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을 쓰려고 지난 기록을 보다가 가장 놀랐던 사실은 지난 마지막 섬 트레킹이 2024. 8. 16.이었다는 것이다! 즉, 의도치는 않았지만, 6개월만에(정확히는 6개월에서 하루가 빠지기는 하지만) 내가 다쳤던 아픔의 그 섬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운명의 장난일까, 그렇게 나는 승봉도로 향했다.
8시 반 배를 타기 위해 8시 정도에 여유 있게 대합실에 도착했다. 날이 따듯해서 오늘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익숙하고 반가운 이름들, 코리아피스, 코리아프린스, 코리아프라이드 등이 엿보인다.
옹진훼미리호를 타고 승봉도로 간다. 여객선 내 TV에서 승봉도의 명소를 소개하는데, 그 중 부채바위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치유의 섬, 승봉도에 왔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반년만에 다시 찾은 승봉도. 지난 아픔은 이번 트레킹으로 완전히 씻어내리라.
큰 놈은 농어, 작은 놈은 가재미이다. 맛이 몹시 궁금하다.
승봉도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파란 지붕. 어떻게 모든 집의 지붕이 죄다 파란 색일 수 있을까? 국가에서 페인트 지원이라도 해줬을까?
승봉도의 또다른 트레이드마크, 무지개 연석. 반년 새 여기저기 땅도 많이 파고 개발 공사가 꽤나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전한 이일레식당의 간판. 마치 전쟁이라도 겪은 듯한 너덜너덜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일레해변. 썰물이라 물이 많이 빠져 있다. 오늘 날이 따듯해서 그런지 파도가 매우 잔잔했다.
승봉도의 남서쪽으로 향하는 도로 옆으로 수령이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소나무숲이 인상적이다. 몸통은 앙상하지만 높이는 상당하다.
오후 배로 돌아나가기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이일레해변을 지나 부두치 해변을 거쳐 목섬을 보고 촛대바위, 부채바위, 삼형제바위, 부채바위 그리고 남대문바위를 모두 둘러보는 코스로 트레킹했다.
이일레 해변보다 조금 더 한산한 느낌의 부두치 해변. 섬의 해안은 언제나 한적하고 고즈넉해서 참 좋다.
촛대바위까지 가는 길은 데크 포장이 잘 되어 있다. 시간이 없는 여행객이라면 촛대바위를 포기하고 부채바위와 남대문바위만 빠르게 도는 코스를 택할 수도 있다.
썰물 때라 목섬까지 땅이 훤히 드러나 있다. 왜 목섬일까? 목과 같은 섬이라서일까, 아니면 나무가 많아서일까?
목섬까지 찍고 북쪽으로 오르면 신황정이 나온다. 아마 승봉도에서 가장 높은 곳인 듯 싶다.
승봉도에 관한 토막지식도 얻어간다. 애초에 신씨와 황씨가 내려왔다고 해서 신황도로 불렸었다니!
신황정에서 내려서 다시 걸어가면 촛대바위가 나온다. 삼형제바위에서 100m 정도 데크 길을 타고 들어가야 볼 수 있는데,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바위다. 모진 세월에도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을까? 우뚝 솟은 모습이 장엄하다.
사실 데크 안 쪽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바위들이 촛대바위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삼형제바위였다. 그래서 세 기둥을 한 사진에 담을 생각을 못 했다... 미안 형제여...
삼형제바위에서 남대문바위로 가는 해안 길은 따로 없다. 포장도로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삼형제바위 인근의 해안을 건너가긴 해야 하는데, 그렇게 위험한 구간은 없다. 이 곳 승봉도의 해안은 아직 침식이 완전히 되지 않아서 중간중간 돌이 참 많다. 해수욕을 즐기기엔 적합치 않아 보인다.
이날 승봉도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연 카페, 작은선배이다. 커피가 다 떨어졌고 오래 전에 내려둔 콜드브루만 있다고 해서, 그거라도 마셨다. 값을 치루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인심 좋게 그냥 내어주셨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콜드브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내온 커피는 트레킹으로 추운 몸을 녹이기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꽤나 맛이 있었단 말이다. 가게 근처에 몇 분 아저씨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길래, 혹시나 싶은 마음에 승봉도 의용소방대원들에 대해 여쭈었다. 그리고 내가 작년 8월 부채바위에서 떨어졌던 장본인임을 밝혔다. 어쩐지 낯이 익다고 반가워하는 아저씨들에게 그때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사실, 주말이고 비수기여서 이 분들을 마주치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빈 손으로 왔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소고기라도 사 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승봉도는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꼭 격을 차려서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만난 눈물의 부채바위. 부채를 펼쳐놓은 것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죽을 뻔한 그곳, 그리고 다시 태어난 그곳을... 다시 보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나는 내가 떨어진 곳이 한 4m 정도인 줄 알았는데, 다시 와서 눈으로 대충 셈해보니 족히 6m는 되보인다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두려워서... 올라가지는 못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안전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게 맞다. 이번에 쇄골이 또 부러지면, 진짜 죽음과 진배가 없다...
상념을 뒤로 한 채 데크 길을 따라 깊은 곳까지 가면 승봉도의 자랑, 남대문바위가 나온다. 코끼리바위라는 별칭도 있는 남대문바위. 코끼리바위라는 이름이 왠지 모르게 더 정겹다. 실제로 보면 정말 코끼리 코 같기도 하다.
기념 사진을 하나 남겨본다. 이렇게 아픔을 극복하며 승봉도 트레킹을 마쳤다.
비수기라 문을 연 식당은 승봉선창식당이 유일했다. 나중에 연안부두에 돌아오고 놀랐던 사실은, 터미널 맞은 편 목 좋은 곳에 승봉선창식당 인천분점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었다..!!!! 승봉도 판 인천상륙작전이 아닐 수 없다.
해물칼국수는 다소 아쉬웠다. 해물이 별로 없었다... 면만 많고...
하지만 멍게 한 접시는 훌륭했다. 멍게가 일단 엄청 뽀얗고 신선하고 맛도 훌륭했다.
지평 막걸리를 한 사발 하고 여객선에 몸을 싣고 눈을 붙이며 돌아왔다. 당일치기로 이렇게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극복하는 나의 BAC 섬&산 22번째 여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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