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일요일 아침, 달리기를 하며

무소의뿔 2024. 7. 21. 13:29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그 사이, 러닝화를 챙겨 신고 달리기를 나선다. 어제 저녁 러닝 채비를 마쳐서 집 밖으로 나서던 그 때, 빗방울이 조금씩 땅을 적셔 왔다. 이 정도는 그냥 맞으며 달릴까도 싶었지만 머지 않아 폭우가 쏟아져 내려왔다. 하늘은 해질녘보다 꽤나 많이 앞서서 어두워졌다. 그렇게 밀린 독서를 하고 영화를 보며 토요일 저녁을 보냈다. 하릴 없이 쇼츠와 릴스를 보다 2시 즈음해서 잠이 들었다가 10시 30분이 넘어서야 일어났다. 1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며 잠을 쫓아내고 집 밖으로 나섰다.

역시 달리기는 트레드밀보다는 밖이 좋다. 혹시 해가 날수도 있으니 선크림도 챙겨 발랐다. 실외 러닝이 현실세계라면 트레드밀은 가상세계다. 트레드밀에서는 기록이 쌓인다는 것 말고는 달리는 의미가 없다. 달리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상념에 잠겨보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그 과정이 나는 좋다. 일종의 뇌 버전의 디스크 조각모음이랄까, 그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내가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지만 뭔가 정리된 느낌은 든다.

일주일마다 달리기 거리를 500m씩 늘려가고 있다. 올봄에 1km에서 시작했는데 오늘은 벌써 7km를 달렸다. 10km까지 달리기를 늘릴 계획이다. 다행히 요새는 운동을 위한 시간이 충분히 많다. 10km를 달리고 나면 무얼 하면 좋을까? 속도를 올려볼까, 거리를 조금 더 늘려볼까, 신체 능력이 향상되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목적적이다. 이참에 올 가을에 바디프로필을 다시 찍어볼까? 우선은 체지방을 3kg 정도만 감량해볼까? 식단 조절도 병행해야겠는데? 그런 생각에 사실 어제 100L 들이 냉동고를 쿠팡으로 주문했다. 닭가슴살 도시락을 대량으로 쟁여둘 저장 공간이 필요했다. 단백질 쉐이크와 BCAA, 아르기닌도 새로 주문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 그 과정을 상상하고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진작부터 설레인다. 노상 '새로 태어나자'는 다짐을 하지만, 그 실천은 언제나 더디다. 나의 일상은 무용하고 유해하지만 참을 수 없는 유혹들로 가득 차 있다. 소금물을 들이키는 일 따위는 이제 멈춰야 하는데, 지금 또 마음을 새롭게 먹기는 했는데, 그 하릴없는 유혹들에 또 나는 종종 무너지곤 하겠지. 하지만, 작지만 확실한 변화들도 없지는 않다. 우선 연초를 더 이상 사서 피지 않는다. 최근 전자담배를 구입해서 연초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얻어피는 거 외에는 따로 사지 않는다. 올초에 도전했던 금연에는 실패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꽤 칭찬할 만한 일이다. 둘째, 7km 러닝을 하더라도 인대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인대가 강화되었나보다! 다시 본격적으로 아웃도어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때이다. 음, 그 외에는 잘 생각이 나지는 않는데, 뭐 긍정적인 변화가 한두어 가지는 더 있겠지 말이다. 너무 사소해서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그런 변화들.

탄천과 한강의 합수부까지 달리기를 했다. 나무는 절반 정도 잠겨버렸다. 뿌리가 썩는 건 아닐까? 대교도 기둥의 절반이 잠겨 있다. 밤사이 퍼부어내린 비로 한강 수위가 정말 높아졌구나. 문득, 나는 길 위에서 서서 강을 바라보는데, 물은 강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은 나한테는 강이지만, 물한테는 물의 길이다. 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이겠지?

청담나들목으로 나와 달리기를 계속 한다. 청담삼익재건축조합이라는 이름이 군데군데 크게 보이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다. 이미 꽤나 건물이 높이 올라와 있다. 저런 집은 누가 살까? 저기 입주할 사람들은 무슨 기분일까? 가끔, 이 현장에 들려서 자기가 들어갈 집을 올려다볼까? 나라면 그럴 거 같은데 말이다.

조금 더 나아가니 경기고등학교 정문에 2025년도 법학적성평가 시험 안내 플랭카드가 붙어 있다. 오늘이구나. 나의 일이 아닌 일에는 사람들은 관심을 전혀 가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시험을 봤던 때가 2015년이고 2016년도 법학적성평가 시험이었으니, 올해 시험을 보고 로스쿨에 진학하는 친구들은 나의 9년 후배가 되겠구나. 2028년이 되어야 1년차 변호사로 세상에 나오겠구나. 2028년에는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40을 목전에 둔 나이일텐데 말이다.

동네를 넓게 한 바퀴를 돌아 7km를 모두 달렸다. 집에 돌아와 다이어리를 끄적이고 닭가슴살을 뎁힌다. 전자레인지 안을 한 번 청소해야겠구나. 너무 더럽다. 커피를 한 잔 더 내려 마신다. 누군가가 선물해 준 스타벅스 다크로스팅 레디메이드 제품이다. 1년 전에 선물 받은 이 스틱형 커피를 타 마시기 위해 몇 주 전에야 비로소 커피포트를 샀다는 게 괜히 웃기다. 점심을 먹고 이제 집을 나설 준비를 해야겠다. 나의 7월은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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