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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168

인간관계

나에겐 주기적으로 카카오톡을 정리하는 버릇이 있다. 자주는 아니고, 1년에 두어 번 정도? 마구잡이로 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원칙이 있다. 최근 1년을 기준으로 단 한 번이라도 나와 연락한 적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 번도 연락이 없는 사람들은 숨김친구로 상태를 바꾸어 놓는다. 숨김친구는 더 적은 빈도로 정리한다. 숨김친구는 아예 특정 탭으로 들어가야만 확인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자주 확인하는 편은 아니다. 숨김친구에서 삭제로 넘어가면 이제 내가 그 자의 카카오톡 ID나 핸드폰 번호를 따로 알지 않는 한, 완전히 나의 boundary를 벗어나게 된다. 닿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숨김친구 정리는 더욱 신중을 기한다. 2년에 한 번 정도 정리하는 것 같다. 어제 헬스를 하면서 오랜만에 카카오톡을 정..

Diary 2022.06.16

서대문역에 내리면서 드는 잡념

회사에 출근하려면 5호선을 타고 십수 정거장을 이동, 서대문역에 내려야 한다. 서대문역은 참 깊다. 승강장에서 개찰구까지 깊이가 (실제로 재보지는 않았지만) 약 6층 건물 높이는 되지 않을까 싶다. 주변에 회사도 많아서인지 한꺼번에 수백명이 쏟아져 내린다. 그러면 일종의 교통체증 현상이 발생한다. 길은 좁은데 사람은 많으니 병목현상이 발생하는 것. 여기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자, 개찰구까지 나가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첫째, 계단으로 오르는 방법. 이 방법은 제일 신속하게 개찰구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계단이 꽤 높아 오르는데 하체에 상당한 부하가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요새같이 사이클을 자주 타는 때에는 정말 상당히 힘들다. 둘째,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면서 좌측의 걸어올라..

Diary 2022.06.16

친구의 신혼 집들이 방문

내 가장 친한 대학 친구의 신혼 집들이를 다녀왔다. 광교까지 먼 행차였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여정을 떠났다. 사당에서 빨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더워서 참 혼났다. 넷플릭스를 보며, 생활체육지도사 실기 공부를 하며 버스 차창에 몸을 싣고,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광교에 도착했다. 12년 전 즈음에 처음 광교에 갈 일이 있었다. 은사님이 수원에 계셔서 은사님을 뵈러 멀리 수원까지 갔었다. 그때 은사님이 아비뉴 프랑이란 곳으로 날 데려다 주셨다. 그때는 광교에 정말 아비뉴 프랑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마주한 광교는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완연한 신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친구의 신혼집은 신축이었다. 아직 입주가 채 다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지 게이트는 조금은 ..

Diary 2022.06.12

헬스장 드라이어

헬스장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이 아닌 털을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 상상만으로도 비위가 상하지만, 회사 앞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면 그때마다 매번 마주친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드라이어로 사타구니를 말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꼭 그렇게 50대 아저씨들이 정말 드라이어로 온몸 구석구석을 말린다. 앞만 말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뒤(?)까지 아주 꼼꼼하게 말리는 아저씨도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나는 화장대가 자리가 비어도 그 드라이어를 쓰기 싫어 다른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서로 너무 다른 위생 관념, 매너를 가지고 있다. 견디기 힘들다. 진짜 육성으로 "어우, 더러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실 엄밀하게 생각해보면, 드라이어가 직접 그 털에 닿는 것도 아니고, 방금 샤워하고 나왔으니 드라..

Diary 2022.05.30

추억의 모교 방문 (2)

주말, 미루고 미루었던 약속을 드디어 소화했다. 서로 코로나에 걸려서 거의 한 달이 넘게 밀린 약속이었는데, 6월 다이어트를 앞두고 소화하게 되어 마음이 편해졌다. 오랜만에 추억 삼아 모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추억의 우장산역. 원래는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셔틀이 너무 타기 싫어서 혼자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를 했더랬다. 남들과 달라보이고 튀어보이고 싶었던 어린 날이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너무 심해서 셔틀을 타고 나서 배가 아파서 고생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게 더 큰 이유였다. 우장산역에 발산역 쪽으로 반쯤 내려오면 학교 들어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건물 2층에 원래 친구들과 자주 가던 '싸이븐도어'라는 PC방이 있었는데, 망한지 꽤 된 모..

Diary 2022.05.26

마음이 무거웠던 날

로스쿨 동기였던 꽤 친한 형이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끊어져서 연락을 못하고 지냈었는데, 급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퇴근 후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고 차를 몰아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요새 몸집을 키웠더니 허벅지와 허리가 안 맞아서 정장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하고 대충 어두운 바지에 셔츠와 블레이저만 걸쳤다. 마스크 넘어로 형의 얼굴은 형을 처음 봤을 떄와 같았다. 부모를 잃은 슬픔의 무게를 난 가늠할 수 없었다. 형을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반가움을 표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무거웠다. 어떤 감정의 톤으로 어떤 위로의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형은 성실하고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다. 형에게 주어졌던 삶의 조건들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형이 원하는..

Diary 2022.05.20

친구의 결혼식 After Party

몇 손가락 안에 꼽는 나의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2월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당시 청첩 모임을 제대로 못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렸었던지, 친구는 기어이 애프터 파티를 주최하였다. 사실 말이 애프터 파티이지, 대학 시절 같이 밴드 활동을 했었던 선후배들 모임이었다. 밴드 친구들 중에는 여전히 자주 보는 친구들도 있지만, 왕래가 드물어진 친구들도 있다. 열댓명이 모인 오늘 모임은 근 몇 년간 밴드맨들이 모인 것치고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모이는 장소는 꽤나 고급스러워졌지만, 사람과 사람의 합이라는 건 참 신기하게도 변함이 없었다. 10년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떠들썩하고 유쾌하고 즐거웠다. 10년 동안 나의 삶도 친구들의 삶도 참 많이 달라졌다. 마치 나무기둥에서 잔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펼쳐지듯이..

Diary 2022.05.16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은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별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Diary 2022.05.03

추억의 모교 방문

붕 뜬 일요일, 날씨도 좋고 시간을 죽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대학 친구를 불러서 같이 모교를 산책하고 왔다. 버스를 타고 정문을 지나 한참 들어가야 기숙사 삼거리가 나온다. 나는 서울 살아서 한 번도 기숙사를 살아본 적이 없다. 기숙사에 살았더라면 내 대학 생활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겠지. 방풍펜스는 최근에 설치된 것 같다. 나 때는 벤치조차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세상 참 좋아졌다. 인문대에서 교양 수업 들을 일이 있을 때에 주로 5511을 타고 기숙사 삼거리에서 내렸었다. 추억의 버들골. 날이 좋아서 가족 단위로 소풍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학부 때 블랙 데이에 밴드 친구들이랑 다 같이 모여서 짜장면에 막걸리 마시면서 노래 부르고 뛰어놀던 기억이 난다. 버들골 끄트머리에 있는 풍산마당. 축제..

Diary 2022.05.01

학창시절의 추억

논문을 찾아볼 일이 생겨서 오랜만에 대학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우연히 학점란을 보고 들어가 봤다. 와, 진짜 저게 몇 년 전이야... 2014년이 벌써 8년 전이다. 세월의 무성한 흐름에 한 번 놀라고, 내 학점에 또 한 번 놀랐다. 진짜 20대 중반의 나란 녀석,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군 제대하면서 로스쿨 가기로 결심하고, 박살난 학점 갈아엎겠다고 정말이지 세븐일레븐으로 도서관에서 살던 때였다. 우리 학교는 4.3 만점이었으니까, 정말 몇 과목 빼고는 다 A+ 받았다는 거다. 진짜 눈물나게 대견하다 나란 녀석... 특히 2015년 1학기는 정말 미쳤구나. 그때는 틈틈이 LEET 공부도 하던 때였는데, 올 A+를 받았었구나. 진짜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 로스쿨 입시 치르는 2015년 2학기에..

Diary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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