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뜨거운 피 감상 후기

무소의뿔 2022. 3. 25. 11:48

정우 주연의 '뜨거운 피'가 개봉했다. 깡패 영화 덕후라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유튜브로 본 영화 프리뷰 영상이 잘 빠졌길래 기대감도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뭐랄까, 나쁘진 않지만 살짝은 부족하고 아쉬운 느와르였다. 

영화의 배경은 1993년 부산이다.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이 끝난 후 세가 쪼그라든 부산 조폭들이 각자의 셈에 따라 성공하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스토리이다. 시기적으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 직후의 시기로 볼 수 있다. 범죄와의 전쟁으로 당시 활동하던 조폭들이 대거 검거되고, 먹거리가 부족해진 상황이다. 먹을 게 부족해지면 집단 내 그리고 집단 간 갈등이 치열해진다. 이것은 생태학의 공리와도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꽤 치열하게 갈등하고 반목한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하고, 그 과정이 그닥 아름답게 미화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미화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전개를 보여준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처절하고, 어떤 관점에서 보면 추접스럽다. 그게 조폭의 세계인 것이다. 약간은 덤덤한 톤으로 그 세계를 묘사한다.

서사에 조금 더 살을 보태자면, 구암의 손영감(김갑수)와 영도의 남회장(배우 이름을 모르겠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조계장 분이시다)의 아귀다툼에 희수(정우)와 철진(지승현)이 휘말리고, 사실 이 모든 것은 남회장의 설계였고, 희수는 양아들과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그래서 막판 반전으로 다 죽이고 최회장(정호빈, 영화 '친구'의 은기 분이시다)을 바지로 세우고 희수가 결국 구암의 왕이 되는 이야기이다. 

1. 서사 ()

초반 서사의 힘 자체는 나쁘지 않다. 구암이 용강의 빨래방을 습격하고, 희수와 양동이 손 잡고 세를 불려나가는 과정, 그리고 희수가 철진과의 우정 때문에 철진을 기습하고도 끝내 철진을 살려주는 씬까지는 꽤 힘 있고 몰입감 있게 서사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 모든 것이 남회장의 설계였고 희수만 그 큰 그림을 못 보고 체스판 위의 말처럼 움직이다가 이를 깨닫고 각성하는 과정은 다소 이야기의 설득력이 부족했다.

마지막 선상 회동에서의 희수의 반란은 극적이기는 했지만, 영화임을 감안하더라도 총 한 자루로 사태가 평정된다는 게 설명이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특히 남회장의 수하들을 다른 누군가의 수하들이 제압하는 장면은, 그게 누구의 수하인지(용강의 수하인지, 희수의 수하인지, 희수의 수하는 아닐 것이다. 희수가 선상으로 오르는 장면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설명도 없고, 최회장이라는 갑자기 뜬금 없는 인물을 바지로 세우는 설정도 설득력이 부족했다(최회장은 그 전까지 극에서 전혀 역할이 없던 인물이었음).

그리고 희수가 손영감 뒤통수를 후리는 씬에서 뜬금없이 손영감과의 추억 회상 씬을 넣은 것은 진짜 별로였다.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의식에 비추어 봤을 때 희수의 인간적 고뇌를 강조하는 장면은 사족이 아니었나 싶다.

초반에 힘을 너무 많이 빼서 후반으로 갈수록 서사의 설득력과 조밀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 흠이다.

2. 연기(☆)

배우들의 연기는 서사보다는 훨씬 훌륭했다. 정우 배우는 '응답하라 1994' 때보다는 확실히 무거워진 연기 톤과 감정 표현을 보여줬다. 그래도 정우 특유의 그 친근함과 천진함이 여전히 캐릭터의 전반에 녹아 있었다. 정우는 일단 마스크가 너무 선해서, 조금 더 선이 진한 배우를 캐스팅했더라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지승현 배우도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얼굴을 봐서 좋았다. "어이 내 광산 김정완이다" 남자라면 안 본 사람이 없다는 안방 천만 영화 '바람'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긴 지승현 배우. 세월이 흘러도 변함 없는 얼굴이다. 다만, 섬세한 감정 연기와 표정 연기가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는 용강을 연기한 최무성 배우다. '응답하라 1988'의 택이 아빠 연기로 최무성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최무성 연기의 본류는 '악마를 보았다'의 '태주'이다. 모텔 주인을 살인하고 식인하는 미친 싸이코 살인마 연기는 진짜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었지... 최무성 배우의 나사가 두어 개쯤 풀어진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용강' 때문에라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다.

그 밖에 반가운 얼굴들도 많았다. '양동'의 김해곤 배우, '최회장'의 정호빈(은기) 등등. 하지만 이미 느와르 물에서 이미지가 꽤나 많이 소비된 배우들이 재등장해서 연기의 신선도가 다소 부족했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 정우와 지승현 배우의 딕션이 아쉬웠다. 부산 사투리라서 그런가 특히 귀에 대사가 더 잘 안 꽂히는 장면이 몇 군데 있었다. 한국 영화를 보면서 딕션 때문에 답답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아미를 연기한 이홍내 배우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젊은 패기의 신선한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독기에 찬 젊은 청년을 아주 잘 표현해 냈다. 다부진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차기작이 기대되는 배우다. 

3. 총평(☆)

'범죄와의 전쟁'이나 '신세계' 급 명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범작은 아니다. 분명 중간중간 빛이 나는 장면들이 있다. 다만 완성도의 측면에서 살짝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위에도 언급했듯이 최무성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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