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읽을 책으로 골랐던 다윈의 종의 기원을 4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완독했다. 대중 교양서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종의 논문집 같은 형식이어서 쉽게 책이 읽히지 않았다. 급기야 하루에 20p씩 할당량을 정해놓고 독서를 해나가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각고의 노력 끝에 3개월 만에 종의 기원을 완독할 수 있었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번역서 특유의 그 만연체를 빠르게 흡수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오히려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생물학적 상식들의 가장 기초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수학에서도 1 + 1 = 2 를 증명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였던가? '자연선택'이라는 생물학의 근본 개념이 어떻게 다윈 안에서 형성되고 체계화되었으며 논증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해 가는 데 이번 독서의 즐거움이 있었다.
19C의 유럽인들은 사육과 재배를 통한 품종 개량에 꽤나 열성적이었다고 한다. 인간에 의한 인위적인 개체의 선택이 자연의 수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다윈은 논증한다. 물론, 오늘날의 논문 양식과는 다르지만, 관찰과 분석이라는 기본의 틀은 동일하다. 본인이 평생을 보고 연구한 것들을 모아, 자연선택이란 개념을 훌륭하게 설명해 낸다.
오늘날에는 상식이 된 진화와 자연선택. 19C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의 센세이션을 어렴풋이 상상해본다. 뉴턴역학을 뒤집어 엎은 양자물리학의 등장 그 이상의 충격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염색체, DNA, RNA와 같은 개념을 친숙하게 알고 있고 유전 정보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 다윈은 이를 알지 못하였다. 오로지 평생에 걸친 치밀한 관찰을 통해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연역해 낸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이 모두 즐거움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현대생물학의 첫 장을 여는 기념비적인 책을 완독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꽤 뿌듯한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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