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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채식주의자

무소의뿔 2024. 11. 10. 19:51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으로 전국이 난리였다. 8년 전인가 7년 전인가 채식주의자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노벨상 수상작은 '소년이 온다'였지만 그 책은 조금 더 나중에 읽기로 하고, 우선 예전에 읽었던 채식주의자를 다시 꺼내들었다.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일은 나에게는 정말 너무 드문 일이다. 아마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아니었다면 채식주의자를 다시 펴지 않았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는 주인공은 소설의 말미에서 결국 나무가 되었다. 그런데 책을 다시 읽어보니 실제로 나무가 되지는 않았었구나. 나무가 되어가는 중에 소설은 결말을 맺었다. 3개의 소설의 연작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새까맣게 까먹고 있었다. 친족 간의 금지된 묘한 에로티시즘을 소재로 한 '몽고반점'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예 기억 어디에도 없었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는 독서라서, 마치 소설을 처음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20대였던 당시에는 채식주의자가 되게 불편하게 다가왔었다. 에로티시즘에 대한 묘사도 거북했지만, 별다른 대책도 없이 비거니즘을 설파하는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던 듯하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한강 작가가 딱히 비거니즘을 옹호하기 위해 소설을 쓰지는 않은 듯하다. 일상에서의 미묘한 폭력과 권력 관계, 우리의 보통의 삶 속에 파고들어 있는 부조리의 현장을 소설가의 언어로 펼쳐보였던 것일 뿐. 특별히 어떤 사상을 옹호하거나 투쟁하기 위해 소설을 쓰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독서를 하니, 예전에는 읽히지 않았을 것들이 읽힌다. 요새는 소설을 읽을 때 큰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디테일한 묘사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읽는다. 평범한 순간을 생생한 감각의 언어로 포착해내는 소설가들의 말하기 방식을 배우고 싶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소설 말미에 부록된 평론가의 문학적 해설(해설 자체가 하나의 문학처럼 쓰여 있고 읽힌다)도 꽤나 공을 들여 탐독했다.

빨리 '소년이 온다'를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