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오천 자전거길 종주 이후 서울에서 4일 간의 휴식을 가졌다. 화요일에는 완전한 휴식을, 그리고 수목금은 웨이트와 간단한 유산소를 수행하고 가뿐한 컨디션으로 새재-남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러 토요일 아침에 출발했다. 7시에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시외버스라서 집에서는 5시에 일어났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동서울까지 가는 동안 시외버스 예매 상태를 보니 전좌석 매진이라서 혹시나 자전거를 못 싣게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실을 수 있었다.
새재자전거길의 시작점은 상주 상풍교 인증센터이다. 애초에 새재-남한강 자전거길 라이딩을 기획할 때, 상주 상풍교는 낙동강 자전거길 라이딩 때도 함께 경유하니까, 나중에 스탬프를 몰아찍고 문경 불정역부터 라이딩을 시작할 요량이었다. 이렇게 하면 약 31km를 줄일 수 있어서 체력 부담이 훨씬 덜하다.
하지만 세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첫째, 문경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경 불정역 인증센터까지는 12km 길인데, 북에서 남으로 라이딩 후 다시 북으로 올라와야 하는 루트라 동선의 중복 내지 낭비가 있다는 것, 둘째, 내가 탄 시외버스는 문경을 경유해서 예천군 풍양면의 풍양버스정류소까지 가는데, 풍양버스정류소에서 상주 상풍교 인증센터가 3km 밖에 안 된다는 점, 셋째, 그렇게 31km를 가라로 하면 내 마음이 편치 않다는 점이다. 세 가지를 두루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풍양에서 내려서 온전히 새재자전거길을 다 달리기로 결심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upLciBZ1H8
화장실조차 없는 정류소이다. 왜 터미널이 아니라 정류소인지 알 수 있었다. 정류소 뒤편에서 라이딩 복장으로 빠르게 환복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이것저것 라이딩 준비를 마쳤다. 11시, 드디어 새재자전거길 라이딩을 시작한다.
가뿐하게 상주 상풍교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3km 길이라 특별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이후 상주 상풍교에서 문경 불정역까지는 31km로 다소 거리가 있지만, 길의 경사가 그리 심한 구간은 아니라서 달리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만만한 길도 아니었던 것이 작은 언덕을 수 개 정도 넘는 과정이 꽤나 힘이 드는 코스였다.
문경 불정역 인증센터는 U자로 굽이진 강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생각보다 보급이 금방 동나서 걱정이었는데, 인증센터 바로 앞에 카페가 하나 있었다. 잠시 더위도 식히고 보급도 할 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는데, 따님이 우주소녀의 다영이란다. 우주소녀가 누구인지 몰라 '따님이 어머님을 닮아서 미인이시네'라는 덕담을 남기고 총총 라이딩을 다시 하러 떠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Z18C0WNd83c
새재자전거길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큰 난관은 이화령 휴게소 인증센터까지 가는 길이었다. 거리만도 22km로 가볍지 아니한 거리인데, 정말 전국의 자전거길을 통틀어 가장 긴 업힐 구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경새재 관문까지 가는 길만 하더라도 은근한 업힐이라 쉽지 아니한데,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 지옥이 펼쳐진다.
이화령은 해발고도 548m의 고개이다. 물론 아무 사전조사가 없었던 나는 가다보면 끝이 나오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업힐을 시작했는데, 정말 가도가도 끝이 안 보였다. 페달을 밟다가 쉬었다가 다시 밟다가 쉬었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은근한 오기가 생겨서 자전거를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업힐한 게 너무 아까워서 여기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면 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동해안 자전거길의 임원 - 한재공원 구간은 업힐이 심하긴 했지만 다운힐과 업힐이 반복되고, 업힐 구간은 도저히 자전거를 탈 수가 없는 정도라 진즉에 포기하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었다. 하지만 이화령으로 가는 길은 업힐 거리로 모든 것을 압도한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안 보이는 무시무시한 업힐,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내가 이기나 이화령이 이기나 끝까지 가본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계속 페달을 밟아, 4시경에 드디어 이화령 고개를 정복했다. 그때의 쾌감은 정말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전거길 종주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이었다.
인증센터 스탬프를 찍은 후 해발 548m에서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전경을 둘러본다. 참으로 절경이다. 문경새재는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온 이후 처음이다. 그때도 이화령 고개는 안 들렸던 것 같다.
새삼 높이가 실감되는 전경이다. 저 멀리 낮게 보이는 도로는 중부고속도로인가 그럴 것이다. 높이 보이는 산맥은 소백산맥인 듯 싶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도로까지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즐거운 다운힐이 기다리고 있다. 6km 업힐은 1시간이 걸렸는데, 6km 다운힐은 10분도 채 안 걸렸다. 짜릿한 속도감에 취해 쭉 내리달리는 그 맛은 정말 환상이었다. 이게 바로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는 그 것일까?!?!
하지만 다운힐이 끝난 뒤에는 다시 업힐이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그 길은 며칠 전에 오천 자전거길을 마치고 시외버스를 타러 수안보로 이동하면서 한 번 경험했었던 길이었다. 이미 경험해 보았다는 것은 그렇게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이화령을 넘느라 체력이 거의 바닥인 상태였고, 수안보까지 넘는 고개도 꽤나 힘들다는 걸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수안보에 도착해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2jHXbOEjvo
다행히 수안보부터 충주 탄금대까지의 28km는 거의 평지 구간이라 쾌적하게 달릴 수 있었다. 수안보에서 출발할 때가 6시어서 마음이 조마조마하긴 했는데, 드넓게 펼쳐져 있는 푸르른 논을 보면서 라이딩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해가 서녂으로 지고 있어 발이 급하지만, 이런 탁 트인 풍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일몰 즈음하여 충주로 접어들었다. 고즈넉한 강과 산이 일몰 라이딩의 운치를 더해준다. 다행히 야간 라이딩은 피할 수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충주 시내권으로 진입했고 가로등이 제법 밝혀져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7시반에 드디어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거리만 놓고 보면 100km가 그렇게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이화령 고개를 넘는 경험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고, 또 그만큼 가장 힘들었던 자전거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성취는 뿌듯했고 나 자신이 대견했다. 이렇게 새재 자전거길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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