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코에이 삼국지를 참 즐겁게 했다. 그 당시에는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와 같이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게임이 인기 있던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류의 게임이 요구하는 순발력이 부족했고, 그래서 자연히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나 롤플레잉 게임과 달리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는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취하고 있었고, 내게 주어진 턴 동안 이런저런 사항들을 관리하고 통제해서 장수와 도시와 국가를 키우는 방식이라 순발력보다는 게임 이해도와 전략적 판단이 판세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그야말로 나한테 잘 맞는 게임이었다. 더군다나 어렸을 때 나는 역사 덕후이자 삼국지 덕후였다. 그 시절의 나는 하교하고 학원에 가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서 이문열의 삼국지를 탐독하는게 인생의 낙이었다. 그런 내게 있어 삼국지를 배경으로 실제 장수에 빙의하여 플레이하는 코에이 삼국지가 어찌 아니 재미있었을까.
중학교에 올라가던 때에 생일선물로 '코에이 삼국지 8'을 받았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내게 주어진 컴퓨터 이용 시간이 토요일 1시간, 일요일 1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모조리 삼국지를 플레이하는데 썼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코에이 사랑은 계속되어 삼국지 9, 10, 11 등 계속 출시되는 신작 시리즈를 모두 섭렵해갔다.
이후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느라 게임에 대한 관심이 자연히 사라져갔다. 게임을 하면서 새벽까지 안 자던 어린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다. 그런데, 2018년 로스쿨에서 막바지 변호사시험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가 모바일게임으로 재해석되어 재탄생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그마치 4년이다.
신삼국지 모바일은 코에이 삼국지의 요소를 바탕으로 모바일 플랫폼에 맞게 시스템을 변용시킨 게임이다. 장수를 육성하고 군단을 이루어 다른 유저와 대결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코에이 삼국지와는 결이 다르지만, 그 시절 향수를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마약 같은 유혹이었다.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게임을 켜놓고 공부를 할 정도였다. 다행히 한 번에 붙었으니 망정이지, 모바일게임 때문에 떨어졌더라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을 것이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신삼국지 모바일은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꽤 유용한 컨텐츠였다. 비록 업무가 바빠 미리 시간 약속을 정해놓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군단 컨텐츠는 많이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개인적으로 틈틈이 즐길 수 있는 육성 컨텐츠는 꽤나 성실히 진행했다. 특히 야근하는 날이 많다보니 적적한 밤을 가끔씩 달래기에도 훌륭했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11 서버에서 게임을 시작했는데, 10 서버와 통합이 되더니, 다시 3 & 4 서버와 통합이 되었고, 급기야 서버 개념을 폐지하고 시즌제로 헤쳐모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때마다 군단이 여러번 바뀌었다. 처음 11 서버에서 게임을 시작할 때는 1인 군단인 '관악' 군단을 창설해서 독고다이로 활동했는데, 이후 '위' 군단에 초빙되어 활동하다가, 11 서버와 12 서버가 통합하면서 '신위' 군단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3 & 4 서버와 통합이 되면서 '어피치' 군단으로 이동 후 '네오' 군단으로, 시즌제 중반에는 '선' 군단으로 이동하였다. 지금도 '선' 군단에서 활동 중이다.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아이디는 '송변'이다. 생각해보면 로스쿨생일 때부터 송변이었으니 변호사 자격 사칭이다. 어찌되었거나 지금도 송변으로 열심히 활동 중이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 게임이 유지될지, 언제까지 이 게임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세월을 들여서 무엇인가를 길들이고, 길들여진다는 것은 참 의외로 의미가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비록 게임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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