸역 흘러간다는 것은 생의 유한한 모래시계가 그만큼의 모래알을 아래로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금요일에는 원서를 접수했던 펌에서 쏘리 메일을 받았다. 면접은 당연히 불러줄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에 내심 놀라우면서도 실망스러웠다. 공고의 모집대상 연차를 살짝 넘기긴 했지만 스펙상으로 내가 많이 불리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버스펙이었을까 아니면 원하는 경력이 부족해서였을까. 1월 이직 준비를 시작하면서 패기로웠던 마음이 꽤 많이 꺾여져 나갔다. 상황을 조금 더 냉엄하게 인식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어..

Diary 2023.02.13

나들이와 같은 하루

하루 연차를 내고 쉬었다. 참 잘 쉬었다. 어제 많이 마시기도 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침에 알람을 맞춰두고 어떻게든 일어나 출근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을 뿐이다. 충분한 늦잠을 자고, 느지막히 일어나 엄마가 끓인 김치말이국수로 해장 겸 점심 식사를 요기한다. 다시 조금 누워서 쉬다가, 벼르고 벼러 왔던 타이어 공기압 충전과 세차를 하러 일어났다. BMW 코오롱모터스 서비스 센터가 성산에 있었다. 차량을 체크인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담배도 한 대 태워본다. DMC에 전셋집으로 신혼집을 꾸렸던 친구, DMC에서 치뤘던 첫 바디빌딩 대회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먼 옛날의 일인 것 같지만, 불과 몇 년 전, 몇 달 전이다. 시간은 정말 빠르구나. 앞바퀴 ..

Diary 2023.02.10

시간은 흐른다.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나의 시간은 나의 관점과 인식 속에서 나의 속도로 흘러간다. 때로는 쏜살과 같이, 때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느린 걸음으로. 어제는 또 다시 회식이 있는 저녁이었다. 회식이 잦은 팀은 아니지만, 이번 주는 유독 같이 모여서 기념할 만한 일들이 많이 예정되어 있었다. 내 옆자리에서 일년 반을 함께 일해 온 변호사님의 퇴사 송별과 옆옆옆자리로 새로 합류하신지 한달이 된 변호사님의 입사 축하를 한꺼번에 하는 자리였다. 작년에도 한번 회식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던 광화문의 오리고기 코스 요리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부문장은 칠친주를 참 좋아한다. 별 맛은 없는데, 칠분 안에 친해지는 술이라고 해서 소주 2, 맥주 1, 사이다 ..

Diary 2023.02.09

술과 고기와 악몽과 자부심에 관하여

어제는 회식이 있었다. 김앤장 변호사 분들과의 자리였다. 김앤장 입장에서는 우리가 고객사이니 고객 관리 차원에서 가끔씩 이렇게 모임을 갖는다. 엄밀하게는 우리 회사가 고객사이지, 내가 고객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갈 이유가 사실 없다. 하지만 우리 부문장은 나를 약간 술 상무 개념으로 아는지, 외부 로펌과의 모임 자리에 자꾸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한다.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즐기지 않는다. 특히 같은 세대가 아닌 경우에는 더욱 별로다. 같은 세대라면 그래도 재미있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텐데, 세대가 다른 양반들과는 생애주기의 다른 지점에 서 있기 때문에 함께 공감하며 나눌 이야깃거리가 드물다. 그러니까 어제의 모임은 어르신들의 추억팔이에 헛웃음을 지으며 장단을 맞춰주는 그런 자리였다..

Diary 2023.02.07

나를 추앙하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두고, 자존감이 높은 것 같다고 평했다. 나는 진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까? 자존감. 사전을 황급히 찾아보니,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에 대한 긍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를 잘못 본 것 같다. 아니면, 적어도 그때의 나는 자존감이 높았지만, 지금의 나는 자존감이 낮은 것 같다. 나는 지금 내 모습을 긍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습관처럼 내뱉는 부정적인 말들이 나의 자존을 갉아먹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 힘으로 해결하기에 꽤나 벅찬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밀려들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공허한 생애를 관통할 만한 명징한 인생의 목적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일까? 우울감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가 물거품처럼 사그라들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부재감은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무..

Diary 2023.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