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 달 간의 남미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은 리우 데 자네이루의 시내 관광 명소를 둘러본 후 밤 비행기로 남미 대륙을 떠나는 날이다. 핸드폰이 고장 나서 마지막 날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밤 사이 완충이 되어서 배터리를 아끼고 아껴서 조심히 돌아다니려고 했다.
핸드폰도 문제였지만 흐린 날씨도 큰 문제였다. 하루종일 비 예보가 있는 수요일이다. 호텔 근처에 미니소가 있어서 급하게 우산을 샀는데 무려 50 헤알이나 한다. 그래도 비를 맞고 다닐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우산을 샀다.
먼저 예수상을 보러 갔다. 여기서 또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지난 주 칼라파테에서 만났던 형님과 그야말로 우연히 조우한 것!!! 다른 일행 분들과 함께였는데 핸드폰 배터리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내게는 단비 같은 만남이었다. 또 리우 같이 치안이 불안한 동네에서는 혼자보다는 여럿이 다니는 게 훨씬 안전하기도 하다.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 기분이었다.
예수상은 700m 높이의 코르코바도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데, 비가 계속 오고 있어서 올라가도 예수상을 보기 어렵다고 점원이 안내했다.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에 형님을 만났고, 본인도 여행 마지막 날이라서 비가 오든 말든 무조건 올라갈 것이라 했다. 힘을 얻어서 나도 트렘을 타고 예수상을 보러 올라갔다.
언덕 정상에 오르니 비바람 때문에 정말 예수상이 흐릿하게만 보였다. 이건 예수상을 보는게 아니라 예수상의 흔적을 보는 것이다.
그래도 조금 기다리다보니 안개가 걷히는 찰나의 순간들이 다가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예수상을 온전히 카메라에 담았다. 역시 올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맑은 날이면 리우 데 자네이루의 전경과 함께 볼 수 있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예수상의 온전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다시 입구로 내려가는 트렘을 기다리다가 10 헤알을 주고 꽤 마음에 드는 키링을 하나 구매했다. 여행 내내 짐이 늘어날까봐 기념품을 사는데 인색했었지만 마지막 날이 되니까 거침이 없다. 어차피 헤알을 남겨가도 한국에서는 쓸 수가 없으니, 오늘 돈을 다 털자는 마음이었다.
예수상 관람을 마치고 다음으로 찾은 곳은 셀라론 계단. 셀라론이라는 아티스트가 타일로 계단을 하나하나 채우는 작업을 했는데, 이게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전세계로부터 타일을 기증 받아 예쁜 거리가 완성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인데도 셀라론 계단은 전세계의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셀라론 계단에 올라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일행이 있어서 남길 수 있었던 귀중한 사진이다.
우리나라에서 보내온 태극기 타일도 있다. 셀라론은 이 거리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벽을 올라가 기념 사진을 또 남겨본다.
셀라론 계단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리우 데 자네이루 대성당을 보러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일행 중 한 분이 자전거를 탄 소매치기에게 핸드폰을 빼앗길 뻔한 일이 있었다. 여행 내내 특별한 문제 없이 잘 다녔는데, 확실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치안이 불안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핸드폰도 지키고 다친 데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길을 재촉해 대성당에 들어선다.
밖에서 봤을 때는 크다는 것 외에는 별 감흥이 없는 건물이었지만, 안에서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를 보니 꽤 볼 만 했다. 십자가에서 뻗어나오는 광휘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대성당에 들린 후 현지인들한테 인기가 좋다는 로컬 빵집을 찾았다. 평일 낮인데도 빵을 사기 위해 늘어선 대기줄을 보고 구매를 포기했다. 화려한 가게 내부 장식과 꽤 훌륭한 빵 맛으로 호평을 받는 집이라든데 조금 아쉽긴 했지만, 코파카바나로 돌아가 늦은 식사를 하기로 했다.
리우에서의 마지막 식사이니만큼 메뉴를 고민해서 골랐다. 다소 가격이 사악하긴 하지만 80 헤알짜리 스테이크와 리조또를 주문했다. 아르헨티나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구성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끼니이니만큼 맥주를 곁들여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새벽 3시 비행기라서 원래 계획으로는 해변 근처의 바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99 앱으로 공항으로 이동할 요량이었지만, 저녁이 되니까 빗방울이 거세져서 도저히 해변의 바를 즐길 상황이 아니었다. 이곳의 바는 모두 오픈 윈도우 형태여서 들이치는 빗속에서 그닥 운치 있는 밤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공항으로 우선 이동해서 여행일기나 마무리하기로 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100 달러와 80 헤알이었다. 원래는 99 앱으로 택시를 호출 후 카드로 결제하고 80 헤알은 공항에서 간단한 요기와 기념품 구매에 쓸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카드 결제 옵션에 장애가 생겼다. 퇴근 시간이라 갈레앙 공항까지는 90 헤알에 달하는 요금이 나오는 상황. 숙소에 대기 중인 다른 여행객에게 돈을 꿀까도 싶었지만 영어가 안 통해서 포기하고 황망한 상황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텔 직원에게 공항으로 가는 직통 버스를 어디서 타야 되는지 물었는데, 호텔에서 갈레앙 공항까지 가는 콜택시를 80 헤알에 잡아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정말 마지막까지 다이나믹한 여행이다. 현금을 탈탈 털어 갈레앙 공항으로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6시간 정도를 대기한 끝에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한 달 동안의 남미 여행이 끝이 났다. 제대로 준비를 못 마친 상태에서 여행을 시작해서 걱정과 불안이 많았지만, 다친 데도 없고 아픈 데도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12시간을 날아 두바이로 이동하고, 다시 8시간을 비행해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대장정도 무사히 마쳤다.
한 달 간의 남미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 그리고 대자연과의 조우로 가득했다. 인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는 지금, 남미 여행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깔로 나의 앞으로의 날들이 채워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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