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제주도에 내려가서 완독하려고 3월에 교보문고에서 충동 구매한 책이었다. 서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내 눈에 들어왔던 책은 '톨스토이 단편선'과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두 권이었는데,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읽을 요량으로 톨스토이 단편선을 집어들었다. 아무래도 단편소설 여러 개를 묶어놓은 책이다보니, 길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중간중간 편하게 독서의 호흡을 끊어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톨스토이는 이름만 알고 있지, 그의 소설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러시아의 대문호라고 하니, 깊이 있는 울림 있는 글을 썼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앞의 몇 편을 읽다 보니 '단편선'으로 엮인 소설들의 주제가 명확하게 보였다. 나중에 따로 찾아보고 알았는데, 톨스토이가 말년에 몸이 크게 아프고 나서 신과 종교에 귀의하여 삶을 살았다고 한다. 단편선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때 쓰여진 이야기들이었다.
단편선에는 총 12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 버려 둔 불꽃이 집을 태운다 3. 두 노인 4.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5. 바보 이반의 이야기 6. 작은 악마와 빵 조각 7.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8. 달걀만한 낟알 9. 대자 10. 빈 북 11. 수라트의 찻집 12.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12편의 작품의 주제의식은 하나로 통한다. 어떠한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물론 그 교훈은 다분히 종교적이고 신앙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종교의 색채가 거부감이 들 정도로 과도하지는 않았다. 단지, 현대가 아닌 먼 옛날에 사람들이 마음 속에 신을 갖고 살아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을 잊고 살아가는, 아니 신성에 대해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는 오늘날의 사람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레미제라블 같은 거대한 서사와 인간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바랬던 내게는, 책의 내용이 다소 밋밋하고 고전 소설마냥 주인공들의 입체감도 없고, 교훈이 테마가 되다 보니 서사도 엉성하고, 묘사도 빈약했다. 읽는 재미 자체만 놓고 보면 현대의 독자들에게 딱히 맞는 소설은 아닐 수 있다. 그래도, 삶의 자세에 대해 한번 돌이켜보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주인공은 미련할 정도로 순박하고, 어떤 이는 미련할 정도로 성실하고, 어떤 이는 탐욕스러웠다. 순박하고 성실한 자에게는 축복이 돌아오고, 탐욕스러운 자에게는 불행이 찾아왔다.
12편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와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두 개였다. 교훈과 함께 서사도 나름 흥미진진해서 몰입감 있게 다가왔다. 내용을 스포할 수는 없지만, 꼭 두 편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이 다 늙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내가 게을러서 책을 오래 붙잡고 있었지만, 제대로 읽으면 3시간이면 완독이 가능할 정도로 가벼운 책이다. 다음 번에는 미처 고르지 못했던 니체의 책을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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