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4. 29. 토요일
아침부터 사단이 났다. 7시 반 버스를 예약해두어서 넉넉하게 5시 45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6시 반에 조식을 먹고 버스 터미널로 출발했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7시였는데 곧 터미널이 부산해지길래, 칼라파테 행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온 줄 알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이동했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버스였고, 이미 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그랬다. 내 핸드폰 시계는 토레스 델 파이네의 시간대로 맞춰져 있었던 것. 토레스 델 파이네는 푸에르토 나탈레스보다 1시간이 빠르다. 결국 나는 아침 7시 반 버스를 놓친 것이었고(즉, 내가 맛있게 조식을 먹기 시작할 때 이미 버스는 출발했던 것), Bus Sur 오피스에 황급히 확인해보니 환불이나 교환은 안 되고 오후 버스를 새로 예매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버스비가 28,000 페소로 결코 싸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다음 오후 버스는 3시 반 출발이라 거의 6시간을 이 지루한 나탈레스에서 더 보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터미널에서 이리저리 웹 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카페도 들리고 점심도 먹을 요량으로 다시 나탈레스 시내로 향한다. 가는 길에 공원에 예수상을 찾아보았다. 공원이 약간 고지대라서 저 멀리 나탈레스 부두가 보인다. 연이어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어서 밖은 몹시 춥고 바람이 거셌다.

카페에서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 여행객을 대상으로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역시 가격은 사악했지만, Pisco Sour까지 챙겨서 점심을 먹었다. 양고기 파스타인데 파스타가 아니라 볼처럼 나와서 놀랐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세시 반 버스를 타고 칼라파테로 갈 수 있었다. 나탈레스에서 칼라파테까지는 무려 5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 중간에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 사무소를 통과하는 절차까지 거쳐야 한다.

칠레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출국 도장을 받았다. 다음 번에 칠레를 또 올 기회가 있다면 수도인 산티아고와 중부의 여러 휴양 도시를 꼭 둘러봐야지.

엘 칼라파테에 도착했을 때는 8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다. 칼라파테에서는 3박을 머물면서 모리노 빙하와 엘 찰튼 당일치기를 할 계획이다. 터미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한인 민박인 ‘후지’에 예약을 해 두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다시 데이터가 안 터져서 길거리에서 꽤나 애를 많이 먹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마추픽추에서 잠깐 인사를 나눴던 형님을 조우했다. 원래 같이 오전 7시 반 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는데, 내가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길이 엇갈리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칼라파테도 딱히 시내에서 할 만한 게 없는 마을이라서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고 한다. 저녁을 안 드셨다길래 같이 저녁을 먹을 겸 다운타운으로 향했고, 아르헨티나이니만큼 고기를 먹기로 했다. 이 곳의 고기 전문 레스토랑들은 전부 입구에 저런 식으로 고기구이를 디피해 놓는다.

칠레만큼 명성이 있지는 않지만 아르헨티나도 질 좋은 포도주를 잘 만드는 나라이다. 고기와 곁들일 적포도주를 우선 주문했다.

우리는 소 모둠구이를 주문했는데, Asador는 숯불구이를 뜻한다고 한다. 이후 3일 동안 칼라파테에 머물면서 먹었던 모든 저녁 중에 이 날 먹었던 소 모둠구이가 가장 훌륭했다. 갈비살, 등심, 안심, 심지어 곱창구이까지 나오는데, 곱창은 전혀 비린 맛 없이 잘 구워져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다운타운과 숙소는 20분 거리라서 오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지만 너무 잘 먹고 배부르고 행복해서 돌아가는 길이 전혀 힘들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나는 아르헨티나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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