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verseas

2023 남미 여행 [Day.1] continued

무소의뿔 2023. 4. 11. 20:18

23. 4. 10. 월요일

나리타 공항에서 4시 45분 비행기를 타고 미국 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다. 지금은 북태평양 상공을 나는 중이다. 다섯 시간 즈음 비행을 했고, 앞으로 여섯 시간 즈음 비행이 남았다. 3석이 나란히 붙어 있는 이코노미 좌석의 가운데 자리를 배정 받았는데 마침 아들과 아빠가 내 양 옆으로 앉게 되어서, 가족의 요청으로 자리를 창가 쪽으로 바꿨다. 통로 쪽으로 바꿔줄지 창측으로 바꿔줄지 고민이 되었는데 창측을 선택했다.

출발할 때는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는데, 새벽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지금 북태평양은 새벽 세 시 정도가 되었다. 출발 직후에는 뉴욕에서 동이 터오고 있었는데, 지금은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양이 뜨고 있다. 이 모든 걸 알 수 있는 이유는 좌석 화면에서 실시간 일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세상이다.

잠을 많이 못 잔 상태라서 몇 번을 자다 깨다 하면서 미리 다운 받아놓은 더글로리를 봤다. 5화를 순식간에 다 보았다. 아껴둔 보람이 있는 드라마다. 자다가 일어나 기내식을 먹고 드라마를 보다가 다시 자다가 일어나 창을 열어 밖을 본다. 지금 나는 달과 눈높이를 맞춰서 하늘을 날고 있다. 보름달에서 조금 기운 달이다.

아래에는 드넓은 태평양이다. 하지만 너무 어둡기도 하고 구름이 많아서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몇 시간 후면 태평양 동쪽부터 밝아오기 시작할테니 곧 아침 바다를 볼 수 있겠다.


중간 간식을 나눠주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기내식은 단촐했지만 꽤나 맛이 훌륭했다. 화이트 와인을 두 잔 정도 마시니 오히려 잠이 잘 와서 좋았다. 지금은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기 위해 나리타 공항 편의점에서 산 오후의 홍차를 조금씩 나눠 마시고 있다.

여행 가이드북의 페루 편을 다시 찬찬히 읽어본다. 공항보다는 구 시가지가 환율을 잘 쳐준다고 하니 리마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달러로 택시비를 지불해야겠다. 방금 봤는데도 비몽사몽이어서 그런지 택시비가 얼마 정도인지 벌써 까먹었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라 그런지 코카시안이 많지만 의외로 아시안도 꽤 있다. 다들 무슨 볼 일로 휴스턴을 가는 걸까? 나는 살면서 휴스턴이란 곳을 가 본 적이 없다. 사실 들어본 적조차 없다. 휴스턴에서 환승 보딩까지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걱정이다. 다행인 것은 위탁수하물이 없어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인데, 그래도 1시간 반 정도밖에 없는 보딩 타임 때문에 염려가 된다. 뭐 애초에 환승이 가능하니까 그렇게 표를 팔았겠지 하고 생각해본다.


잠에 들었다 깼다 하며 또 그럭저럭 다섯 시간 정도를 보냈다. 창측이라 찬 기운이 자꾸 스멀스멀 밀려들어 꽤나 곤혹스러웠다. 좌석이 불편하다보니 통잠을 못 자고 10분, 20분씩 쪼개서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이제는 휴스턴 공항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이다. 마지막 기내식을 먹고 정리를 하면 휴스턴 공항이다. 거의 4년만에 장거리 비행을 했더니 몸이 꽤나 많이 피로하다. 돈을 많이 벌어 장거리는 비즈니스 정도 타고 다닐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약 12시간의 비행 끝에 드디어 휴스턴 공항에 도착했다. 강과 바로 인접한 곳까지 주택가가 들어서 있는데, 하늘에서 바라보기에는 수위와 땅의 고도가 닿아있는 듯해서 아슬아슬해 보였다. 휴스턴 공항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약 1시간 반. 이 안에 입국 수속을 마치고 리마행 비행기를 찾아서 탑승해야 한다. 출입국 심사 자체는 미리 ESTA를 신청해놔서 금방이었는데, 대기 시간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환승편을 이용하려면 다시 또 수하물 검사를 해야 한다. 이 두 과정만 순수하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거기에 공항 철도를 이용해서 탑승장을 찾아가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휴스턴 공항에는 놀랍게도 흡연실이 없다. 미리 알았더라면 아이코스라도 챙겨왔을텐데… 나리타에서 리마까지 거의 20시간이 다 되는 시간 동안 담배를 못 피다니!!!!

하지만 담배를 못 피는 정도는 큰 고통도 아니었다. 리마행 비행기를 절반쯤 탄 지금, 정말 잠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를 못한다. 기내식을 먹는 잠깐을 제외하고는 계속 잠에 빠져드는데, 이게 5분이나 10분씩밖에 자지 못하고 다시 깼다가 잠에 든다는 점이 참 고역이다. 그래도 이제 파나마 상공을 지나고 있고 3시간만 더 견디면 리마에 드디어 도착한다!!!!!!


드디어 현지 시각으로 월요일 저녁 11시, 페루 리마에 도착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채 하루를 꼬박 지새운 셈인데, 장거리 비행은 진짜 더 늙으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 든다. 리마 공항 수속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났는데, 흡연구역이 있는지 찾는 과정에서 택시 삐끼가 붙었다.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길에 라이터를 잃어버려서 일단 공항 편의점에서 라이터를 살 요량이었는데 팔지 않는다고 해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고, 운전수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데 어찌저찌 구글 번역기를 각자 돌려가며 의사소통을 이어갔다.

가이드북에서 말하기를 공항에서 미라플로레스까지 20달러면 충분하다고 하는데, 운전수는 40달러를 불렀다. 흥정을 더 할라면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담배를 오랜만에 펴서 어지러운 것도 있고 이미 몸이 녹초가 된 것도 있어서 그냥 35달러에 숙소까지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다행히 강도는 아니었다. 리마는 비가 왔는지 하늘이 흐리고 온통 습했다. 우리나라 6월 날씨 같았다.


12시가 넘어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샤워를 하고 짐을 풀었다. 데스크에 물어서 근처 편의점에서 라이터를 살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 후 편의점에 들렸다. “Al Toque”라는 편의점은 세븐일레븐의 페루 버전인가보다. 브랜드 로고는 동일한데 문구만 다르다. 뜻으로는 ‘지금 바로’라고 한다. 세븐일레븐이랑 비슷하면서도 더 강렬한 의미를 가졌다. 살짝 출출한 것도 있고 해서 맥주 두 병과 간단한 빵류 안주를 하나 샀다.


취기를 빌어 잠을 청한지 4시간 만에 깨어났다. 조식을 6시부터 제공한다니까 시간적으로 잘 맞는다. 오늘은 리마 구 시가지를 관광할 예정이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들릴 곳들을 찾아보고 움직일 준비를 해야겠다. 오늘부터 진짜 남미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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