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Seoul

[모도우] 코스 요리가 정갈한 한우 전문점

무소의뿔 2022. 5. 9. 17:19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좋은 식당으로 모시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찾아서 예약할 정도의 열정과 의지는 없어서, 어버이날 1주일 전에 부랴부랴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저번 엄마 은퇴 기념식사는 일식집에서 했으니, 이번에는 육고기 메뉴가 좋겠다 싶었다. 한우 오마카세 쪽으로 찾아볼 요량이었는데, 어찌저찌해서 찾은 결과가 '모도우'였다.

https://modowooyeoido.modoo.at/

 

[모도우 여의도점 - Modowoo.]

1++한우와 퓨전 요리 전문 프리미엄 다이닝

modowooyeoido.modoo.at

모도우는 서울에 광화문점, 여의도점, 역삼점, 삼성역점 총 4군데가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집이랑 가까운 여의도점으로 갔다. 여의도 파이낸스 타워는 생전 처음 가는데, 주차장 입구를 못 찾아서 한참을 애를 먹었다ㅋㅋㅋ

단품으로 요리를 팔기도 하는데, 뭘 잘하는 지 모를 때는 그 식당 이름 걸고 하는 메뉴를 먹으라는 말이 있어서(?), 시원하게 모도우 코스로 질렀다. 메인인 한우의 그램 수에 따라 가격에 차등을 두었다. 우리는 100g으로 주문을 했는데, 코스 요리로 먹다보니 100g도 다 먹기 어려울 만큼 배가 불렀다. 특별히 대식가가 아니라면 100g으로 충분할 것 같다.

맞이요리로는 약식, 찹쌀김부각, 곶감치즈가 나왔다. 약식은 평이했고, 찹쌀김부각과 곶감치즈가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특히 곶감치즈가 훌륭했는데, 치즈의 풍미와 곶감의 단맛이 의외로 조합이 괜찮았다. 서로 다른 두 맛이 전달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맛으로 느껴질만큼 조화가 대단했다. 찹쌀김부각도 나쁘진 않았는데, 김부각 특성상 혀에 닿은 이후 맛에 대한 기억이 빠르게 사라져, 지금은 사실 어떤 맛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ㅠㅠ

좋은 요리에는 좋은 술이 빠질 수 없다. 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기울일 '화요25'를 주문했다. 참고로 술값 상당히 비싸다. 각오하고 주문하자.

 두 번째로는 유자 드레싱을 곁들인 새우와 관자 요리가 나왔다. 새우와 관자는 살짝 덜 익힌 찹쌀과 함께 버무려져 있고, 그 위에는 유자맛 젤리(?)가 놓여져 있다. 플레이팅이 참 예뻤는데, 해산물과 유자의 궁합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특히 새우 특유의 그 알싸한 맛을 유자가 잘 잡아줘서 만족스러웠다.

세 번째로는 우니를 살짝 올린 호박과 두부 요리가 나왔다. 호박으로 돌돌 만 두부를 드레싱과 함께 먹는 음식이었는데, 사실 위에 있는 우니는 너무 조금이라 혀에 큰 타격감이 없었다. 오히려 드레싱의 베이스가 된 겨자가 향과 맛이 강렬해서, 식감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코스 안내에는 오징어도 들어있다고 하는데, 혀 끝에서 오징어 맛은 안 느껴졌다ㅎㅎㅎ

데코레이팅으로만 놓고 보면, 가장 만족스러웠던 네품 요리이다. 네 가지 음식을 함께 내온다고 해서 '네품'이라고 이름을 붙였나보다. 얼핏 보고 번데기인줄 알았던 장식재는 미니 솔방울이었다(번데기 나오는 줄 알고 내심 즐거웠다). 아기자기한 데코레이션도 훌륭했는데, 맛도 썩 괜찮았다. 호박죽과 안심 샌드는 평이한 맛이었는데, 새우전과 참깨 떡모찌는 상당히 훌륭했다. 새우전은 전이라고 하기에는 바삭했고 튀김이라고 하기에는 부드러워서 씹는 질감도 좋았고 맛도 좋았다. 참깨 떡모찌는 식용 금박 장식을 덧대었는데, 모찌리도후를 식초 베이스의 육수에 푹 담가 내와서 그런지 도후의 고소한 맛과 시큼한 육수가 잘 어우러졌다.

아빠가 뽑은 베스트 요리이다. 메인은 농어구이인데, 바질 소스를 버무린 보리가 식감이 참 좋았다. 농어 자체도 정말 잘 구워져서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농어의 쫄깃한 식감을 아주 잘 살렸다. 곁들여 나온 무조림까지 아주 잘 조려진 상태라 퍽퍽하거나 너무 물렁하지 않고 적절한 부드러움을 잘 간직했다. 고기 먹으러 가서 생선 요리가 베스트 픽이 된 게 참 재미있다.

드디어 등장한 메인 한우 요리이다. 샤브샤브와 구이 중에 고를 수 있는데, 우리 가족은 구이를 선택했다. 구이는 이미 초벌로 구워져 서빙되는데, 레어 정도의 굽기로 제공된다. 몇 점은 초벌 상태로 먹었는데, 그 자체로도 식감이 정말 훌륭했다. 혀 끝에서 녹는다고나 할까... 정말 좋은 고기를 썼다는 것을 나 같은 막혀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그런 맛이었다. 기름으로 달군 불판이 가운데에 있어, 원하는 굽기로 구워 먹을 수도 있다. 감자 무스와 파채도 상당했는데, 감자 무스는 퍽퍽한 느낌이 전혀 없이 아주 부드러웠고, 파채는 보통 고기집에서 먹는 파채보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었다. 고기 양도 넉넉해서 포만감까지 챙겨갈 수 있었다.

술이 올랐는지, 떡갈비와 한우 미역국 사진은 깜빡하고 찍지 못했다ㅠㅠ 떡갈비는 의외로 평이했는데, 수란과 함께 먹는다는 점이 참신하긴 했지만, 수란과 떡갈비가 유기적으로 섞이는 느낌이 없어서 다소 아쉬웠다. 그냥 떡갈비 한 입 먹고 수란 한 입 먹는 것과 수란을 터뜨려 떡갈비와 함께 먹는 것의 차이가 없는 느낌이랄까... 한우 미역국은 간단한 찬과 함께 제공되는데, 맛이 상당히 훌륭했다. 국물을 뭐로 냈을지 궁금해질만큼 깊은 맛이 있었다.

마지막 디저트로는 키위와 감귤을 올린 청포도 샤베트가 나왔다. 오랜만에 샤베트를 먹어서 그런지 입 안이 청량해지는 느낌이었다. 샤베트 외에 추가적으로 간단한 전통 음료가 한 잔 제공되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원래 다들 식혜나 수정과 한 잔은 주지 않나?ㅎㅎ)

오랜만에 가족들과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가성비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 훌륭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룸에서 가족끼리 조용히 식사할 수 있다는 점, 메인으로 제공되는 한우의 양이 꽤나 넉넉하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듯하다. 재방문의사는 있다. 맛있게 먹었으니, 이제 다시 오트밀과 닭찌찌의 세계로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