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이하여 덕적도로 섬&산 투어를 다녀왔다. 원래는 연평도를 당일치기로 다녀올 계획이었다. 동인천에서 8시에 출발하는 배로 연평도에 들어갔다가, 연평도에서 15시 30분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다시 동인천으로 돌아오려고 표를 미리 다 예매해 두었다. 바다로 할인을 받았음에도 불구, 10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이었다. 그런데, 연평도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배가 기상 악화로 출항이 통제되어 버렸다. 나는 이미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동인천으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지하철에서 알림 문자를 받으니 다소 황망해졌다. 이왕 멀리 나온 거, 인천항여객터미널에서 열려 있는 뱃길을 따라 인천 쪽 섬 어디든 다녀올 요량으로 터미널로 향했다.
다행히 옹진군의 남쪽으로 가는 배편은 돌아오는 편까지 모두 정상 운행 예정이었다. 덕적도를 갈지 자월도를 갈지 고민을 했는데, 덕적도와 문갑도를 한 번에 다녀올 요량으로 덕적도로 결정했다. 계획은 이랬다. 9시에 덕적도에 도착하면, 비조봉까지 나는 듯이 2시간 만에 다녀와 11시 20분에 문갑도로 향하는 배를 타고(나래호라고 따로 배가 있다) 15분을 걸려 문갑도에 도착 후 깃대봉을 다시 2시간 만에 다녀와 14시에 덕적도로 돌아오는 배를 타고 덕적도에서 16시 30분 배를 타고 최종적으로 인천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주말이라 그런지 나래호 배편이 이미 매진이 되어버린 상황. 어쩔 수 없이, 덕적도를 여유롭게 돌아보기로 한다.
덕적도는 덕적도, 문갑도, 백아도, 굴업도 등이 군도를 이루고 있어 '덕적군도'라 한다. 백아도와 굴업도는 휴양시설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데, 백패커들의 성지라 한다. 혹자는 굴업도를 두고 우리나라 3대 백패킹 명소라고도 한단다. 덕적군도를 오가는 나래호는 1일 1회만 운항한다. 즉, 백아도, 굴업도는 당일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섬이다. 문갑도의 경우, 11시 20분 배를 타고 들어가 14시 배를 타고 나올 수 있어서,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빠르게 깃대봉을 다녀올 수 있다. 진리항에 내려 덕적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아직 아침이라 날이 그렇게까지 흐리지는 않은 상황이다.
진리항에서 진리해변까지 해안을 따라 난 스카이데크를 따라 우선 걸어본다. 잔잔한 덕적군도의 바다를 보며 걷는 재미가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좁은 바다라 그런지 물살이 마치 계곡처럼 거세게 흐르는 게 보일 정도였다.
데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길이 나오는데, 노송 군락지 방향으로 가야 진리해변에 도달할 수 있다. 도우끝 쉼터는 그냥 공터여서 딱히 볼거리는 없었다.
고즈넉한 진리해변. 고운 모래와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누가 이 해변을 걸었을까, 어떤 모습과 감정과 생각으로 걸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넓게 형성된 만이라 고요한 해변이다.
진리해변에서 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 밧지름해변이 또 나온다. 이 구간은 인도가 따로 없어 차도의 끝부분으로 통행하여야 하는데, 교통량이 많은 도로는 아니라서 크게 위험하지는 않다. 밧지름 마을의 어원을 알려주는 비석이다. 순우리말이 참 곱다는 생각을 해본다.
덕적도에는 군데군데 흑염소를 키우는 농가가 있는데, 어린 개체는 아예 목줄을 풀어놓고 방목을 한다. 정말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시간을 보내는 흑염소이다. 흑염소를 이렇게 제대로 본 적은 처음인데, 약간 무서운 눈매와 휘어져 있는 뿔을 보고 있노라니 서양에서 왜 염소가 악마의 상징으로 쓰였는지 짐작이 갔다. 귀여우면서도 약간 무서운 느낌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밧지름해변. 진리해변보다 모래의 양이 더 많다. 텐트를 쳐놓고 숙영을 하거나 캠핑 체어를 놓고 바다를 즐기는 객들이 몇 팀 있었다. 확실히 섬의 해변이란, 인파가 북적이지 않아서 좋다.
밧지름해변 뒤쪽으로 비조봉으로 오를 수 있는 등산코스가 있는데, 지금은 옹진군 공무원 휴양소를 공사 중이라 출입이 어렵다. 하지만 주말이라 공사를 하고 있지 않아, 공사장 안쪽으로 진입해 본다.
힘들게 공사장 뒷편 끝으로 가서 등산로 입구를 찾아냈는데, 멧돼지 출몰로 입산을 통제한단다. 흠... 강행해볼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만에 하나를 생각해서 우회하기로 결정했다. 밧지름해변에서 도로를 따라 2km를 더 가면 서포리해변이 나오는데, 그쪽에 비조봉으로 오르는 또 다른 루트가 있어서 조금 더 트레킹을 하기로 결정했다.
서포리해변까지 오는데 이미 거의 8km 정도를 걸은 상황. 슬슬 하체에 피로가 쌓이고 있다. 이렇게까지 오래 걸을 계획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쯤되니 비조봉을 2시간만에 찍고 와서 문갑도로 가겠다는 애초의 계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진리해변이나 밧지름해변보다는 조금 더 작은 규모의 서포리해변이다. 여기에도 캠핑하는 백패커가 몇 있었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정도가 지나서, 슬슬 요기를 해야한다.
해변 초입에 간판도 제대로 없는 '서포리식당'이 있다. 마침 단체 손님이 식사 중이고 딱히 다른 식당도 없어서 이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지난번 대청도에서 우거지해장국을 먹어서, 이번에는 불뚝에 도전해 본다.
귀여운 길냥이가 있다. 식당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아닌 듯한데, 그래도 가끔 먹을 걸 던져주는지 온순하다.
불고기뚝배기는 다소 아쉬웠다. 15,000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기본 찬이나 불고기의 양이나 맛이나 모두 부족했다. 차라리 근처에 있는 CU에서 편털이나 할걸 그랬다. 제대로 된 정찬을 먹고 힘내서 비조봉을 오르려 했건만...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들은 대개 시장이 반찬이라고 맛이 좋았는데, 이 가게는 정말 너무 아쉬었다.
어찌저찌 식사를 마치고 이제 진짜로 비조봉에 오를 차례이다. 좁게 난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단체로 여행 온 등산객들은 버스를 대절하거나, 공영버스를 타고 덕적도의 반대편 끝을 다녀오는 여정을 많이 하는 듯하다. 나의 트레킹 루트는 덕적도의 한쪽 면밖에 못 본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두 발로 구석구석을 누빈다는 재미는 확실히 있다.
등산로 초입에서 비조봉까지는 700m 거리라고 안내를 해주고 있지만, 실제 내 애플워치 기록을 보면 1.5km는 족히 넘는다.
산행을 시작할 무렵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조봉의 높이에 비해 산길이 정비가 덜 되어 편한 코스는 아니다. 그 와중에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매우 고된 산행이었다.
비를 맞으며 힘겨운 30분 간의 산행 끝에 비조봉에 도착했다. 비조봉에는 멋드러진 정자가 있다. 망원경도 있는데, 날이 좋았더라면 덕적군도를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금은 구름 속에 있는 비조봉이다.
정자 아래쪽에는 비조봉 정상석이 있다. 애플워치를 통해 아이폰의 카메라를 통제할 수 있는데, 이걸 미처 생각을 못 했던 많은 산행에서 힘겹게 타이머를 맞춰두고 셀카를 찍어 왔다. 대청도에서부터 문득 깨달음을 얻어 잘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이런 비 오는 날씨에 아주 유용하다.
서포리해수욕장에서 올라온 길을 제외하고 2가지 길이 있는데, 이정표 아래의 길로 가면 밧지름해변이 나온다. 그 반대의 먼 길로 가야 덕적면사무소 뒤편으로 진리항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또 속고야 말았다!
밧지름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까 멧돼지 위험 때문에 오르지 않았던 바로 그 길이다. 다행히 멧돼지는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이 길로 오를 걸 그랬다!
4시간의 트레킹을 마치니 3시가 조금 안 되었다. 4시 반 배를 탈 때까지 항구 앞의 카페에서 독서를 하다가, 배를 타자마자 피곤에 곯아떨어졌다. 점심도 부실하게 먹었겠다, 오늘은 인천항 부근에서 요기를 하고 집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네이버에서 평이 꽤 괜찮은 정석루에 들렀다.
짬뽕과 탕수육 세트가 18,000원으로 상당히 가성비가 훌륭하다. 맛도 좋았다. 특히 근본 있게 부먹으로 탕수육을 내오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오늘 하루종일 16km 이상을 걸었고 또 우천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서 꽤나 고생한 섬 여행이었으나, 맛있는 저녁으로 이번 여정도 잘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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