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verseas

2023 남미 여행 [Day.23]

무소의뿔 2023. 5. 3. 21:02

23. 5. 2. 화요일

오늘은 칼라파테에서 우수아이아로 이동하는 날이다. 남미사랑 단톡방에서 누가 추천해준 Lade 항공으로 9시 50분 비행기를 예매해두었다. 숙소에는 나 말고 우수아이아로 넘어가는 분이 3명이 더 있었는데 모두 8시 반 비행기였다. 그래서 나도 조금 서둘러서 같이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이곳 파타고니아는 해가 참 늦게 뜬다. 공항에 도착하니 동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한다.

Lade 항공이 화물 전용 항공이고 주변에서 타 본 사람이 없어서 다들 궁금해 했다. 나도 참 궁금했는데 체크인을 마치고 탑승장으로 나가보니, 아니 경비행기 아닌가!! 날개에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경비행기. 저게 내가 타고 갈 비행기이다.

정말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비행기이다. 지금까지 큰 비행기만 타봐서 경비행기 체험이 설레기도 하는데, 조종석이 한 눈에 보이는 정말 작은 사이즈는 적응이 안 되었다. 승무원도 1명 뿐이고, 승객도 거의 없었다.

Rio Gallegos 라는 작은 도시를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였다. 사실 경유를 하는지도 몰랐다. 중간에 갑자기 랜딩을 하길래 경유를 하나보다 했다. 여기서 몇 명은 내리고 몇 명은 탔다. 좌석이 여유가 있어서 앞뒤 공간이 그나마 넓은 좌석으로 옮겨서 편하게 왔다. 우수아이아로 가는 비행길은 경치가 훌륭했다. 늘어선 설산과 고도를 맞추어 하늘을 날아왔다.

바람이 세게 불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이 기체가 요동쳤지만, 다행히 안 죽고 우수아이아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표에는 12시 반 도착 예정이었는데 12시 정도에 도착했다.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있다.

우수아이아 공항은 작은 공항이지만 독특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눈이 자주 와서 이런 가파른 사선 지붕을 덮었을까?

공항에서 바라본 우수아이아 시내 모습이다. 낮고 길게 펼쳐진 시가지 뒤로 우뚝 솟은 설산이 장관을 이룬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택시를 탈 수 있었다. 환전해 둔 페소가 모두 동나 버려서 달러로 택시 요금을 치르느라 더 비싼 값을 지불했다. 아파트를 예약했는데, 방에서 보이는 뷰가 상당히 훌륭했다.

샤워를 하고 짐을 풀고 우수아이아 시내로 내려가본다. 삼면을 둘러싼 설산 때문에 시내 어디에서도 훌륭한 광경을 즐길 수 있다. 비수기라 그런지 여행자거리가 다소 한산하다.

우수아이아에서 가장 즐기고 싶었던 것은 바로 킹크랩이었다. 하지만 역시 비수기인데다가 킹크랩 금어기라서 킹크랩을 파는 레스토랑이 거의 없었다. 여기 식당을 찾았을 때는 이미 마지막 킹크랩 생물이 팔린 뒤였다.

아쉬운 마음에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우선 맥주를 주문했는데, Cape Horn은 어제 마셨던 파타고니아 맥주보다는 훨씬 훌륭했다.

냉동 킹크랩은 그래도 레스토랑마다 재료가 넉넉히 있나보다. 킹크랩 수프를 시켰는데 가격은 5,700 페소로 다소 쎄지만 킹크랩 살이 가득 들어 있어서 맛이 좋았다.

씨푸드 리조또도 하나 주문했다. 여기 리조또는 약간 카레가 들어간 느낌이다. 리조또에 쓰인 해산물들은 모두 냉동이라고 한다. 맛은 물론 나쁘지 않았다. 다만, 우수아이아는 전형적인 관광 도시라서 아르헨티나임에도 불구하고 가격대가 상당하다는 점은 각오를 해야 한다.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수아이아 부둣가로 내려와 본다. 날이 개어서 꽤나 근사한 뷰를 즐길 수 있었다.

부둣가에는 페리들이 정박해 있는데 모두 비글 해협 투어를 위한 페리들이다. 비글 해협 투어는 내일 하기로 하고 오늘은 우수아이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집중해 본다.

이른바 ‘세상의 끝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두 블럭 거리의 두 건물에 나뉘어 있는데, 한 쪽에는 우수아이아의 토착 종족인 ‘야마나’ 족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는 근현대 우수아이아 역사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다. 1,900 페소 입장권을 끊으면 두 군데를 다 돌아볼 수 있는데, 근현대관은 사실 별로 볼 게 없었다.

다음으로는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 국립 공원을 둘러보는 택시를 탔다. 미터기를 켜는 시내 주행과 달리 약간 택시 투어 개념인데, 택시 왕복을 포함해서 국립 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투어는 30,000 페소였다. 호수 몇 군데만 돌아보는 더 저렴한 패키지도 있었지만 그럴 바에야 그냥 시원하게 국립 공원을 다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30,000 페소짜리 패키지를 선택했다. 가장 먼저 나를 데려다 준 곳은 ‘세상의 끝 우체국(Correo del Fin del Mundo)’가 있는 호수였다.

아쉽게 여기 세상의 끝 우체국은 1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사실 푸에고 국립 공원에 방문한 가장 큰 이유가 세상의 끝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기 위함이었는데 말이다. 아쉬운 마음에 호숫가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그래도 호수 뷰는 나쁘지 않았다. 택시 기사의 설명에 따르면, 저 너머 보이는 설산은 칠레 땅이라고 한다.

귀여운 여우를 발견하자 택시 기사가 차를 멈춰 세운다. 영어를 못하는 할아버지였는데, 자꾸 스페인어로 내게 말을 붙이는 바람에 꽤나 곤혹스러웠다. 그래도 착하고 친절하신 분이었다. 여우 사진을 찍으라고 차도 멈춰주고 말이다.

다음으로 들린 곳은 아키가미 호수이다. 여기는 호수인데도 바다처럼 파도가 일렁인다.

날이 점점 흐려져서 중간중간 비가 내리기도 했다. 호수는 이제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봐서 감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다른 호수를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는 길. 왕복으로 10분 정도 되는 거리라서 가볍게 산책한다는 느낌으로 숲길을 걸어가 본다.

여기서도 꽤 예쁜 호수가 펼쳐진다. 푸에고 국립 공원을 두 발로 트레킹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확실히 토레스 델 파이네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나름의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푸에고 국립 공원에서는 가을의 파타고니아의 정취가 느껴진다. 비 온 뒤라 그런지 한층 쓸쓸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 다른 전망대에 올라본다. 여기서 바라본 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호수 곳곳에 펼쳐진 작은 섬들이 고즈넉한 느낌을 불러온다.

이 새는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놀라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매과의 일종인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늠름한 모습의 새이다.

마지막 코스로는 15분 짜리 미니 트레킹을 했다. 비 온 뒤라 길이 온통 진창이라 다소 고생을 했다. 그래도 구석구석 펼쳐진 푸에고 국립 공원의 풍경이 좋았다.

기념 사진도 하나 남겨본다. 수염이 제법 많이 자랐다.

바람이 잦아드니 호수에 구름의 모습이 비친다. 우유니에서 이런 반영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산도 비친다. 꼭 초코 머핀 위에 올려진 화이트 초콜릿 같다.

국립 공원 투어를 마치고 칼라파테에서 함께 숙박했던 형님, 동생들과 다시 만나 저녁으로 킹크랩 2차 시도를 했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킹크랩이 없어서 냉동 킹크랩 요리와 해물 요리 이것저것을 주문했다. 해산물이니만큼 화이트 와인을 주문해 본다. 맛이 꽤나 괜찮았다.

해산물 리조또. 점심에 먹은 리조또보다 가격이 더 있어서인지 맛이 더 훌륭했고, 해산물의 신선도도 나쁘지 않았다.

삶은 홍합. 맛 자체는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알이 굵은 녀석들이라 씹는 재미가 있었다.

끓는 기름을 부워 익힌 대구 요리. 기름에 튀긴 게 아니라 끓는 기름으로 데쳐서 대구살이 연하고 부드러웠다.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메뉴.

아스파라거스를 올린 킹크랩 그라탕. 크림으로 소스를 내서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냉동 킹크랩이지만 가격은 만만하지 않다. 저 한 접시가 17,500 페소이다.

바질을 올린 오일 소스 베이스의 킹크랩 그라탕. 가격은 동일하다. 역시 여럿이서 먹으면 메뉴 쉐어가 되서 이것저것 맛 볼 수 있어서 좋다.

두 병째 주문한 와인. 맛은 첫 번째로 주문했던 Rutini 와인이 더 훌륭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근처 바로 이동해서 맥주 타임을 가졌다. 1리터 맥주가 있어서 주문했는데, 한 잔이 1리터들이이다.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니 하루의 피로가 씻겨간다.

안주로는 치킨을 시켰는데 치킨 텐더에 가깝다. 의외로 잘 튀겨서 놀랐다.

마무리로는 다이키리를 주문했다. 다이키리가 귀여운 그루트 잔에 담겨 나온다. 칼라파테에서 만난 셋은 금융권 종사자, 자영업자, 대학생이었다. 각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우수아이아에서의 밤이 깊어간다.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숙소로 오르는 언덕길. 오늘도 달이 휘영청 밝다. 오늘 밤은 알람 없이 푹 잘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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