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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터 아이작슨 - 코드 브레이커

무소의뿔 2022. 4. 3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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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의 서재로 4월에 완독한 책이다. 서점 매대에 꽤 오랜 기간 진열되어 있어서, 서점에 들릴 때마다 한 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막상 완독을 하고 나니 참 뿌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이 생각보다 길었다... 밀리의 서재 전체화면을 기준으로 거의 600 페이지에 육박했으니 말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가서 애가 탔지만, 완독을 하고 나니 기대했던 것보다 얻은 게 많았다. 단순히 제니퍼 다우드나 개인에 관한 전기를 뛰어넘어, 생물학의 발전사로서의 성격까지 겸하고 있어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크리스퍼라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해 잘 알게 된 점이 만족스럽다.

다우드나가 20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라는 사실도 몰랐을 만큼 과학계의 동향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나이지만, 나같은 문외한도 생물학의 세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책은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책을 읽고 난 나의 소감이다.

1.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과학자로 살고 싶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택해버려서 쭉 문과인으로서 살아왔다. 나는 성장기 동안 인간과 사회, 그리고 다양한 사상과 삶의 실천적 지침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그 역시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배움의 시간들이었지만, 코드 브레이커를 읽고 과학에 투신한 삶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 예컨대 세상에 없던 지식의 창출이랄까, 베일을 벗겨가며 자연과 우주와 인간의 진실을 파헤치는 재미랄까, 뭐 그런 류의 앎과 탐구의 재미를 내 업으로 삼고 산다면 그 또한 정말 재미있는 삶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아니면 대학을 미국으로 진학했어야 했을 것이다. 열정으로 뭉친 학계의 파이오니어들이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는 그 과정은 정말 역동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지만, 한반도라는 좁은 환경적 세팅 하에서는 사실 과학 연구의 변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사람이라면 나무보다는 숲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높은 산봉우리에서 세상을 조망하듯 높고 넓은 통찰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계의 가장 미세한 일부분만을 집약적으로 파고들어야만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과학과 기술의 속성을 별로 탐탁치 않아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세상의 실천적인 변화와 변혁은 그런 아주 사소한 과학적 발견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2. 누군가는 파도를 피해 해안가로 숨지만, 누군가는 파도를 탄다.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는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모든 이들의 삶의 형태를 돌이킬 수 없게 뒤집어 놓았다. 대중으로서 나는 코로나로부터 도망치기 바빴고, 나를 지키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과학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 분자생물학자, 생화학자, 미생물학자, 바이러스 연구가, RNA 연구자, 이들은 코로나를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코로나를 계기로 생명의 미시세계에 대해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갔다.

꼭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코로나로 인한 격변을 기회로 보고 성취로 나아간 사람도 많다. 연준의 사상 초유의 양적 완화를 기회로 포착하고 주식과 코인 투자로 소위 대박을 친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고, 비대면 환경의 발달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삼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어떤 삶을 살았나 반추하게 된다. 여기저기 발만 걸쳐 놓고 실제로 제대로 실천한 것은 없었다. 파도에 휩쓸리듯 이리저리 대중 없이 흐르는 대로 살았다. 파도를 타는 서퍼가 되었어야 했다.

3. 나의 주어진 삶을 더욱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물론 지금도 나는 왠만한 사람보다는 열심히 살지만, 이제는 열정의 방향성까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특히나 우리의 젊음은 더더욱 한정적이다. 그러니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 많은 실천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성취해 나가야 한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행복이다. 그러니 현재의 행복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미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균형된 삶을 살아야 한다.

4. 생명의 편집, 미래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다.

책을 읽으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이미 생식 계열 편집으로 태어난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런 사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으니, 정말 사람이란 항상 눈과 귀를 크게 열고 급변하는 세상을 받아들이려 분주히 노력하지 않으면 금세 도태된다는 점을 다시 깨달았다. 가타카의 미래가 우리 다음 혹은 그 다음 세대에는 정말 펼쳐질지도 모른다.

기술의 적용이라는 것은 책에서도 말하듯이 한번 이루어지고 나면 그 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1970년대에는 체외수정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있었다는 점이 참 흥미로웠다. 체외수정은 이제는 난임부부를 위한 일반적인 시술이다. 체외수정 여부를 두고 누구도 윤리적 고민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의 사태가 인간의 생식 계열 유전자 편집에도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 평등을 비롯한 다양한 가치에 대해 철학적 고민을 해야 한다. 어쩌면 미래 사회의 철학적, 사회적, 윤리적 논의는 작금의 그것과는 근본 틀 자체에서부터 달라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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