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엄마 생신 기념으로 몸도 아직 성치 않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청 근처의 롯데호텔에 위치한 무궁화에 다녀왔다. 태백, 백록, 무궁화 3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그 중 백록 코스로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롯데호텔 정문으로 들어오면 로비 안쪽에 무궁화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8층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서울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해두어 룸으로 자리를 안내 받았다. 유기로 만든 수저와 자개판이 아주 정갈한 느낌을 자아낸다.
주전부리로는 호두, 대추, 은행, 그리고 달달한 한국식 과자가 나왔다. 과자가 식감이 특이했는데, 바삭하지만서도 혀 끝에서 녹는 적당한 단맛이었다.
와병 중이긴 하지만 좋은 날이니까 술 한잔이 빠질 수 없다. 엄마가 고른 '여포의 눈물'을 반주 삼아 나눠 마셨다. 부드럽고 깔끔한 맛의 화이트와인이었다.
표고강정과 도미회가 전채요리로 나왔다. 도미회가 특히 훌륭했는데, 숙성의 정도도 알맞았을 뿐더러 소스의 맛이 일품이었다. 적당한 시큼함과 단 맛의 조화가 훌륭했다.
다음 요리는 진구절이다. 메밀로 만든 얇은 피에 8가지 속재료를 취향껏 싸서 전병처럼 만들어 먹는 요리이다. 안성재 셰프가 좋아할 만한 익힘 정도의 채소들과 잘 구워진 고기의 맛이 훌륭했다. 특히 왼쪽의 당근의 맛이 기억에 남는다. 살면서 먹은 당근 중에 가장 잘 조리된 당근이 아니었나 싶다.
코스 중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음식은 바로 이 동충하초 해물만두가 아니었나 싶다. 만두 자체도 너무 맛있었는데, 진짜 압권은 동충하초로 우려낸 육수였다. 보통의 해산물 육수와는 다른 깊이 있는 맛이었다. 이날의 Best Pick이다.
그 다음 요리인 꽃게찜도 훌륭했다. 꽃게살을 완전히 발라내어 그야말로 꽃게의 순살만을 내왔다. 꽃게가 참 맛은 있지만 발라먹기가 여간 손이 많이 가는게 아닌데, 이렇게 순살만 먹으니 매우 행복했다. 게다가 부추로 낸 오일의 알싸한 매운 맛이 게살 특유의 비릿함을 다 잡아주어서 조화로움이 매우 훌륭했다.
사실 이 해신탕 때문에 롯데호텔을 골랐다. 엄마가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더 좋아하기 때문. 예전에 강화도에 놀러갔을 때 먹었던 해신탕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소 정갈(?)한 탕이 나와 놀랐다. 물론 갖은 해산물을 마구잡이로 넣고 푹 끓이는 탕도 매력적이지만, 정제된 맛의 해신탕도 나쁘지 않았다.
메인 메뉴로 나온 한우 안심구이. 고기와 가니쉬 모두 훌륭했다. 다만, 안심은 내가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부위가 아니긴 하다. 굽기 전에 미리 레어로 해달라고 요청하는 걸 깜빡해서 미디움으로 구어져 나왔다.
식사는 연잎밥, 조기비빔밥, 국수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연잎밥은 집에서 엄마가 가끔 해먹는데, 무궁화의 연잎밥은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궁금해서 시켜봤다. 그런데 엄마표 연잎밥과 별 차이는 없더라... 조기비빔밥 먹을걸!!!
엄마가 주문한 조기비빔밥. 아빠가 주문한 국수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식사 중에는 조기비빔밥이 제일 괜찮은 선택지인 듯하다. 엄마는 특별히 생신이라고 반상이 더 화려하게 나왔다. 아빠와 나는 목기 받침인데, 엄마는 자개판 받침이다. 반찬 수도 더 많고 무엇보다 소고기미역국이 나온다. 롯데호텔만의 특별한 서비스인데, 엄마가 아주 대만족하셨다. 대성공이다.
마지막 디저트로는 떡과 푸딩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수정과 베이스의 푸딩 맛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이스크림은 녹차 맛이었는데, 팥앙금과 같이 나와서 조합이 좋았다.
따로 주문한 수제케이크를 받고 엄마가 매우 만족하셨다. 엄마 생일잔치 대성공이다.
즐거웠던 무궁화에서의 기억을 오랜만에 다시 상기하면서 나도 다시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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