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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 섬&산] [027] 통영 욕지도 천왕봉 2025. 5. 2. 금

무소의뿔 2025. 5. 15. 21:47

아침 배를 타러 6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일어났다. 어제 오후부터 쏟아붓던 비는 거짓말처럼 그치고, 하늘이 푸르다.

한산한 거리를 지나 여객선터미널까지 잠을 좇으며 걷는다. 터미널에는 첫 배를 타고 통영의 여러 섬으로 각각 향하는 수많은 여행객, 등산객으로 붐빈다.

 

오늘의 첫 번째 행선지는 욕지도이다. 배로 1시간 여를 가면 통영 관내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욕지도에 도착한다. 두미도, 욕지도, 연화도가 군도를 이루는데, 두미도는 연계해서 방문하기에는 배편이 다소 제한되어, 오늘은 욕지도와 연화도를 둘러보는 일정으로 정했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가벼운 구름 무리가 하늘을 아직 덮고 있다. 물살을 가르며 아일랜드 호는 통영항을 떠난다.

욕지도는 꽤나 큰 섬이고 인구도 많다. 잘 정비되어 있고 어선들로 분주한 욕지항이 섬의 번영도를 짐작케 한다.

오늘의 목표는 천왕봉 등정이다. 천왕봉 외에도 아름답고 잘 조성된 트레킹 코스가 엿보인다. 시간 여유가 많은 여행객이라면 욕지도 일주 트레킹에 도전해봐도 좋을 듯하다.

카페 사장님께 부탁하고 가방과 바람막이를 잠시 맡겨 두고 스틱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챙겨서 등산을 시작해본다.

욕지도가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충이라 그런지 해군 부대까지 정주하고 있다. 작년에 백령도에 갔을 때 섬 인구의 절반이 해병대였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타일 공예가 눈에 띄는 오래된 성당도 있다. 섬에서의 포교의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어간다고 한다.

이것이 교과서에서만 보던 계단식 영농, 뭐 그런건가? 잘 고른 밭들이 인상적이다. 어느 섬이든 항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항구가 가장 평지이고 약간 분지 지형처럼 집들이 배치되는데,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를 연상시킨다.

태고암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코스가 최단코스이다. 물론 태고암까지 걷는 거리가 꽤 되긴 하는데, 포장도로라서 걷기에 불편함은 없다. 다만, 경사도는 꽤 있는 편이다.

여기서 직진하면 해군 부대이고,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야 태고암이 나온다.

오를 때는 태고암 루트를, 내려올 때는 새천년기념공원을 경유하는 길을 택했다. 연화도 가는 배편을 타기까지 시간이 다소 넉넉했기 때문에, 등산 루트와 하산 루트를 다르게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인기척이 거의 없는 작은 암자이다. 우물이 잘 되어 있길래 목을 잠시 축이고 등산을 이어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다가 잘 엿보인다. 평화롭다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정경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300m만 더 가면 천왕봉이다. 태고암 루트는 전반적으로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걷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짚을 깔아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정비의 정도를 실감할 수 있다. 1박2일에 나온 뒤 섬의 유명세가 높아진 덕분이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욕지도 앞바다의 전경이다. 유동등대가 있는 작은 반도 너머로 욕지도 서남쪽의 바다가 푸르다.

다른 등산객에게 부탁해서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바위에 암각으로 글귀가 새겨져 있다. 숙종 때의 통제사인 이세신선이 새긴 문구라고 한다.

약 350년 전에 새긴 글귀란다. 풍화를 막기 위해 아크릴 판을 덮어 비와 바람과 그밖의 침식을 방지하고 있다.

사실 진짜 정상에는 기상 관측기기가 설치되어 있고 출입이 통제된다. 그 옆에 난 데크가 민간인이 접근할 수 있는 사실상의 최고 지점이다.

하산하는 길에는 잠시 대기봉에 들려 욕지도의 반대편 바다를 둘러보았다.

욕지항이 포근하게 좌측에 자리하고 있고, 좁은 물길 밖으로는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작년에 추자도에 갔을 때 봤던 바다의 색감과 똑 닮아있다.

모노레일은 아직 설치가 다 안 되었는지, 역사만 있을 뿐 문을 굳게 닫고 있다. 상부역사에는 화장실도 있는데, 역시 잠겨 있다.

1km라고 되어 있지만, 꽤나 더 많이 내려가야 공원이 나왔던 듯 싶다. 중간에 일부 경사가 가파른 구간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하산 중간에 욕지도를 잘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어 잠시 머무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날씨까지 좋아서 등산의 맛이 배로 살아났다.

기념공원은 기념조각물 외에는 딱히 볼 게 없다.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여기서부터는 포장도로를 따라 욕지항으로 다시 이동할 수 있다.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마치 베네치아 옆에 있는 무라노 섬을 연상시킨다.

카페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근처의 해녀 김금단 포차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밤에는 포차로 낮에는 식당으로 운영하는 가게이다.

고등어회덮밥과 고등어물회 중에 고민하다가 고등어회덮밥을 주문했다.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고등어를 회덮밥으로는 처음 먹어보는데, 일반 물회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두 그릇도 먹을 수 있었다.

시간표를 보면, 아침 첫 배로 서두르면 욕지도와 연화도를 하루에 함께 둘러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코스를 잘 기획해보도록 하자.

배를 타고 이제 연화도로 향한다. 욕지도에서 연화도로 가는 배는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발권이 안 되고, 현장에서 여객선 승무원에게 직접 구매해야 한다. 미리 선사에 문의 전화를 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27번째 섬&산 등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