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ycle

7. 금강자전거길 종주 후기

무소의뿔 2022. 8. 25. 17:21

동해안 자전거길 경북 구간 라이딩을 마친 후, 거진 한 달을 이어가는 비 소식에 도통 자전거를 끌고 멀리 떠날 수가 없었다. 한 3주 정도는 길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더니, 연달아 태풍 '송다'가 몰려와서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빨리 안장에 오르고 싶어서 엉덩이는 들썩이는데,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니 정말 여름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태풍도 물러가고 늦여름도 슬슬 걷혀가는 8월 말이 왔고, 벌초를 하러 시골로 내려가야 했다. 그때 문득 한 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선친들이 잠들어 있는 묘가 충남 보령에 있고, 금강을 사이에 두고 남으로 접한 곳이 군산인데, 군산은 금강자전거길의 종착지 또는 출발지가 되니, 벌초를 겸하여 금강자전거길 라이딩을 다녀오면 따로 군산으로 내려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구체화하는 과정은 간단했다. 금강자전거길은 또 오천자전거길과 이어져 있으니, 아예 여름 휴가를 며칠 써서 금강과 오천 두 길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여정이 구상되었다. 그리하여 3일에 걸친 금강과 오천 자전거길 라이딩을 기획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7GYE2XCSqR0&list=PLib9RkHTGhevNamJGk0TcewvPhcmxCnjM&index=4 

https://www.youtube.com/watch?v=FlWLG_1s65M&list=PLib9RkHTGhevNamJGk0TcewvPhcmxCnjM&index=3

다이어트를 한창 진행 중인데, 이제 진짜 대회날까지 완전히 금주하겠다는 의지로 벌초 전날 마지막 술자리를 가졌다. 꽤나 마셔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다행히 벌초를 하면서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다. 출발 전에 아침으로는 휴게소에서 콩나물 해장라면을 먹고, 점심으로는 물냉면을 든든히 먹었다. 1일 섭취 열량을 1,500Kcal로 제한하였는데, 아침과 점심만으로 이미 섭취 열량을 다 채운 셈.

점심을 든든히 먹고 아빠 차로 실어나른 자전거를 군산까지 한 번 더 실어나르고, 엄마 아빠와 기념 사진을 한장 찍고 가뿐한 마음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군산의 금강하굿둑 인증센터에서 출발하여 익산 성당포구까지 가는 길은 평온하고 쾌적했다. 중간중간 지난 비의 흔적으로 물이 채 마르지 않은 구간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중간에 한 번 언덕을 넘어야 했지만 경사가 거의 없어서 라이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포장이 깔끔하게 잘 되어 있고 도로 상태가 좋아서 속도를 내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2시간을 달리며 쉬며 하다보니 어느새 27km를 가로질러 익산에 도착해 있었다.

1일차 라이딩에서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부분은 GPS였다. 다른 라이딩에서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이폰의 GPS가 문제라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적이 드문 시골이라 GPS가 잘 안 잡혀서였는지, 내 현재 위치를 정확히 지도에 반영하지 못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그래도 아직 해가 기니 걱정이 많이 되지는 않았다. 넓고 푸르게 펼쳐져 있는 전북의 기름진 평야를 만끽하면서 페달을 내딛는 여정은 바다를 따라 달리는 라이딩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온통 푸르름, 그것이 여름 자전거길의 으뜸가는 감상 요소가 아닌가 한다.

강을 끼고 도는 길이라 군데군데 언덕이 보이긴 하더라도, 언덕을 직접 헤쳐나가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풍광이 주는 즐거움 못지 않게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으니, 그것은 금강변에 마땅히 잘 정비된 휴양지나 여가시설이 없어서 보급에 꽤나 애를 먹었다는 점이다. 4시에 가지고 있는 물이 동 났는데, 5시 반이 되어 부여 궁남지 쪽에 들릴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실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 길이었다.

부여 궁남지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약간의 정비를 하는 동안, 또 한 가지 내가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다. 고프로 충전기를 잃어버렸다는 것. 나중에 아빠 차에 떨어뜨리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 그대로 두고 온 줄만 알았다. 부모님은 짧게 군산 나들이를 마치고 이미 서울에 올라간 상황이고, 부여에서 시간을 허비하느라 해가 금방이라도 질 기세였다. 고민 끝에, 1일차 라이딩은 해가 지기 전에 최대한 멀리 달린 후, 자전거를 묶어두고 밤 버스로 서울로 귀환하기로 했다.

익산 성당포구에서 백제보 인증센터까지 오는데 시간이 꽤나 많이 소요되었다. 코스 자체도 39km라 짧지 않은 구간이기도 했지만, 한낮의 무더위와 싸우랴, 궁남지에서 시간을 보내느랴 이래저래 휴식이 길어진 탓이 컸다. 백제보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이미 6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고,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중이었다.

급해진 마음에 백제보에서부터 다시 힘을 내 페달을 밟아보지만, 달이 차고 해가 기우는 것을 무슨 수로 막을쏘냐. 여지없이 해는 저물어버렸고, 야간 라이딩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예전 동해안 자전거길 강원 구간 중 임원 - 한재공원 코스에서 야간 라이딩의 혹독함을 뼈져리게 깨달은 후 되도록이면 야간 라이딩을 피하고 싶었는데, 별 수가 없었다. 라이트마저 떼어버려 칠흑 같은 어둠을 주변시로 간신히 헤쳐가며 길을 재촉했다.

다행히 무사히 공주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백제보에서 공주보까지 24km 길의 절반은 까막눈으로 달린 셈이다. 그래도 사고 없이, 부상 없이 공주보까지 도착했음 그 자체에 감사할 뿐이다. 공주보에서 공주 시내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시내 다이소 매장에서 싸구려 자물쇠를 하나 사서 묶어둔 후, 택시를 타고 세종시로 이동하여 거기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렇게 금강 자전거길의 1일차 라이딩이 마무리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s3-Q43cO8A&list=PLib9RkHTGhevNamJGk0TcewvPhcmxCnjM&index=2 

12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서 이것저것 정리를 한답시고 1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도, 습관이라는게 고약해 8시도 안 되 눈이 떠졌다. 다행히 아빠 차에 충전기를 찾아 이번에는 KTX를 타고 다시 공주로 내려왔다. 2일차는 그래도 일찍 서두른 덕분에 11시 반부터 라이딩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공주보에서 세종보에 이르는 길은 19km로 앞선 구간에 비하면 짧은 편이다. 2일차는 구름이 어제보다도 더 적어서 뙤약볕이 극심했다. 1시간 반여를 달리며 쉬며 세종보에 도착했다. 세종보 인증센터 뒷편으로 갤러리와 카페가 있다는 안내판을 보고 커피라도 마실 요량으로 힘겨이 올라갔지만, 아쉽게 안내와는 다르게 문이 굳건히 닫혀 있었다.

다음 코스는 세종보에서 대청댐에 이르는 37km 구간이다. 길이도 제법 길지만, 여지까지의 금강 자전거길과는 궤를 달리 하는 것이, 댐으로 향하는 길이라 업힐 구간이 상당했고, 중간중간 등락 반복도 심했다. 보급의 어려움은 매한가지로 여전했고 말이다. 특히 고생스러웠던 구간은 대전 진입 후 대청댐까지 가는 마지막 7km 정도 되는 구간이었다.

고생에 비례한 만큼 풍광이 받쳐주니 그래도 흡족함을 금할 수가 없다. 넓은 호와 그 뒤로 펼쳐진 숲을 보자니, 남방의 이국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한 달 동안 계속 내린 비로 수위가 꽤 높아져 있었는데, 넉넉한 물이 야릇한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대청댐 인증센터에서 스탬프를 찍는 것으로 하루 반이 걸린 금강 자전거길 라이딩이 마무리되었다. 금강 자전거길은 완주하였지만, 2일차에 목표했던 라이딩은 아직 남아 있었다. 다시 합강공원까지 28km를 돌아가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무심천교까지 27km를 더 가는 것이 내 목표였다. 즉, 2일차 라이딩은 아직 절반밖에 마치지 않은 셈이었다.

지나가는 라이더 분께 부탁하여 기념사진을 한 장 촬영하였다. 볕이 워낙 강해서 어차피 타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면, 차라리 태닝을 겸하는 게 더 나으리라. 한 세시부터인가는 웃통을 벗고 자전거를 탔다. 나중에 돌아와보니, 가방을 멘 부위를 빼고 살이 시뻘겋게 익었더라.

중간에 서울을 한 번 다녀오느라 감흥이 다소 깨지긴 했지만, 라이딩은 라이딩이고 여정은 여정이다. 곧고 길게 뻗은 금강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면서, 강과 숲과 논과 들의 정취에 젖어들었다. 이제는 오천 자전거길을 향해 다시 달려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