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Domestic

2022 제주 가족 여행 - Day.4

무소의뿔 2022. 11. 17. 17:11

엄마와의 4일차 일정은 성산일출봉에서 일출 보기로 시작했다. 엄마는 평소에도 9시 정도에 잠에 들고 5시에 일어난다. 나는 무슨 할머니냐고 매일 핀잔했지만, 이번에는 엄마를 위한 여행이니 엄마의 바이오리듬에 나를 맞출 차례다. 안 그래도 전날 일찍 잠에 들어서 5시에 일어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엄마는 약 때문이라도 아침을 꼭 먹어야 해서 전날 편의점에서 미리 사둔 누룽지를 끓여서 간단히 먹었고, 나는 옆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어딜 가도 아들을 먹일 생각은 엄마만이 한다.

성산일출봉은 일출을 보러 새벽에 오는 관광객에게는 따로 입장료를 걷지 않는다. 성인 1명당 5,000원이니 모자를 합쳐 1만원이 굳은 셈. 봉을 오르면서 어느새 조금씩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한다. 꽤 올라와서 성산포구와 마을을 내려다보는데 경치가 훌륭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하여 제때 일출을 볼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 있어서 일출을 못 볼 가능성이 높았는데, 마침 수평선 부근에는 구름이 걸리는 게 없었다. 해는 금세 구름층으로 숨어들어갔지만, 말갛게 피어오르는 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귀한 경험이다. 특히 해가 저 먼 바다의 이름 모를 외딴 섬을 품은 채로 솟아오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정말 여기 성산에서만, 그리고 딱 그 날에만 볼 수 있는 값진 장면이었다. 체력이 좋지 않고 오르막을 힘들어하는 엄마였지만, 엄마도 선명한 일출을 보고 만족한 듯 보였다.

일출봉을 내려오니 이제는 완연히 솟아오른 태양이 아침을 알리고 있다. 봉우리 뒤편에서 구름 속에 숨어 밝게 타오르는 태양은 무엇인가 희망과 새로운 도약, 웅비 이런 느낌들을 자아낸다. 아주 만족스러운 일출 구경이었다.

일출을 봤으니 또 밥을 먹을 때가 되었다. 성산일출봉은 일출 관광 때문에 아침 장사를 하는 가게가 몇 군데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가까운 ‘우뭇개 일번지’로 향했다. 특별한 요리를 파는 가게는 아니지만, 아침 식사로 먹기에 부족함이 없는 메뉴들을 주로 취급한다. 엄마는 보말콩나물해장국을, 나는 소고기덮밥을 각각 시켜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식사를 마친 우리 모자는 근처의 선착장으로 이동해 우도로 가는 배를 탔다. 오전 일정은 우도 투어. 2인이 탈 수 있게 개조된 전기 스쿠터를 타고 우도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이번에 ㄷ저 스쿠터를 빌리면서 또 알게 된 사실인데, 만 55세를 넘는 자한테는 저 스쿠터를 대여해주지 않는다. 사고 위험 때문인데, 나야 어렸을 때 스쿠터를 타고 다녀서 운전이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어르신들은 정말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고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무게중심이 밸런스가 어그러져 있어 회전할 때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핑크핑크한 녀석으로 대여를 했는데, 엄마의 핑크색 바람막이와 깔맞춤이다.

엄마와 나는 우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우도 자체가 큰 섬이 아니라 2시간 반이면 다 돌아볼 수가 있다. 바람이 엄청 불어서 바닷가로 나가면 꽤나 쌀쌀했다. 첫 날에는 포즈며 웃음이며 꽤나 어색했던 엄마도 이제 여행 4일차가 되니까 곧잘 포즈도 취하고 미소도 내비친다.

우도가 우도가 된 이유는 제주에서 본 섬의 모습이 누운 소와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 우도봉을 오를까 말까 고민했는데, 안 오르기로 결정했다. 피곤하기도 했고, 나중에 다시 우도를 찾았을 때 처음 하는 것이 하나 정도는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주상절리와 푸른 바다가 참 아름다운 절경을 이룬다.

우도에는 죽은 산호가 모래처럼 되어 해변을 이룬, 산호사 해변이 있다. 정말 일반 모래가 아닌 산호 알갱이가 백사장처럼 펼쳐져 있었다. 산호라 그런지 모래처럼 들러붙지 않고 잘 털어졌고, 파도가 치고간 후에도 물이 금방 빠진다. 모래화된 산호도 이렇게 예쁜데, 진짜 산호는 얼마나 예쁠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살아있는 산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도에서의 오전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서귀포 시내로 향했다. 갈치조림을 먹으러 가는 길에 서귀포 최애 김밥집인 ‘오는정김밥’에서 저녁으로 먹을 김밥 세 줄을 픽업했다. 2020년에 한 번 먹었었는데, 그때 얼마나 맛에 감동을 했는지 2년이 지난 아직도 잊지 않고 벼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먹으러 왔다. 호텔이 서귀포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했는데 일정상 저녁을 먹으러 다시 차를 끌고 나오기가 애매해서 간단하게 먹을 요량으로 오는정김밥을 미리 전화 주문하고 시간을 맞춰 픽업했다. 진짜 너무 맛있다. 오는정김밥, 깻잎김밥 그리고 멸치김밥 세 줄을 주문했는데,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두 맛있다.

점심으로는 갈치조림을 먹었다. 바다어멍이라고 유튜버 핫둘제주가 추천한 갈치 전문점으로 갔는데, 물론 맛있긴 했지만 정말 죽을만큼 맛있는, 눈물 나는 맛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스끼가 조금 부족해서 이런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돌아본다. 사실 나는 애당초 조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구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엄마가 조림을 먹고 싶어해서 조림을 택했다. 엄마는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 엄마가 만족하면 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서귀포에서 가까운 중산간에 위치한 ‘서귀포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서귀포 치유의 숲은 미리 사전에 예약을 해야 편하게 입장할 수 있는데, 우리가 갔던 날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고즈넉하게 숲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수령이 상당한 나무들이 많아서 길쭉길쭉하게 뻗은 모양새가 참 시원했다. 숲의 공기는 도시의 공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서늘하면서도 습하지 않아 자꾸 깊게 숨을 쉬게 만든다.

4일차 여정의 마지막 코스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표선해변으로 정했다. 표선해변은 만이 넓고 깊게 형성되어 있어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휴양하기에 좋은 해변이다. 함덕 같은 짜릿한 청량한 에메랄드빛은 아니지만, 해질녘 고즈넉하게 물들어가는 표선만의 또 넉넉한 맛이 느껴졌다. 아무리 제주 바다라도 가을이 깊어서 물이 꽤나 찰텐데 아이들은 겁도 없이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모래놀이에 열심이다. 그렇게 여행 4일차의 저녁이 물들어간다. 이제는 여행의 마지막 하루만을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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