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미루고 미루었던 약속을 드디어 소화했다. 서로 코로나에 걸려서 거의 한 달이 넘게 밀린 약속이었는데, 6월 다이어트를 앞두고 소화하게 되어 마음이 편해졌다. 오랜만에 추억 삼아 모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추억의 우장산역. 원래는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셔틀이 너무 타기 싫어서 혼자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를 했더랬다. 남들과 달라보이고 튀어보이고 싶었던 어린 날이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는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너무 심해서 셔틀을 타고 나서 배가 아파서 고생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게 더 큰 이유였다.
우장산역에 발산역 쪽으로 반쯤 내려오면 학교 들어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이 건물 2층에 원래 친구들과 자주 가던 '싸이븐도어'라는 PC방이 있었는데, 망한지 꽤 된 모양이다. 야자 도망치고 나와서 PC방에서 이 게임 저 게임 참 열심히 했었더랬다. 특히 피파온라인에 미쳐 있었던 기억이 난다.
황우석 사태 때 문제되었던 그 미즈메디 병원이다. 방학 때 자율학습을 째고 미즈메디 병원 로비에서 친구들과 열심히 노가리까다가 간호사 누나한테 쫓겨난 적도 많았다. 미즈메디는 또 근방에서 화장실 상태가 가장 쾌적하여 애용하였던 기억이 난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학교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어렸을 때는 참 곧고 넓게 느껴졌었는데, 지금 보니 정말 좁은 이차선 도로구나. 아직 그대로인 가게도 있고, 못 보던 가게도 있다. 경기도 외곽 도시 읍내 같은 느낌도 나는 것이, 그때는 정말 이 거리가 삶 그 자체였는데, 새삼스럽다.
잠깐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먹밥을 하나 시켜 먹었다. 곧 저녁을 먹을 요량이라 가볍게 먹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밥양이 많아서 놀랐다. 밥은 많고, 참치는 적고, 명란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비율 균형이 다소 아쉽긴 한데, 가볍게 먹기엔 나쁘지 않았다. 물론 내가 학생 때는 없던 가게이다.
추억의 벧엘서점이다. 학교 앞에서 참고서를 살 때는 벧엘서점을 주로 이용했다. 하지만, 소비자보호법에 반하는 위법적인 매장 운영에 극대노한 사건 이후에는 잘 이용을 안 했던 기억이 난다.
추억의 문방구이다. 근처 모닝글로리와 함께 학교 앞 문방구의 양대산맥이다. 모닝글로리에는 좀 더 팬시한 아이템들이 많았던 반면, 젊은오빠는 학교와의 근접성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컸다. 쉬는 시간에 급하게 준비물을 사올 때 아주 유용하였다. 간판이 햇빛에 거의 삭아버렸다. 세월의 흐름과 무게가 엿보인다.
학교 정문. 오랜만에 보는 정문에 감회가 새롭다. 정문을 통과해 왼쪽으로 꺾어들어가면 우리 학교가 나온다. 선도부와 학생부 선생들이 두발 불량과 복장 불량 및 지각을 잡곤 했다. 끈이 지렁지렁 달린 카고 바지를 입고 갔다고 한번 복장 불량으로 벌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억울해서 학생부장한테 도대체 규제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차량 등에 끈이 끼어 사고 위험이 있어서 금지한다는 놀라운 답변을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학교 건물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토이가 부릅니다, 여전히 그대로인지. 저 빈 아스팔트는 원래 잔디밭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산책도 하는 공간이었다.
예전에는 창고 건물 자리였는데, 헐어내고 휴게 공간을 만들었다. 알록달록한 벽화는 우리 때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갬성이었는데, 상전벽해와 같도다. 저 담이 학생 때는 되게 높게 느껴져서 넘을 때마다 위압감이 들었는데, 지금은 낮은 담처럼 보인다.
5~6년 전인가에 기숙사를 완공하여 이제는 전원 기숙사 배정으로 학교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우리 때는 짤 없이 셔틀버스였다. 나 포함 목동에서 오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인천, 일산, 부천 등지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오는 친구들도 많았다. 셔틀버스를 타는 10시부터 10시 20분 동안이 하루 중에 제일 신나는 순간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하에는 휴게 공간과 편의점, 그리고 헬스장이 있다. 재단의 건물 중에 가장 크고 으리으리하고 최신식이다. 나머지 건물들은 여전히 군대 막사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나마 벽돌을 가장 덜 써서 그런지 신식 건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간식을 먹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 더러는 저기 마주 앉아 라면을 먹으며 썸도 타겠지.
날이 맑아서 사진이 잘 담긴다. 아무리 다시 봐도 멋대가리는 없다. 구령대에 학과별 국기를 걸어놓은게 인상적이다. 어렸을 때는 별 것도 아니면서 묘한 소속감과 경쟁심 때문에 과별로 알력다툼이 많았는데, 특히 매년 봄에 하는 체육대회가 그 갈등이 분출되는 장이었다.
이것저것 건물을 많이 올리느라 운동장이 작아졌다. 흙운동장이라서 점심에 축구하다가 깨지고 쓸려서 오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나는 축구를 별로 안 좋아했다.
풋살장이 있다. 그래도 학생들을 위한 체육시설에 최소한의 투자는 하고 사는 모양이다.
학교 투어의 마무리는 역시 고기와 술이다. 이제는 상전벽해해버린 발산역 사거리의 아무 고깃집에 들어가 못 다 나눈 담소를 나누며 한 주를 마무리한다.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학교가 참 싫었는데, 그래도 졸업하고 나니까 학교에 애정이 간다. 어렸었고, 꿈이 많았었고, 미숙했고, 뜨거웠던 시절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흑역사는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 추억을 잠시나마 꺼내어 보는 게 싫지 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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