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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신, 만들어진 위험
신과 인간 사이 가장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선 세계적 석학, 다윈 이후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그가 인류를 위협하는 비합리적 믿음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낱낱이 파헤친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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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11월에 읽었던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고등학교 때 논술 공부를 하면서 그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대학교 때 진화인류학 수업을 들으면서 조금 더 심도 있게 접한 생물학자이다. 대학교 때 많은 과목에서 지적인 자극을 얻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분야는 진화생물학 쪽이었던 것 같다. 다른 과학 분야와는 다르게 비루한 문과 출신도 꽤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진화생물학의 장점이었다. 비록 내 전공 과목은 아니었지만 내가 세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해준 효자 과목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었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기억난다. 책을 읽은지 10년이 훨씬 넘어서 주요한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핵심 메시지는 아직도 내게 각인되어 있다. 모든 생물의 행동에는 유전자 층위에서의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은 마치 내 존재가 해체되는 경험이었다. 내가 나임을 믿는다는 것, 나의 명징한 존재를 안다는 것, 나의 행동은 온전한 나의 자유의지에 근거한다는 것. 그것이 리처드 도킨스를 알기 전까지의 나와 개인과 세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수만가지 행위는 유전자 차원에서의 원초적인 명령어의 발현이라는 게 도킨스가 알려준 교훈이었다. ('자아'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에 뇌과학 입문서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전투적인 무신론자로도 유명하다. 언제부터 내가 전투적인 무신론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종교에는 큰 흥미가 없긴 했다. 할머니의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르긴 했지만, 사실상 딱히 종교가 없는 집안이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성장하면서 나는 나의 세상에 대한 인식이 하나의 거대한 통합된 관점을 이루기를 바랬다. 원자에서부터 우주까지, 개인부터 사회까지, 세상에 대한 이해와 우주에 대한 이해가 모순 없이 정합적인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내게 대학에서의 공부 과정은 단단한 통합된 세계관을 확립해나가는 여정이었다. (물론 사실(Fact)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당위, 윤리의 차원의 세계관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신과 종교의 문제는 내게 있어서 오래 전에 정리된 문제였다. 이 세상의 질서와 균형을 주재하는 초월적인 존재는 없고, 나와 세상의 존재에는 어떠한 당위성이나 필연성은 없다는 것이 신에 대한 내 오래된 관점이었다. 종교의 문제는 더욱 간단했다. 모든 종교는 자기들만의 서사(narrative)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종교가 있다. 그렇다면, 세상의 무수한 종교 중에 단 하나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고, 나머지 모든 종교는 거짓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종교 중에 객관적으로 사실인 서사를 서술하고 있는 종교가 있다면 말이다. 그것보다는 인간이 종교적인 마음을 갖도록 진화하였고(진화론적 설명), 종교가 사회의 유지, 통합,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출현하였다는 것이(사회학적 설명) 훨씬 합리적이다. (종교의 기능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세계 종교의 역사'라는 책의 독후감에서 다루기로 한다.)
'신, 만들어진 위험'의 앞의 10장은 종교가 왜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를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분석한다. 여기까지는 사실 기존 리처드 도킨스의 아이디어를 정리한 내용이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무신론의 대표 논거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11장부터가 이 책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종교적인 마음을 갖도록 진화한 이유에 대해 최신의 진화생물학적인 논의를 소개한다. 예전에 대학 때 배웠던 내용이 환기되면서 내 흥미를 끌었다.
종교는 참 어려운 주제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고 있고, 신의 존재를 믿는다. 여전히 누군가는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뺐는다. 누군가 내게 교회에 나갈 것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을 위해 교회를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세상에 대한 나의 이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배워온 것들, 즉, 이미 나 자신이 되어버린 그 모든 '앎'에 정면으로 반하는 특정한 종교를 내가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나는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할 수는 있겠지만(행위의 차원), 내 앎을 모두 버리고 초월적 존재를 내 마음 속에 품을 수는 없었다(신앙의 차원). 그건 나를 죽이라는 요구와 같았다.
도킨스의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발췌하면서 이만 독후감을 줄인다.
이제 핵심을 좀 더 전문적으로 표현해보겠다. 인간은 행위자(agency)를 믿는 경향이 있다. 행위자가 무엇일까? 행위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존재이다. 바람이 긴 풀을 바스락거리게 할 때는 행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은 행위자가 아니다. 사자는 행위자이다. 사자는 여러분을 잡아먹으려는 목적을 가진 행위자이다. 사자는 여러분을 잡기 위해 정교한 방법으로 행동을 수정하고, 도망치려는 여러분의 노력을 좌절시키기 위해 힘차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행위자는 무서워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괜히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행위자인 줄 알았던 것이 실제로는 바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평균적으로 위험할수록 모든 곳에서 행위자를 보는 쪽으로, 그래서 때때로 거짓을 믿는 쪽으로 균형이 옮겨가야 한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찾는다. ... 우리는 패턴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때 패턴이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리고 패턴이 실제로 존재할 때 패턴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통계 전문가로 알려진 수학자들은 우리가 이런 패턴을 인식하려 할 때 실수하는 두 가지 방식을 구별한다. 그들은 이 둘을 거짓 긍정(false positive)과 거짓 부정(false negative)이라고 일컫는다. ... 모기에 물리는 것과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 사이에는 패턴이 실제로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아서 1897년 로널드 로스가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검은 고양이를 보는 것과 불행이 찾아오는 것 사이에는 패턴이 없다. 하지만 미신을 믿는 많은 사람이 그 거짓 긍정을 믿는다. 작년에 우리가 비의 신한테 기도했더니 비가 내렸다. 분명 이 패턴에는 어떤 의미가 있겠지? 아니다. 의미가 없다. 그것은 거짓 긍정이다. 어쨌든 비는 왔을 것이다. 하지만 미신을 떨치기는 어렵다. ...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확실한데, 특정한 결과를 원할 때마다 사람들은 기도하거나 미신 같은 버릇을 기르는 경향이 있다. 미신 그 자체는 아마도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세계에서 패턴을 찾는 일반적 경향 - 중요한 사건이 어떤 다른 사건에 뒤따르는 경향이 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것-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신은 이것의 부산물이었다. 얼룩말이 잡아먹힐 위험과 굶어 죽을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패턴을 찾는 인간도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했다. 패턴이 없을 때 패턴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미신적 거짓 긍정)의 위험과 패턴이 있을 때 패턴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거짓 부정)의 위험이다. 패턴을 알아차리는 경향은 자연선택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미신과 종교적 믿음은 그 경향의 부산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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