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verseas

2023 남미 여행 [Day.18]

무소의뿔 2023. 4. 29. 08:08

23. 4. 27. 목요일

자고 일어나니 다리의 통증이 극에 달했다. 단순히 걷는 것조차 힘겨웠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곡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다리 상태만 놓고 보더라도 더 이상 트레킹 진행이 불가한 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밖에는 비까지 거세게 내린다. 원래 4일차 코스는 그레이 전망대(Mirador Grey)까지 이동하여 그레이 빙하를 볼 예정이었는데, 장장 7시간을 트레킹해야 하는 구간이라 현실적으로 진행이 불가하다고 판단하고 산장에 머무는 안을 택했다.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꽤 여럿이 있어서 다 같이 옹기종기 화로 근처에 모여 앉았다. 서양인들은 참 스몰톡을 잘 한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맞장구쳐주고 서로 대화를 잘 이어나간다. 나도 영어가 네이티브였다면 잘 할 수 있었을텐데, 뭐 어쩌겠나! 괜히 짧은 영어로 말 섞으며 스트레스 받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택했다. 미리 다운 받아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서 시원하게 22,000 페소짜리 와인을 한 병 주문해서 마신다.

안주가 없으면 안 된다. 12,000 페소짜리 모짜렐라 피자를 주문했다. 하지만 도우는 퍽퍽했고 치즈는 부족했다. 혼자 먹기에는 또 양이 많아서 빵 부분은 거의 입에 안 대고 치즈 토핑만 골라서 먹었다. 그래도 4일만에 다시 먹는 따듯한 음식이라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비수기 시즌이라 배편 자체가 많지 않은데, 11시 배편을 탔더라도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2시 반 버스표가 이미 다 매진된 상황이라 의미가 없었다. 나는 애초에 그레이 빙하를 보고 올 것을 염두에 두고 7시 15분 버스를 예매해 둔 상황이었기에 하릴 없이 6시 반 배를 탈 수밖에 없었고(그렇지 않으면 선착장에서 파타고니아의 모진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할 뿐이다),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서 드라마를 5화 정도를 본 듯하다. 그래도 취기 덕분에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가서 금세 배 시간이 됐다. 그레이 빙하를 못 보고 떠나는 게 무척 아쉬웠다.

이 곳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서 200m 거리에 Paine Grande 선착장이 있고, 여기서 페리를 타고 Pudeto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고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이동한다. 이제 정말 토레스 델 파이네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에 호수를 한 번 더 사진으로 담아본다.

트레커들을 태우고 갈 배가 들어왔다. 30분을 이동하는데 25,000 페소를 받는 극악의 비용이지만, 이 배가 아니고서는 Pudeto 선착장으로 갈 방법이 없으니 별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는 23,000 페소였던 것 같은데 그새 가격이 오른 듯하다.

선승하고 나서 현금으로 표를 구매하는 방식이고, 내릴 때 다시 한번 표를 확인한다. 꼼꼼한 칠레 녀석들!!

Pudeto 선착장에는 이미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버스의 히터 덕분에 꽤나 따듯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비바람이 몰아치는 토레스 델 파이네는 무척이나 추웠다. 한국으로 치면 11월 정도의 계절감이랄까. 나탈레스 버스 터미널에 왔을 때는 개들도 춥고 피곤했는지 따듯한 대합실에 뻗어 있었다. 남미에서는 정말 개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옛 선현들의 말을 되새겨 본다.

원래는 일요일에 숙박했던 Hotel Big Sur에서 하룻밤을 머물 요량이었는데, 돌아오는 버스에서 확인해보니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예약할 수 있는 방 중에 그나마 싼 방을 찾았는데 1박에 90달러였다. 관광 도시 나탈레스의 어마어마한 물가에 혀를 내둘렀지만, 호텔 시설이 쾌적해서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우선 식사를 하고 정비를 할 요량으로 밖으로 나와 렌탈 샵에 빌린 물품을 반납하고 호텔 바로 옆에 ‘The Blend’라는 바로 갔다.

칵테일과 위스키를 팔고 안주류로는 일본 풍의 요리를 내오는 가게이다. 칵테일 이름보고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으니 그냥 느낌대로 ‘Calafate Sour’를 주문했다. 피스코 사워와는 다르게 도수가 낮았고 포도맛이 강했다.

안주로는 사케롤을 주문했다. 연어와 치즈 그리고 야채를 아보카도로 말아서 싼 롤이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동양적인 맛에 매우 감동했다.

양이 부족해서 야끼소바를 하나 더 주문했다. 야끼소바는 다소 아쉬웠는데, 잡채 같은 양념 맛의 누들 요리였다. 그래도 남반구에서 이 정도 요리와 이 정도 분위기가 어디냐 하며 맛있게 먹었다. 실제로 바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서울에서 당장 영업을 한다고 해도 먹힐 정도의 분위기였다. 물론 가격은 그만큼 사악했다. 칵테일 한 잔과 안주 두 개 해서 3만 페소가 넘게 나왔다. 그래도 고생 많이한 W 트레킹을 기념하기 위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먹고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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