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verseas

2023 남미 여행 [Day.22]

무소의뿔 2023. 5. 3. 21:01

23. 5. 1. 월요일

칼라파테에서의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침은 스파게티가 나왔다. 어제 저녁으로 고기를 든든하게 먹고 자서 아침에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간단하게 입맛만 돋우는 정도로만 먹고 투어 준비를 했다. 비수기라서 칼라파테에서 엘 찰튼으로 가는 버스는 아침 8시, 11시 그리고 저녁 6시 3번만 운행한다. 엘 찰튼에서 돌아오는 버스도 마찬가지. 피츠로이 봉우리만 당일치기로 다녀올 예정이라 8시 버스로 엘 찰튼으로 가서 6시 버스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엘 찰튼까지는 버스로 3시간이 걸린다. 미리 다운 받아놓은 김유정 주연의 20세기 소녀를 보면서 왔다. 민박에 같이 머무는 세 명과 함께 출발했는데, 이 중 둘은 엘 찰튼에서 1박을 하며 다음날 피츠로이의 일출, 그 유명한 ‘불타는 고구마’를 볼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W 트레킹을 하며 이미 삼봉 일출을 봐서 그냥 당일치기로 돌아오는 일정을 택했다.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기념 사진을 남겨 본다.

시내에서 점심 등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공원 입구로 이동한다. 버스 터미널에서 공원 입구까지는 한 20분 정도가 걸린다. 왼쪽으로 가야 피츠로이 전망대로 드는 길이고, 오른쪽은 다른 곳이다.

시작부터 업힐이다. 출발할 때 날이 흐려서 걱정했는데 조금씩 날이 개고 있다. 산맥과 산맥 사이의 협곡이 나름 볼만 하다.

구름이 조금 끼어있긴 하지만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오르는 동안 바람이 꽤 쌀쌀하게 불어서 꽤나 추웠다.

점심으로 먹으려고 슈퍼마켓에서 산 햄치즈 크로와상. 2개가 들었는데 1,200 페소였다. 맛은 그저 그랬다.

4km 정도를 오르면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카프리 호수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피츠로이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만약 로스 토레스 전망대를 갈 거라면 왼쪽 길을 택해야 한다. 카프리 호수 쪽에서 11km를 더 깊숙이 들어가야 나오는 전망대인데, 피츠로이를 가장 가까이서 잘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나는 피츠로이 전망대까지만 오를 예정이라 들리지 않았지만 다음날 일출 산행을 했던 분들께 여쭤보니 정말 좋았다고 한다.

카프리 호수를 먼저 보기 위해 이동한다. 가는 길에 서서히 피츠로이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피츠로이 봉우리는 파타고니아 브랜드 로고의 모티브가 된 바로 그 봉우리이다.

점점 다가갈수록 선명히 모습을 드러내는 피츠로이.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토레스 3봉도 장관이었지만, 깎아지르는 듯한 피츠로이의 날렵함이 확실히 더 눈에 만족스럽다.

드디어 도착한 카프리 호수. 호수와 함께 피츠로이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다. 날이 흐려 호수에 봉우리가 잘 비치지는 않지만 호수의 고즈넉한 느낌과 피츠로이의 굳건한 기상이 잘 어우러진다.

카프리 호수에 온 김에 기념 사진을 찍어본다. 여행 내내 한 번도 빨지 않아 더러워진 자켓과 바지다.

정상에서 마시려고 맥주도 사왔다. 하지만 이번 맥주는 정말 맛이 없었다. 라거는 물엿 비슷한 맛이 났고, 에일은 오줌 비슷한 맛이 났다. 물론 오줌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오줌을 마시게 된다면 이것과 비슷한 맛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카프리 호수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이번엔 피츠로이 전망대로 향했다. 드디어 전망대에 올라 제대로 바라 본 피츠로이의 모습이다. 맑은 하늘은 아니지만 안개 없이 피츠로이 봉우리를 다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정말 아름답고, 정말 기억에 오래 남을 장관이다.

봉우리 사이사이를 채운 얼음층이 피츠로이의 설경을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 저 봉우리 끝에 서면 어떤 기분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피츠로이의 기상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상의 탈의를 하고 기념 사진을 찍어본다.

내려오는 길은 날이 풀려서 훨씬 따듯했다. 하늘도 개어서 보다 선명한 협곡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트레킹이 일찍 끝났다. 세 시쯤 트레킹을 마쳤고, 일행과 함께 요기를 하기 위해 근처 바로 왔다. 피스코 사워를 한 잔 주문했는데 페루에서 마시던 그 맛이 아니라 실망했다.

햄버거와 피자를 시켰는데, 피자는 그저 그랬지만 햄버거가 의외로 되게 맛있었다. 질 좋은 소고기로 만든 패티라 풍미가 훌륭했다.

식사와 환전 등을 하며 엘 찰튼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엘 찰튼 시내에서 W 트레킹을 하며 몇 번 대화를 했던 28살의 브라질 청년을 다시 만났다. 나탈레스 버스 터미널에서 헤어지고 3일만이었는데 되게 반가웠다. 나와 마찬가지로 6시 버스로 칼라파테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칼라파테에 돌아와서는 숙소에 들렸다가 다운타운으로 나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오늘은 쉬라즈 와인을 곁들여 본다.

오늘 저녁은 양고기 모둠이다. 나탈레스에서 가장 잘한다는 양고기 집에서 주문한 양고기 모둠은 조금 누린 맛이 있었는데, 칼라파테 양고기는 그런 것 없이 훌륭했다. 다만 간이 조금 짜게 된 게 아쉽긴 한데, 그거야 뭐 남미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이 칼라파테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이 곳 후지 민박은 한인 전용 민박이라 밤마다 다이닝 룸에서 술 파티가 벌어진다. 마지막 밤이니만큼 나도 함께 술을 마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들, 농담들을 주고 받으면서 칼라파테에서의 밤이 깊어간다. 달이 휘영청 밝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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