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4. 18. 화요일
라파즈로 가는 8시 버스표를 끊어두어서 6시 반 정도에 알람을 맞춰서 기상을 했다. 커튼을 걷히니 눈앞에 바로 티티카카 호수의 아침이 펼쳐진다. 빠르게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그래서였을까, 라파즈로 가는 버스에서 여행일지를 쓰는 지금, 애플 펜슬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이었고, 아마 흰 침구류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을 것이다. 안녕, 나의 애플 펜슬ㅠㅠ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즈로 가는 버스는 30볼밖에 안 하는데, 우리 돈으로 치면 약 6천원 정도이다. 그만큼 버스 시설이 낡긴 했지만 3시간 반 정도만 가면 되기 때문에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즈로 가는 도중에 ‘산 페드로 데 티티카카’라는 작은 호숫가 마을을 지난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없기 때문에 버스를 화물선에 싣고 여객은 2볼을 내고 여객선을 타서 건너야 한다.

여기서 또 한번 위기가 있었는데, 화장실을 들리느라 잠시 광장을 떠났더니 같이 타고 온 승객들이 다 사라진 게 아닌가!!!!! 광장을 한 바퀴 다 둘러봤는데도 눈에 익은 얼굴이 아무도 없어서 최종적으로 이미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갔다고 판단하였고, 급히 다음 배를 탔다. 스페인어를 하나도 못해도, 버스 티켓을 보여주니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부랴부랴 버스를 향해 뛰었고, 기사가 클락션을 울려주었다. 나는 이 버스의 마지막 탑승객이었다. 사람들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고 버스에 올려 한숨을 돌린다. 매캐한 기름 냄새가 이렇게 반가울수가!!! 만약 버스를 놓친 거였다면 짐 안에 들어있는 현금이며 옷가지며 다시 찾을 수 있을지조차 모를텐데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한 시간 반을 더 달려 드디어 라파즈에 도착했다. 원래는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줘야 하는데 도로가 막혔다고 시내 어귀에 내려주었다. 볼리비아에서는 미리 준비해 간 유심이 잘 안 터져서 거의 인터넷을 못 쓰고 있는데 갑자기 길바닥에 나앉게 되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가 숙소가 있는 일암푸 거리까지 50볼을 불렀다. 가이드북에서는 터미널에서 일암푸 거리까지 20볼이라 그랬는데, 참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다. 겨우 흥정을 해서 40볼에 숙소에 도착했다.

코파카바나 대참사 이후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좀 믿음직스러운 호텔을 잡기로 했다. 다행히 콴투 호텔은 시설도 마음에 들고 리셉셔니스트가 영어가 유창하여 너무 좋았다. 여기서 우유니로 가는 버스 예매, 밀린 세탁물 처리, 죽음의 도로 자전거 투어까지 모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해 준 ‘치파 상하이’에서 점심을 먹었다. 중국요리를 팔 줄 알았는데 볼리비아 현지식 음식을 판다. 기름에 데친 돼지고기와 면을 함께 내오는 요리를 주문했다. 조금 짜긴 한데 전반적으로 맛은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라파즈 시내를 둘러본다. 맨 처음 들린 곳은 일암푸 거리와 바로 인접한 ‘마녀 시장’. 여기서는 볼리비아 토속 신앙에 필요한 물품들을 많이 판다고 한다.

시장을 구경하며 페루에서 미처 못 샀던 판쵸도 하나 구매했다. 파란 색감이 시원한 게 우유니 사막에서 입으면 아주 멋스러울 것 같다.

시장을 둘러보다가 한 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요르 광장에 들렀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광장이었다. 두통이 다시 시작되는 듯해서 광장 근처 약국에서 고산병 약인 소로체필을 구매했다.

광장 옆에는 산 프란시스코 성당이 있다. 안에 박물관도 있는데 굳이 들리지는 않았다.

시내를 둘러볼 겸 계속 발걸음을 옮겨 무리요 광장에 들렀다. 무리요는 볼리비아 최초로 스페인에 대항하여 독립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한다.

무리요 광장 바로 옆에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관저도 있는데, 어차피 들어갈 수도 없고 건물이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다.

다시 돌아와 란사 시장을 둘러본다. 우리나라로 치면 개발 전의 용산전자상가 같은 느낌이랄까. 건물 내부로 소점포가 즐비해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가게가 다 열지는 않았다. 꽃을 파는 가게들만 유독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엔살라다 프루따’라고 과일과 요거트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함께 내오는 디저트를 사먹어 보았다. 우리로 치면 과일빙수 정도 된다. 10볼밖에 안 하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디저트가 아니라 식사 대용으로 먹어도 든든할 정도이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과일을 먹어본다.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고 잠시 휴식을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고 잠시 눈을 좀 붙였다가 해질 무렵 즈음해서 다시 거리로 나왔다. 라파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다름아닌 라파즈의 야경이다. 쿠스코에서도 살짝 맛봤지만 고산지대의 대도시들은 주로 분지 지형에 형성되기 때문에 야경이 참 예쁘다. 큰 기대를 안고 택시를 타고 킬리킬리 전망대로 올랐다.

라파즈 시내 너머로 멀리 보이는 저 설산은 ‘일리마니’ 산이라고 한다. 해발고도가 무려 6,400m가 넘어가는 높은 산이다. 마침 날이 좋아서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깨끗한 설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킬리킬리 전망대에 오른 기념으로 사진을 한 컷 남겨본다. 내일 투어에 챙길 물품을 담을 중간 크기의 가방이 필요해서 마녀 시장 인근에서 하나 장만했다.

드디어 마주한 라파즈의 야경. 하늘이 점점 어둑어둑해지더니 가로등과 주택가에 불빛이 하나둘씩 켜진다. 카메라로는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전망대를 기준으로 360도가 전부 주택가인데 별무리에 둘러쌓인 기분이랄까. 정말 황홀했고, 정말 아름다웠다. 분지 지형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낮에 일암푸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눈독 들여놨던 한식집에 기어코 들렀다. 여기서 라면과 김밥을 주문했는데, 라면은 제법 한국의 맛이 났지만 김밥은 다소 속재료가 아쉬웠다. 그래도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니까 다시 도진 고산병에 힘들던 몸이 조금 개운해진다.


사장님은 안 보이는 듯 했고, 현지인 종업원들만 분주했다. 라면과 김밥이 각각 30볼인데 현지 물가로는 상당히 비싼 가격에 속한다. 가게 주방에는 뭔가 좋은 글귀가 적혀 있다.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달리는 게 중요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이렇게 라파즈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내일은 이번 남미 여행에서 손꼽아 기다렸던 Top 3 안에 드는 투어인 죽음의 도로 자전거 투어를 하러 아침 일찍 떠나야 한다. 오늘도 소로체필과 함께 숙면을 취하고 내일 즐거운 투어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Travel > Oversea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 남미 여행 [Day.11] (1) | 2023.04.23 |
---|---|
2023 남미 여행 [Day.10] (1) | 2023.04.20 |
2023 남미 여행 [Day.8] (0) | 2023.04.19 |
2023 남미 여행 [Day.7] (1) | 2023.04.17 |
2023 남미 여행 [Day.6] (1) | 2023.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