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5. 4. 목요일
오늘은 오전 비행기로 우수아이아를 떠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날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마르티네즈 카페에 가서 토스트와 커피로 아침을 해결했다. 밤새 비구름이 몰려와서 날이 많이 흐렸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고 발권과 비행기 체크인까지 모든 게 순조로웠다.

3시간 정도를 비행하니 오후 2시에 드디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했다. 비행을 하며 밀린 여행일지를 정리하고 넷플릭스를 조금 보니 금방 시간이 갔다. 우수아이아는 날이 풀렸다 해도 꽤 쌀쌀한 편이었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6월 초의 한국 같은 날씨다. 낮에는 아우터가 전혀 필요 없을 정도.

시내로 나가도 점심을 제대로 챙겨먹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라 에어로빠르케 공항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서 시켰던 세트와 똑같은 빅맥인데 가격은 1/4 수준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를 이동하니 숙소인 ‘부에노까사’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는 방법이 조금 독특한데, 공항 직원이 안내하는대로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목적지를 입력하면 톨비를 제외한 택시 요금 계산서가 발행되고 그 가격대로 지불을 하는 방식이다. 기사 분은 할아버지였는데 영어를 꽤나 잘 하셔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숙소까지 올 수 있었다.

한인 민박으로 숙소를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기 위해서였다. 가격이 올랐음에도 65,000 페소면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는데, 넉넉하게 환율을 쳐줘도 150 달러도 안 되는 돈이다. 아무래도 투어 예약은 한인 민박으로 숙소를 해두면 편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부에노까사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사장님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짐을 풀고 시내 관광을 위해 거리로 나선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중교통은 Sube 카드가 있어야 이용 가능한데, 우리나라로 치면 T-money 같은 것. 지하철역이나 시내 곳곳의 키오스크에서 살 수 있다고 했는데, 가게마다 다 동이 났다며 Sube 카드를 파는 곳이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관광 구역으로 이동할 요량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걸었다.

그래도 거리가 직선으로 잘 구획되어 있어서 길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산 텔모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7월 9일 대로를 지났다. 7월 9일 대로는 세상에서 가장 폭이 넓은 도로라고 한다. 아르헨티나가 독립한 날인 7월 9일을 기념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산 텔모 지역에서는 우선 현대미술관(Museo de Arte Moderno de Buenos Aires)를 들렸다. 원래는 입장료를 따로 받는데 운이 좋게 오늘은 무료 개방하는 날이라고 한다.

예술 특히 미술은 전혀 몰라서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미술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여러 작품들을 감상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따로 사진을 찍어두었다.

미술관을 금방 나와 산 텔모 거리를 걷는다. 여기는 일요 시장이 들어서는데, 일요일이 되면 꽤 크게 행상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지금은 다소 한산한 편이고 딱히 구경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조각상을 파는 가게가 꽤 많이 밀집해 있어서 나름 눈요기가 되었다.

산 텔모 거리를 쭉 횡으로 가로질러 북으로 올라가면 5월 광장과 대통령 관저가 나온다. 아르헨티나 독립 운동인 ‘5월 혁명’이 시작된 바로 그 광장이라고 한다. 남미의 여느 광장이 그렇듯 특별히 할 것은 없다. 그래도 잘 가꾸어진 광장을 중심으로 다섯 갈래로 뻗어진 길들은 꽤나 볼만 했다.

5월 혁명을 기념하는 탑. 혁명 1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광장에서 길을 조금 틀어서 가다보면 플로리다 거리를 지나게 된다. 플로리다 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명동 같은 곳으로 관광객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300 달러를 환전했는데, 지금까지 아르헨티나의 관광 도시만 돌다가 치안이 안 좋은 수도로 와서 살짝 긴장하기도 했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환전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 다소 성급하게 거리 초입의 환전상에게 환전을 했다. 1달러에 450 페소를 쳐준다고 했는데, 환전소로 가니까 자기 커미션을 빼고 440 페소로 또 말을 바꿨다. 우수아이아에서 460 페소에 환전을 하긴 했지만 큰 차이 없는 것 같아서 시원하게 300 달러를 환전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몇 군데만 더 돌아봤으면 더 괜찮은 환율로 환전을 했을 수 있었을 것만 같은 아쉬움이 든다.

플로리다 거리 한 켠에서 거리 예술가의 연주회가 펼쳐지고 있다. 매드맥스에 나왔던 군악대가 쓰던 더블넥 기타다.

5월 광장에서 길을 따라 북서쪽으로 이동하면 오벨리스크가 나온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의 400년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추천해 준 탱고 쇼를 예약하기 위해 시내의 티켓 예매처로 갔다. 가이드북에서 하도 겁을 줘서 약간만 외진데로 가도 마음이 불편하다.

서로 다른 두 곳의 극장에서 당일 공연 예약이 가능했는데, 8,000 페소짜리와 10,000 페소짜리로 가격이 달랐다. 10,000 페소에는 음료 한 잔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10,000 페소짜리 La Ventana 극장의 탱고 쇼를 예매했다.

탱고 쇼 예매까지 마치고 다시 플로리다 거리를 걸어 산 마르틴 광장으로 향한다. 건물들이 다들 오래된 것이 꼭 스페인의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상이다.

산 마르틴 광장은 5월 광장보다 북쪽에 위치해 있다. 훨씬 한산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이다. 공원 한 켠에서는 두 아이 아빠가 아들들과 축구 킥 연습을 하고 있었다.

수령이 족히 천년은 되어보이는 거대한 나무가 인상적이어서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광장 이름답게 아르헨티나의 독립 영웅인 산 마르틴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게 세워져 있다.

Sube 카드를 못 사는 바람에 상당히 많이 걸어서 피로감이 몰려왔다. 와이파이도 잡을 겸해서 스타벅스에 들러서 초코칩 프라푸치노를 마셨다. 서울에서는 당 때문에 절대 안 마시는 음료이다.

숙소가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10시 탱고 쇼를 위해 숙소를 들렸다가 다시 오기에는 시간도 거리도 모두 애매했다.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La Ventana까지 걸어서 이동하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었다. 플로리다 거리를 중심으로 스테이크를 파는 가게가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잘 찾아지지가 않고 죄 파스타, 피자 같은 음식 뿐이었다. 그럴 바엔 그냥 햄버거를 먹는게 낫다. 버거킹에 가서 또 햄버거를 먹고 넷플릭스를 보며 1시간 정도 킬링 타임을 했다.

적당히 시간이 되어서 탱고 쇼를 보러 극장으로 이동했다. 극장 입구는 1층에 있지만 극장 자체는 지하에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문을 여닫는 직원이 따로 있는 등 뭔가 격식을 갖춘 느낌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니 서양 아주머니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아마 저녁이 포함된 패키지를 구매한 듯하다.

탱고 쇼를 기다리며 셀카도 한 장 찍어본다.

탱고 쇼는 10시부터 11시 반까지 90분 동안 진행되었는데, 생각보다 볼만 했다. 춤도 춤이지만 나는 음악과 노래에 더 큰 관심이 갔는데, 90분 동안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실 춤은 내가 워낙 몸치라서 뭐가 어떤 춤인지 어떤 동작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모르지만, 음악은 그나마 귀가 조금 열려 있어서 듣는 재미가 있었다.

좋은 쇼를 보면서 술이 빠질 수 없다. 프리 드링크로 레드 와인을 한 잔 마셨지만, 기분 좋게 ‘탱고 브라질리아’라는 칵테일을 한잔 더 주문했다. 가격이 조금 사악했는데, 3,500 페소였다.

약간 우리나라로 치면 전통 문화 공연을 하는 예술가 분들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다들 나이대가 꽤 있으신 분들이었지만 열정적인 공연이 사뭇 감동적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쇼를 즐기다보니 벌써 공연은 끝이 나 있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여흥을 즐기며 즐겁게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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