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읽으려고 산 책이었는데 크게 다치는 바람에 11월 중순이 다 되어서야 완독을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현대철학의 주요 담론들을 이끌어 온 저명한 철학자 24인의 주요 사상과 철학 세계를 얕고 넓게 훝는 책이다. 얕다고는 하지만 철학 비전공자 입장에서는 소위 "토나오게" 어렵다. 철학 특유의 고도의 추상화된 개념 그리고 개념들의 관계에 관한 사변적인 설명은 언제 읽어도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를 훈련시킨다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읽어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 사상가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마르크스 2. 니체 3. 프로이트 4. 후설 5. 베르크손 6. 소쉬르 7. 비트겐슈타인 8. 하이데거 9. 바타유 10. 사르트르 11. 메를로퐁티 12. 블랑쇼 13. 레비나스 14. 아도르노 15. 벤야민 16. 하버마스 17. 라캉 18. 푸코 19. 들뢰즈 20. 데리다 21. 바르트 22. 크리스테바 23. 지제크 24. 아감벤.
니체, 하이데거, 벤야민, 푸코와 같이 익숙한 이름들과 사상세계도 있었고, 라캉, 들뢰즈, 데리자, 지제크와 같이 이름만 알고 그 사상세계의 대강조차 모르고 있었던 철학자들도 있었고, 베르크손, 바타유, 크리스테바, 아감벤과 같이 완전히 새롭게 접하는 세계도 있었다. 사실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읽지는 않아서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보면, 바타유와 라캉의 사상세계가 특히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몸 철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듯하다. 24인의 사상세계에서도 특히 '몸'의 문제, 즉 사회, 문화, 정치, 권력, 세계가 존재 또는 존재자의 몸에 어떻게 아로새겨지고 직조되는가 하는 문제에 천착한다. 저자는 또한 후기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뿌리깊게 고수하고 있는 듯하다. 아카데미에서 맑시즘과 반자본주의적 사고가 얼마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대학을 졸업한지 꽤 시간이 흘러 이런 책을 오랜만에 읽으니 신선하다. 나는 이미 체제에 매우 잘 적응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소개받은 24인의 철학자 중 몇 명은 조금 더 깊이 살펴보고 싶다.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 개념이 특히 신선했고,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개념도 흥미가 생겼다. 특히, 아감벤은 법철학에 가까운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비교적 최근의 철학자라서, 그나마 개념들이 친숙했고 이해도도 다른 학자들에 비해 높았다. 구조주의의 시조 격인 소쉬르도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다. 이 책에서는 구조주의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았는데, 20세기 중후반을 휩쓴 그 사상세계를 모르고 넘어가기는 다소 아쉬울 듯하다.
어찌되었건 의미가 있는 독서 경험이었고, 내 사유의 폭을 아주 조금이나마 넓혀주었다. 때로는 이와 같이 빡센 책도 읽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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