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verseas

2023 남미 여행 [Day.26]

무소의뿔 2023. 5. 6. 09:49

23. 5. 5. 금요일

오늘은 원래 스카이다이빙을 하기로 예약되어 있었다. 다만, 스카이다이빙은 기상 조건이 좋아야 하는데, 어제 밤부터 조금씩 하늘이 흐려지더니 아침에 (스카이다이빙 출발을 위해 일찍 알람을 맞추어 두고) 일어나니 하늘이 온통 구름 투성이다. 8시에 픽업을 오기로 했고 기상 사정으로 스카이다이빙이 취소될 경우 7시 정도까지 알려준다고 했는데, 결국 7시 반쯤 최종 취소 통보를 받았다. 여러모로 아쉬운 아침이었다.

우선은 일어남 김에 사장님이 차려준 조식을 먹었다. 오늘 조식은 김치볶음밥이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 조식에 그래도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이곳 부에노까사에서는 아침에 커피도 내려줘서 마실 수 있다. 물론 설거지는 웬만한 민박이 그렇듯 셀프다.

스카이다이빙이 취소되어 시간 여유가 상당히 많아졌다. 오전에 보카 지역을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사장님께 부탁해서 Sube 카드를 하나 빌렸다. 마이너스 잔액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130 페소가 마이너스 상태였다. 그래도 500 페소를 충전했더니 하루종일 타고 다니는데 별 지장이 없었다.

숙소에서 53번 버스를 타면 La Boca로 갈 수 있다.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버스 노선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관광객도 어렵지 않게 탈 수 있다. 다만 교통체증이 심해 버스로 다닐 경우 거리에 비해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된다. La Boca까지는 숙소에서 30분 정도가 걸렸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Caminito. Boca 항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항구인데, 그 주변 건물들이 알록달록해서 관광 명소가 되었다. 옛날 페인트를 살 돈이 없는 항구 노동자들이 남은 페인트를 가져와 벽칠을 했다는 설이 있다.

카미니토 본 건물에는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 구역의 웬만한 건물들은 다 알록달록하게 칠해져 있어서 꼭 긴 줄을 기다려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다. 거리에는 기념품 행상과 레스토랑이나 바가 밀집해 있다.

카미니토를 간단히 둘러본 후 보카주니어스 홈 구장, La Bombonera로 향한다. 가는 길에 폐 철길이 나 있는데, 길을 따라 그려진 그래피티가 제법 볼만 하다.

철길이 나름 운치가 있다. 다만 개똥이 정말 많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살짝 밟은 것 같다.

보카 주니어스의 홈 경기장. 선명한 파란색과 노란색이 인상적이다. 사실 보카 주니어스와 큰 연고는 없는데 어릴 적 피파온라인을 하면서 이 팀을 알게 되었다. 유럽의 주요 리그 팀을 바로 선택할 수 없어서 아시아나 남아메리카 팀을 먼저 골라야 하는데, 그러면서 보카 주니어스를 알게 되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은 유럽으로 넘어가 스타가 되는 경우도 많다.

디에고 마라도나를 그린 그래피티. 어렸을 때 아이러브사커에 가서 마라도나 스페셜 영상을 자주 봤었던 기억이 난다. 직접 뛰는 건 싫어했어도 손가락으로 하는 축구, 보는 축구는 참 좋아했던 20대 초반 시절이었다.

LG가 보카주니어스의 스폰서였던 적이 있나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LG 로고를 보게 될 줄이야!!! 하지만 여행 기간 중에 이미 공식적인 퇴사일이 지나가버렸다. LG는 보카주니어스에게도 내게도 이젠 추억이다.

보카주니어스 구장에는 기념관도 있는데, 입장료는 2,000 페소를 살짝 넘는다. 다만 보카주니어스에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둘러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실 경기장 내부를 보고 싶었는데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 투어 프로그램은 내부까지 볼 수 있게 해줬던 기억이 났다) 기념관만 둘러볼 수 있고 경기장 안쪽까지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굳이 돈 들여서 볼 것까지는 없는 듯하다.

보카 지역 투어를 마치고 93번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를 가면 레콜레타 지역에 도착한다. 레콜레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부촌 동네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고 도로도 널찍하고 광장도 즐비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레콜레타로 넘어가는 다리인데,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이 꽤 많았다.

다리에서 바라본 5차선 도로. 널찍하고 곧게 잘 뻗어있다. 아르헨티나를 포함해서 남미의 도로를 가만히 보면 일방통행인 도로가 참 많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한 레스토랑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메이다가 레콜레타 근처의 복합 쇼핑몰 쪽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원래는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는데, 레스토랑을 찾는데 더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그냥 빠르게 식사를 하는 쪽을 택했다. 데이터가 안 되니 길거리에서 새로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게 참 어렵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햄버거였다. 3,000 페소가 조금 넘었는데, 다음 날 먹은 500g 스테이크가 4,500 페소였으니 결코 싸지 않은 셈. 그러고 보면 스타벅스나 버거킹,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 메뉴들이 현지 물가에 비하면 결코 싼 편이 아니다. 맥도날드 빅맥 세트가 2,500 페소 정도이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1,000 페소 정도이니 말이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주문한 이 햄버거는 비건 햄버거였다!!! 어쩐지 패티 맛이 이상하다 했더니,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주문한 햄버거 메뉴에 ‘퀴노아’가 들어가 있었던 게 떠올랐다.

팔자에도 없는 비건 햄버거에 맥주를 곁들여 점심을 먹었다. 그래도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좋다. 그래 살면서 또 언제 비건 햄버거를 먹어보겠는가. 그냥 추억으로 삼아야겠다.

식사를 마치고 레콜레타 공동묘지에 들렀다. 여기는 아르헨티나 요주의 인물들이 안장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현충원 같은 개념이다. 입장료를 따로 받는데, 여기는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 입장료도 결코 싸지 않은데 약 2,300 페소 정도를 받는다.

우리나라 스타일의 봉분만 보다가 이런 으리으리한 묘지를 보니까 새삼 놀랍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봤던 다른 묘지들은 간단한 상자 형태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역시 돈과 지위가 되니까 묘지가 참 웅장하다. 레콜레타 공동묘지 안에서도 묘에 따라 크기나 장식 등이 다 다른데, 확실히 옛날 무덤임에도 돈을 많이 바른 것은 태가 다르다.

레콜레타 공동묘지는 생각보다 크게 흥미가 없어서 빠르게 퇴장하고, 다음으로는 El Ateneo Grand Splendid로 향했다. 오페라하우스를 서점으로 개조해서 쓰고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상당한 규모에 우선 놀랐고, 건물 내부 장식이 화려해서 또 놀랐다. 확실히 해외의 건축물들은 오래된 것들이 많은데, 오래된 건물을 현대에도 여전히 잘 살려서 삶 속에 녹여내는 모습이 참 부러운 포인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서가에 가득하다. 해리포터가 아직도 팔리려나?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도 있다. 특이하게 인류학 서적 코너에 비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인문학 또는 역사학 쪽에 비치되어 있을 것이다.

서점을 나와 15분 정도를 걸으면 콜론 극장에 도착한다. 콜론 극장의 영어 가이드 투어는 매일 1시와 3시 두 번만 운영되는데, 가격은 6,000 페소이다. 가격이 상당하지만 영어로 설명을 들으며 극장 내부를 둘러볼 가치가 충분했다.

극장을 완전히 짓기까지 총 3명의 건축가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1층을 짓던 이탈리아 건축가가 사고로 사망하고 그 제자인 다른 이탈리아 건축가가 2층을 마저 지었는데, 그래서 1층과 2층의 양식이 서로 다르다. 건물에 쓰인 대리석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들이라고 한다.

계단 장식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모양이다. 콜론 극장은 남미에서 가장 큰 오페라 극장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큰 오페라 극장이라고 한다. 이 극장에서 오페라, 발레, 콘서트가 열리며 지금도 오페라 상연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문화회관 같은 느낌이랄까.

일명 Golden Hall이라고 불리는 극장 내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 벽이나 기둥 그리고 천장을 모두 금으로 장식했다. 화려함의 정도가 유럽의 여느 유수 건축물 못지 않다. 내부 디자인을 가만히 보다보니 예전에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봤던 건축물이 떠올랐다.

콜론 극장의 메인 홀. 영화에서나 봤던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 그 자체이다. 메인 홀은 최대 3,0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고, 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음향학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런 데 앉아서 오페라를 감상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오페라를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분간의 콜론 극장 투어를 마치고 지하철인 Subte를 타기 전에 잠깐 근처의 마르티네즈 카페에서 휴식을 취했다. 카페 바로 앞에는 탱고 쇼 티켓을 파는 박스가 있는데, 마치 브로드웨이 뮤지컬 티켓 박스 같은 느낌이다.

드디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하철이나 Subte를 타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지하철이 꽤 잘 정비되어 있어서 시내 곳곳을 편하게 이동할 수 있고, 요금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여러 노선이 다니고 환승도 가능하다. 나는 시내 중심에서 C 라인을 타고 출발해서 Independencia 역에서 E 라인으로 환승을 하고 한인타운으로 간다.

스크린도어가 없는 지하철이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인데도 이용객이 많아서 역사가 붐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몰리다보니 서양인 특유의 치즈 냄새가 나를 괴롭힌다.

환승 플랫폼에서 다소 헤매이긴 했지만 어찌저찌 길을 찾아 잘 환승까지 마치고 Medalla Milagrosa 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조금 걸어올라가면 한국 식료품점이나 한식당이 밀집한 한인타운이 나온다. 이곳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인타운을 ‘백구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교회도 몇 개 있지만 절도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은 올해부터 대체공휴일을 지정해준다고 하니 잘 참고하자.

이런 행사도 하는구나. 백구촌을 둘러보니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상대적으로 잘 구획되고 정비된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밀집도가 다소 한산해서 특정한 관광명소로서 기능하기엔 다소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지구 반대편의 도시에서 한국과 관련된 컨텐츠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나름 있었다.

가이드북과 숙소 사장님께 동시에 추천을 받은 두꺼비 식당. 여기서 아르헨티나 소고기로 만든 불고기를 먹기 위해 이 먼 길을 비를 뚫고 왔다. 진로 소주의 마스코트 두꺼비의 모습이 늠름하다.

이것저것 다양한 메뉴를 판다. 불고기를 먹을지 삼겹살을 먹을지 고민했는데, 불고기를 선택했다. 사장님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아르헨티나 직원을 몇 명 고용하고 있었다. 급여를 주 단위로 지급하고 지급과 수령 여부를 장부에 싸인하는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해 온 모양인데, 지난 주 급여와 관련해 직원들과 여사장님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할머니 입에서 오랜만에 듣는 구수한 욕지거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어색한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불고기 백반이 나왔다. 밑반찬과 양이 정말 혜자 그 자체다. 이게 다 해서 2,500 페소밖에 안 한다. 5 달러 정도밖에 안 하는 것이고, 빅맥 세트랑 같은 가격이다. 맛도 훌륭했고 밑반찬의 구성도 만족스러웠다. 김치도 생각보다 잘 익어서 너무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였다.

돌아오는 길은 택시를 택했다. 아무래도 비가 오는 밤이라 치안이 걱정되서였다. 숙소 앞 마트에서 2,300 페소짜리 와인을 한 병 사서 올라왔다. 와인을 마시며 다음 여정을 준비해 본다. 이과수에서의 여정과 숙소 그리고 리우 데 자네이루로 넘어가는 항공편까지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간다. 전날 잠을 오래 못 자서 몹시 피곤한 상태였는데 또 마시다보니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게 된다. 이렇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이튿날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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