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보문고에 들렸다가 하라리의 신작을 발견하고 바로 구매했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너무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넥서스를 구매하는 것은 전혀 망설여지지가 않았다. '역사에서 유일한 상수는 변화'라는 너무나 간단명료한 명제에서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를 도출해내고,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그 당위를 너무나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이번 신작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주요한 사례 위주로 검토하고, 여기서 얻은 몇 가지 통찰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AI 혁명의 의미를 음미한 후, 미래의 사피엔스 사회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조망한다. 흥미로운 점은 정보와 네트워크 개념에 기초하여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살펴본다는데 있다. 한 두가지의 핵심 주제를 확실히 붙잡아두고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풀어나가는 능력에 있어서는 정말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다. 어떠한 소설가보다도 글이 더 맛깔나고 매력적이다.
다른 종과 구별되는 우리 종의 가장 특별한 점은 '상호주관적 실재'를 창조, 유지, 발전시켜나가는 능력에 있다. 이러한 능력 덕분에 다른 유기체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례 없는 대규모 네트워크의 형성이 가능했었고, 그러한 네트워크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제국이나 종교와 같은 형태로 발전해 왔다는 점을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전작과 달리 고대 아테네와 같은 소규모 사회에서의 제한적 민주주의에 대한 검토가 대폭 보강되었는데, 익숙한 지식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음미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하라리는 '자정 장치'의 유무에 따라 네트워크를 구별하고,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이 전제되는 '민주주의'와 정보의 중앙집중을 목표로 하는 '전체주의'를 비교하며 조망한다. 그리고 네트워크의 존재 의의가 진실 발견 그리고 질서 유지에 있음을 논증한 후, 우리가 당면한 AI의 급진적인 발전과 이러한 발전상이 우리 종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으로 다가올지를 살펴본다.
'호모 데우스'에서의 통찰이 더욱 예리해졌고, 당시 근미래에 대해 논의했던 몇 가지 주제들은 이미 현실이 되어버렸다. 정말 AI 분야의 발전 속도는 놀랍기 그지 없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해갈지 상상조차 안 될 지경이다. 하라리의 미래에 대한 조언은 근심 많은 의사의 잔소리와도 같다고 느껴진다. 우리 종의 미래는 조지 오웰의 1984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아닌,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자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막연한 낙관론도 위험하지만, 지나친 비관론도 무용하다. 다만, 그럼에도 하라리의 논의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은 너무나 명료하다.
인간 사회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대체로 균형점을 잘 찾아왔지만 그 사이에 사피엔스가 치뤄야 할 대가는 적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AI 혁명이 인간 사회가 경험했던 다른 사건들과는 (역사상 최초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네트워크의 구성원이 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건이라는 점, 그렇기 때문에 AI를 민주적 통제 하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점. 하라리는 이 점들을 가장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AI 업계의 거물들이 모여 6개월 간 한시적 AI 연구 중단을 주장한 것은 귀를 귀울여 볼만한 일이다. 어차피 기술은 계속 개발되고 고도화되겠지만, 스스로 돌아볼 시간은 필요하다. 우리의 대부분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고, 그 의미를 아는 자들조차 이 변화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뺨을 맞아도 내가 뺨을 때리면 남이 때리는 것보다 덜 아픈 법이다. 오랜만에 (세계시민적 차원에서의) 경각심을 느낀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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