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마땅히 볼 만한 영화가 없었는데, 5월이 되자 오랜만에 극장가로 발걸음을 이끄는 영화들이 몇 편 차례로 개봉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특별한 애착은 없지만, 그래도 근 몇 년간 이 정도 스케일의 영화적 연출을 보여주는 세계관은 또 없기도 하다. 히어로물이 갖는 단순한 서사라는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볼거리와 현란한 CG를 즐길 요량이라면 MCU만한 것이 또 없다.
하지만,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가도 너무 갔다. 어벤저스 4편, 타노스의 핑거 스냅 이후 종료된 세계관에서 억지로 서사를 이어나가려다보니,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수준의 서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중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를 돕고, 스칼렛 위치로 흑화한 완다를 저지하여 우주의 평화를 지켜낸다는 내용이다.
완다가 스칼렛 위치로 흑화하는 계기까지는 그럴 듯 했다. 망상 속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흑화한다는 설정은 오케이. 하지만 극의 중후반부로 치닫을수록 플롯은 엉성해진다. 아메리카라는 소녀는 멀티버스를 여행하는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할 수 없었는데, 극의 절정부에 갑자기 각성한다. 별 계기가 없다. 차라리 도쿄구울처럼 고문 받다가 각성한다는 이야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갑자기 각성을 한다.
더 가관은 멀티버스 포털이 열리고 스칼렛 위치를 악마라고 두려워하는 자식들을 보고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완다이다. 이게 무슨 전래동화급 전개인가... 애초에 그렇게 깨달을 친구였다면 세상을 빻아부수질 말았어야지...
극 중간에는 다리 다친 완다가 절뚝이며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을 쫓는 장면이 있는데, 무슨 좀비물인 줄 알았다. 심지어 좀비물 클리셰(어두운 화면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좀비)까지 동원되었다. 뭔가 많은 요소를 버무리고 싶었던 것은 알겠는데, 플롯이 탄탄하지 못하니까 잘 비벼지지 못했다. 마치 고추장이 구석에 뭉쳐 있는 비빔밥처럼 말이다.
어벤저스 4를 끝으로 MCU는 접는게 나았을 것 같다. 박수칠 때 떠났으면 참 좋았을텐데, 타노스와의 대결 이후 MCU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정말 초라하고 엉성하다.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면서 두 달 전에 개봉한 '더 배트맨'과의 비교가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서 이루어졌다. '조커'의 세계관과 분위기를 계승하는 '더 배트맨'의 음울하지만 설득력 있는 미쟝센이 훨씬 나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MCU가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밝은 느낌이라면, DC의 영화 세계는 음침하고 처절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통찰이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MCU를 참 좋아한다. 메가박스에서 대혼돈의 멀티버스 개봉에 발맞춰 출시한 닥터 스트레인저 텀블러 콤보를 다들 한 손에 쥐고 있더라ㅎㅎㅎ 앞으로 MCU는 영화 풀리면 집에서 누워서 채널 CGV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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