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보통사람 후기

무소의뿔 2022. 11. 16. 14:39

비행기에서 killing time으로 본 영화. 마침 넷플릭스에 올라왔길래 냉큼 공항에서 다운 받아서 하늘에서 보았다. 손헌주가 형사로 나온다는 것만 보고, 2020년 전후로 손헌주가 찍었던 범죄 스릴러 물인줄 알고 허겁지겁 받았는데, 알고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영화는 억압적인 체제와 이에 순응하는 소시민의 갈등 구도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라기보다는 뭐랄까 되게 소설을 영상화한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감정의 응축과 폭발, 카타르시스 이런 너무나 전형적인 영화적 장치들이 없어서, 상업영화라기보다는 독립영화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영화가 5공 체제의 폭력과 야만을 고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면 목적에 충실한 영화라고 평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계와 대립하는 인간, 그것도 체제에 굴종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소시민이 영웅적 개인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그려내고자 했다면, 굳이 이미 문화적으로 자주 소모된 민주화 서사를 꼭 끌어들였어야만 했냐는 아쉬움이 든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청량리 경찰서 앞마당에서 키우는 백구는 소시민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 백구가 끓여져 탕이 되었을 때 손헌주는 분노한다. 그 시점을 계기로 손헌주는 각성한다. 이용 당하고 도구처럼 쓰이고 결국에는 소모되는 소시민의 삶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걸고 체제에 맞서 항거를 시작한다. 그 서사의 웅장함에 비해 영화적 연출이 이에 못 미치는 아쉬움이 있었다.

장혁의 연기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편. 장혁 특유의 그 하이톤이 장혁이 연기한 최규남이라는 캐릭터와 묘하게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체제의 앞잡이로서 누구보다 체제 유지를 위해 앞장서 온 최규남도 결국에는 체제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결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과연 우리 앞에 자리하고 있고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씁슬한 뒷맛을 남긴다.

손헌주는 결국 소시민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체제에 맞서 몸부림치지만, 그것은 거센 태풍 앞에서의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호헌 철폐 시위로 결말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의 서사적 연결이 다소 매끄럽지 못했던 점은 아쉽다.

영화 속 반전 장치로 지승현이 역할을 하는데, 이 역시 조금은 무리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꼭 그런 반전이 아니더라도 전개에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그러한 반전 장치를 심어놓은 것이 이 영화가 갖는 독립성, 작가주의적 성격을 다소 훼손하는 감이 있다.

이럼에도 저럼에도 불구하고, 비행 중 시간을 보내기에는 썩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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