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코타키나발루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친구는 업무 때문에 호텔 로비에서 일을 하기로 했고, 나 혼자 시내 투어를 다녔다. 사실 나도 언제 일을 해야할지 몰라서 노트북을 챙겨오긴 했는데, 다행히 노트북을 열지 않아도 되었다. 공휴일은 화요일까지였는데 비행기 값을 아끼기 위해 연차를 하루씩 써서 수요일을 더 노는 일정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고 일단 노트북을 가져오긴 했는데, 괜히 가져왔다! 오늘 관광은 시내의 골드 모스크에서 시작했다. 구름이 없이 쨍한 햇살이 내리쬐서 시내 관광하기에는 좀 더운 날이긴 했다.

블루 모스크가 고즈넉한 느낌이라면, 골드 모스크는 시내의 가장 큰 모스크로서 (아마 주립 모스크였던 것 같다) 통행하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모스크 내부로 들어갔는데, 마침 예배 시간이었다. 남성과 여성 출입구가 서로 다른데, 예배당에서는 또 남녀 구분이 없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몸을 정갈히 한다는 의미로 손과 발을 닦고 귀 뒤를 닦는다. 사람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나도 슥삭슥삭 물칠을 한다.

기웃기웃대다가 나도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12시 예배 타임이었는데, 어떤 젊은 무슬림 청년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가 있어서 무서워서 황급히 예배당 밖으로 나왔는데, 청년이 치마 비스무리한 천을 꺼내면서 예배당에서는 반바지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치마를 받아서 허리춤에 둘러매고 다시 예배당으로 향했다. 못말리는 호기심이다. 무슬림들이 예배드리는 방식을 주의깊게 살피면서, 나도 같이 예배를 드렸다. 몇 번의 절과 인사, 5분 정도로 예배는 끝이 났다. 청년에게 감사를 표하며 천을 돌려주려 하는데, 기념으로 가지라고 했다. 내가 예배하는 모습을 힐끔힐끔 지켜보던 앞열의 할아버지는 내게 따봉을 날려주었다.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타자화된 이미지와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 직접 마주하고 나면 실상은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다 사람이고, 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귀한 경험이었다.

골드 모스크를 뒤로 하고 사바 주립 박물관으로 향했다. 주립이라는 이름에 비해 전시 규모나 전시품 구성은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이 지역의 오랜 부족 전통과 역사를 (얕은 영어로 힘겹게나마) 훑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베트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듯한 복장이지만, 또 폴리네시아 특유의 문화 전통도 느낄 수 있었다. 이 박물관 기념풉샵에서 다양한 기념품을 구매했다. 마그넷, 천장에 거는 대나무 풍경, 부족 가면까지 아주 주의 깊게 고르고 고른 아이템들이고, 지금도 내 방을 유니크하게 꾸며주고 있다.

박물관 투어까지 마치고 다소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근처 맛집을 가려고 그랩을 타고 이동했는데, 맛집은 못 찾겠고, 새로 이동하기까지 허기를 참기 어려워, 그냥 눈에 보이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쌀국수로 요기를 했다. 베트남 커피도 하나 주문했는데 연유가 들어가서 달달했다.

종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근처의 불교 사원을 향했다. 불교가 여기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종교라 그런지 절이 매우 한산했다. 그래도 화교 한 무리가 있긴 했다.

불교와 십이지신이 관련이 있었던가..? 희한하게 십이지 동상이 도열해 있었다. 생각해보니 베트남 다낭에서도 비슷한 석상을 봤던 것 같다.

그랩을 타고 좀 멀리 이동해서 코타키나발루 도시의 북쪽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는 핑크 모스크를 보러 갈 차례이다. 대학교 안에 있는 모스크인데, 색감이 예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블루 모스크, 골드 모스크, 핑크 모스크 각각이 다른 매력으로 참 예쁘다. 핑크 모스크에는 사진을 찍는 중화권 관광객이 참 많았다.

머지 않은 곳이 구 사바 주 청사가 있다. 꽤나 현대적으로 높게 솟은 건물이다. 지금은 청사로 쓰지 않고 있어서 출입이 금지된다.

바로 근처의 신 청사. 말레이시아의 국력을 보여주는 위용이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도청 중에 이 정도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은 없다.

관광을 마치고 일을 끝낸 친구를 기다릴 겸 시내의 올드타운 화이트커피로 옮겨 왔다. 땀을 많이 흘려 당을 보충할 겸 과일 음료를 주문했다.

시내에 하얏트 리조트가 2개가 있는데, 우리가 묵었던 하얏트 리젠시 말고 새로 지은 하얏트 센트릭이라는 건물이 있고, 거기 라운지에서 마지막 노을을 즐기기로 했다.

신축이라 그런지 라운지도 아주 예쁘게 잘 꾸며놨다. 라운지와 수영장이 바로 이어져 있는데, 투숙객들은 수영장에 접한 실외 바 테이블을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실내에 머물렀다.

칵테일을 한 잔씩 주문했는데, 손님이 칵테일의 이름을 붙여주면, 바텐더가 그 느낌을 살려서 feel 대로 만들어 내오는 칵테일이 있어, 그것을 주문해 보았다. 요새 호랑이에 꽂혀서, 칵테일 이름을 Brutal Tiger로 했는데, 피스코 사워가 나왔다. 칠레에서 마시던 것에 비하면 훨씬 도수는 가벼운 느낌.

구름이 두꺼워서 예쁜 석양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하얏트 센트릭 바에서의 한가로운 저녁이었다.

마지막 저녁 식사로는 벼르고 벼러왔던 ‘신키바쿠테’를 다녀왔다. 원래 3일차 점심으로 여기를 가려고 했는데,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근처의 다른 바쿠테 가게를 들렀던 것. 다행히 평일 저녁이라 운 좋게 웨이팅 없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진은 급하게 찍었는데, 마치 홍콩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와서 너무 마음에 든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먹은 모든 음식 중에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는 훌륭한 맛이다. 국물이 있는 바쿠테와 국물을 쫄여서 내오는 바쿠테 두 가지를 먹었는데, 둘 다 너무 만족스러웠다. 국물은 옷닭을 삶은 육수에 한약재를 더한 맛과 비슷한데, 아주 깊고 진했다. 졸여서 내오는 바쿠테는 간이 잘된 족발을 먹는 듯한 맛이었다.

밤 비행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쇼핑몰을 돌다가 이번엔 아이브를 발견했다. 노을, 스노클링, 반딧불, 바쿠테, 하얏트 그리고 아이돌로 꽉 채웠던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이렇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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