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ycle

8. 오천자전거길 종주 후기

무소의뿔 2022. 8. 25. 17:49

https://www.youtube.com/watch?v=jTPNyCkXoKg&list=PLib9RkHTGhevNamJGk0TcewvPhcmxCnjM&index=1 

대청댐에서 합강공원으로 출발할 때가 이미 4시를 넘긴 시점이었다. 전날 야간 라이딩의 곤혹스러움을 다시 한 번 온몸으로 겪었던 터라,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세종보에서 대청댐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을 방금 전에 생생히 체험하였기 때문에 한층 각오를 다지고 길을 나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S-cJJwPstvo&list=PLib9RkHTGhevNamJGk0TcewvPhcmxCnjM&index=15 

한 번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거라 그랬을까, 28km 길인데도 첫 37km 길 이상으로 힘에 부쳤다. 그렇지만 누가 대신 가 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합강공원에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다. 6시가 조금 못 된 때였다.

6시가 되니 마음이 또 불안해졌다. 합강공원에서 무심천교까지는 27km 길로 거리 자체도 무시할 거리가 아니고, 이미 힘이 빠질대로 빠져버린 내가 시속 20km 이상으로 페달을 돌릴 자신도 없었다. 그렇지만 6시도 안 되었는데 라이딩을 포기하기에도 애매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낫고, 해도 병신, 안 해도 병신이라면 하는 병신이 낫다는 게 내 지론이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여정을 떠난다.

아니나 다를까, 무심천교를 10km 남겨두고 여지 없이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한바탕 힘든 야간 라이딩을 각오하고 있는데, 자전거 안내등이 촘촘히 늘어서서 마치 빛의 도로처럼 길을 안내하는 것 아닌가! 어제의 야간 라이딩과는 결이 달랐다. 잘 펼쳐진 길을 따라 사물을 충분히 식별할 수 있을만큼의 빛이 뿜어져 나오니, 마치 빛을 따라 달리는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둘째날의 야간 라이딩이야말로 이날 라이딩의 백미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무심천교는 청주 시내에 속해 있어서, 도로 상태가 여느 시골길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강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한 조명이 도로를 비추고 있었고, 조깅이나 라이딩을 즐기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점차 잦아졌다. 완전히 마음을 풀고 2일차 라이딩을 성대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내서 무심천교 인증센터에 잘 도착했다. 이날 하루동안 달린 거리가 117km이니, 그야말로 역대급이라 할 수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FznSaMHjl0k&list=PLib9RkHTGhevNamJGk0TcewvPhcmxCnjM&index=14 

무심천교 근처의 숙소에서 편안하게 하룻밤을 잘 묵은 후 아침 일찍 3일차 라이딩을 시작했다. 9시가 되기 전에 페달을 뗐으니, 그간 여정 중에 가장 서두른 날이었다. 일찍 출발하니 만큼 마음도 더 여유로었다. 무심천교에서 백로공원까지는 26km 거리인데, 이 또한 고저 차이가 거의 없는 편안한 길을 따라 달리는 여정이었다. 2시간을 쉬며 달리며 백로공원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즐거움은 거기까지였다. 백로공원에서 괴강교까지의 길은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군데군데 편한 구간은 물론 있었지만, 중간에 222m 언덕을 넘는 과정이 매우 곤혹스러웠다. 업힐 라이딩과 자전거 끌기를 병행하면서 그 언덕을 넘기까지 30분을 진땀을 뺐다. 그 길은 청주에서 괴산으로 넘어가는 '모래재'였다.

다행히 긴 업힐 끝에 긴 다운힐이 나를 맞아주었다. 괴산의 아무 편의점에 들러 육개장 사발면과 단백질 음료로 요기를 하고 마저 페달을 돌려 괴강교 인증센터에 간신히 도착하였다.

괴강교에서 행촌교차로에 이르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오천 자전거길의 험난한 구간은 후반부에 잔뜩 몰려 있는 듯했다. 은근한 업힐은 끊어질듯 계속되었고, 체력은 점점 고갈되었다. 애초에 출발할 때부터 오른쪽 허벅지가 예사롭지 않다 느꼈는데, 이제는 발을 한 번 굴릴 때마다 통증이 올라올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 없다며 마지막 투지를 불살랐다. 그렇게 행촌교차로에 도착했다.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는지, 중간중간 사진을 찍을 마음이 안 들더라. 기껏 건진 풍경이라고는 어느 다리를 건널 때 찍은 이 한 컷이 전부이다. 내륙으로 치달을수록 길이 험난할 것이라 막연하게 예상하기는 했다만, 막상 몸으로 겪게 될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그 고됨만큼 비례하여 성취의 짜릿함이 있다. 두 자전거길을 한 번의 여정으로 마무리 지었다는데서 오는 뿌듯함은 말로 다할 수 없을만큼 컸다.

3일간 달린 거리를 합치면 어언 300km가 된다. 프로 사이클 선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한테 빌린 평범한 로드 바이크 하나로 전국을 누비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작을 했고, 많이 왔고,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또 스탬프로 종주 수첩의 몇 페이지를 채웠고, 이제 남은 자전거길을 정복하러 다시 행낭을 꾸려야 한다. 완주가 다가올수록 의지는 더욱 강렬해진다.

앞으로 3주. 지금처럼 계속 무사히, 다치지 않고, 즐겁고 건강하게 달릴 수 있기를 넌지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