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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피케티 - 자본과 이데올로기

무소의뿔 2025. 4. 19. 16:55

몇 년 전에 사 놓고 앞부분만 조금 읽다가 잊혀졌던 책인데, 작년 초겨울부터 장기 프로젝트로 해서 드디어 피케티 책을 완독했다! 하루에 15 ~ 20 페이지씩 꾸준하게 읽어나갔고, 총 10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결국 다 읽어냈다. 내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특유의 번역투 문체가 거슬렸고, 프랑스 어를 번역한 책이라 그런가 되게 문장이 만연체여서 가독성이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근대 이전 사회의 불평등체제 분석에 관한 내용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책을 집어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근대부터는 나름 흥미 있게 읽을만 했다.

책의 양은 정말 방대하지만, 핵심 메시지는 간결하다. 모든 사회의 불평등 체제는 나름의 연원과 그렇게 형성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이 있고, 그러한 불평등 체제는 그 사회와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 유지, 변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지만, 이 명제를 실증적으로 검증해 내는데 이 책의 근본적인 의의가 있다고 본다.

요약하면, 구래의 사회에서도, 전근대 사회에서도,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양차대전까지 소유가 집중되는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어 왔고, 양차대전 이후 후기 자본주의 도래 전까지 사민주의가 우세하던 시절에 불평등이 감소했고, 후기 자본주의(저자는 하이퍼자본주의라고 부른다)가 도래하면서 다시 소유의 집중과 불평등의 심화 현상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평등이 낮았던 사회가 더 생산성이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미래 사회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진세를 확대하고, 소유에 대하여 실질적인 누진적 성격을 가진 조세 체계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유 문제 외에 경계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분석하는데, 불평등의 심화가 각국으로 하여금 정체성주의적 퇴행을 겪게 한다는 점도 명료하게 분석해 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서 있는 지평의 가장 반대의 극단에서 세계를 고민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하이퍼 자본주의 사회에 완벽하게 적응해버려서, 나에게 부과되는 세금에 대해 극렬히 분노하는 입장으로 30대를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피케티 식의 급진적 정책이 과연 도입되어야 마땅한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해야 겠지만, 나의 경제적,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세상을 사유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이번 독서의 큰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