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손가락 안에 꼽는 나의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 2월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당시 청첩 모임을 제대로 못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렸었던지, 친구는 기어이 애프터 파티를 주최하였다. 사실 말이 애프터 파티이지, 대학 시절 같이 밴드 활동을 했었던 선후배들 모임이었다.
밴드 친구들 중에는 여전히 자주 보는 친구들도 있지만, 왕래가 드물어진 친구들도 있다. 열댓명이 모인 오늘 모임은 근 몇 년간 밴드맨들이 모인 것치고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모이는 장소는 꽤나 고급스러워졌지만, 사람과 사람의 합이라는 건 참 신기하게도 변함이 없었다. 10년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떠들썩하고 유쾌하고 즐거웠다.
10년 동안 나의 삶도 친구들의 삶도 참 많이 달라졌다. 마치 나무기둥에서 잔가지가 여러 방향으로 펼쳐지듯이, 각자가 선택한 인생의 궤적에 따라 열심히 삶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바이오 스타트업을 새로 창업한 친구, 스타트업을 엑싯하고 회사원이 된 친구, 굴지의 스타트업에서 C 레벨로 일하고 있는 친구, 의사가 된 친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 등등. 참 다양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몫을 성실히 해내는 친구들이 참 멋있었다.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항상 열심히는 산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겠지. 그릇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봤자 이상한 종착지에 도달할 뿐이다. 인생의 5%는 방향성에 대한 메타적인 반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서른 중반의 문턱을 넘었음에도, 나는 내 삶이 '주어진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음에 대해서 묘한 해방감과 함께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앞으로의 내 삶의 궤적을 나의 의지대로 설계해 나갈 수 있다는 자유와 함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한다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것이다.
웃고 떠들며 같이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10년 전, 우리는 어렸고, 꿈이 많았고, 기타와 드럼과 노래와 사랑을 논했었다. 대단할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돌이켜보니 그 시절 우리는 참 밝게 빛났었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대학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게 내 인생에 몇 없는 큰 기쁨 중 하나이다.
10년 뒤에는 또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친구들 앞에 당당할 수 있게,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게, 조금 더 멋있는 어른이 되어 있고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나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나가보자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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