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맞아 유명산을 찾았다. 서울에서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가평에 위치한 산이다. 산 초입까지 캠핑장이 많아서 길을 찾는데 애를 좀 먹었는데, 유명산자연휴양림을 찍고 이동하면 편리하다. 휴양림과 등산로가 함께 있다. 주차료를 받는데, 일일 3,000원이다. 등산 코스는 빠르게 정상을 찍고 완만한 능선으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등산 시작이 조금 지연된 관계로 왔던 길로 그대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본격적인 등산로에 진입하기 전에 이쁜 얼음 조형물이 있다. 처음에는 분수가 얼어서 저렇게 된 건가 싶었는데, 문과의 상식으로도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인공적인 조형물일 것이다.
설산을 오르는 매력 중의 하나는 앞선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는 데 있다. 길과 길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애매하다. 앞서 오른 이의 발자취만이 여기가 길임을 증명한다. 그렇게 발자국 위에 발자국을 보태면서 길이 완성된다.
헐벗은 나무들을 보면서 봄과 여름의 유명산을 상상해본다. 아마 푸르를 것이다.
중턱 즈음 올랐을 때 저 너머 산등성이가 듬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겨울산이 몹시 추워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뿌리가 들려버린 고목을 응시한다. 중턱 이후부터는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는데, 유독 밑동이 굵은 녀석인데도 맥 없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 위로 살포시 쌓인 눈이 아련하다.
햇빛을 많이 받으려고 했는지 침엽수의 가지가 수평으로 곧고 길게 뻗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시 설산을 타고 오른다. 등산 거리가 짧은 만큼 오르는 경사가 가팔라서 꽤나 힘이 든다.
중간에서 마주친 눈오리ㅋㅋㅋㅋ 누가 여기까지 눈오리 만드는 기구를 가져올 생각을 했구나. 귀여운 오리 때문에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이제 이 계단을 오르고 나면 드디어 유명산 정상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유명산 정산에서 바라본 강원도 방면. 저 위에 기상 관측 기지가 있는지 꽤나 큰 규모의 캠프가 들어서 있다.
저 멀리 남한강을 끼고 있는 작은 도시가 양평이다. 남한강이 명징하게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확실히 남한강은 참 큰 강이다. 작년 여름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느라 충주에서 하남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언젠가 나도 저 강폭 속의 존재였구나.
설 연휴라 그런지 등산객이 많지 않았다. 저번 감악산보다는 정상 평원이 넓지 않았지만 풍광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저물어가는 해와 흘러가는 남한강. 폭폭이 쌓인 산등성이를 보며 감상에 젖어본다.
정상 표지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본다.
추락을 주의하며 기념사진을 찍어본다.
눈오리 빌런이 정상까지 왔었구나. 원앙처럼 마주 보고 있는 눈오리들.
파괴왕이 다녀간 후 이혼 위기의 오리 부부...ㅋㅋㅋㅋㅋ
경치가 수려해서 하산하기 몹시 아쉬웠다.
마지막 한 100m 구간에서 살짝 길을 잘못 들었지만, 금방 길을 찾았다. 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사람의 발자국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이 작은 패임들은 산새들의 자취겠지.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많은 존재들이 이 산을 오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짧고 굵은 유명산 등정을 마쳤다. 질감이 꽤 좋은 눈을 뽀드득 밟으며 오르는 설산 여행. 설을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진정으로 열어보자는 다짐을 속으로 남겨본다.
'Mounta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100대 명산 정복기] [006] [금정산] 2023. 2. 25. 토 (0) | 2023.03.01 |
---|---|
[한국 100대 명산 정복기] [005] [변산] 2023. 1. 23. 월 (0) | 2023.01.25 |
[한국 100대 명산 정복기] [003] [감악산] 2023. 1. 1. 일. (0) | 2023.01.01 |
[한국 100대 명산 정복기] [002] [마니산] 2022. 12. 25. 일. (0) | 2022.12.25 |
[한국 100대 명산 정복기] [001] [한라산] 2022. 10. 29. 토. (0) | 2022.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