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12월의 이야기

무소의뿔 2022. 12. 2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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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전에 반차를 냈다. 우리 회사는 오전 반차를 쓰면 2시까지 출근하면 된다. 그리고 나서 6시에 똑같이 퇴근을 한다. 9시부터 2시까지니까 반차지만 실제로는 5시간을 버는 셈이다. 전날 미리 엄마에게 아침에 날 깨우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 9시까지 푹 잤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1시간 반을 더 자다가, 1시간 정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침대에 웅크리고 있다가, 다시 1시간을 더 자고 12시 반에 드디어 일어났다. 짧게 샤워를 마치고, 운동 장비를 챙기고, 회사에서 먹을 닭가슴살과 가래떡을 해동할까 하다가 오늘은 기분이다, 스타벅스에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바비큐 치즈 치킨 치아바타를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스타벅스 문화일보점이다. 아메리카노 그란데와 치아바타를 받고 카페 2층으로 올라와서 챙겨온 아이패드로 다이어리를 쓴다. 치아바타를 지금 먹고 싶은데, 사실 그렇게 허기가 지지는 않는 상태이다. 다이어리를 충분히 원하는 만큼 쓰기에는 2시까지 시간이 살짝 부족할 것 같아 포장된 치아바타를 풀지 않고 커피만 홀짝이고 있다. 오후에 여유롭게 마시는 아메리카노의 풍미가 내 몸과 마음을 일깨워준다.

어제는 회사 송년회를 했다. 그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송년회 자리에서는 고기만 먹고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와인 한 잔과 화요 언더락으로 한 잔. 그마저도 하루종일 계속되는 숙취와 두통 때문에 별로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회사에는 마음을 둘 곳이 없다.

일요일에는 참 술을 많이 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 자취방에 들렸다. 친구를 붙잡고 눈물과 콧물을 쏙 뺐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고도 눈물이 흘러넘친다는 게 놀랍다.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데도 말이다. 울다가 지쳐 잠든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닌가보다.

연말을 앞두고 신변을 모두 정리했다. 정신과 레지던트를 남편으로 둔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다. 타인에게서 구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구원은 결국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그래, 이제 나는 나를 구원해야겠다.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좋은 음식과 좋은 자극으로 나를 많이 채워야지.

내 삶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비로소 명확히 보인다. 좋은 대화가 부족하다. 세상과의 단절, 친구들은 다들 바쁘고 정서를 소통하기에는 다들 무뚝뚝하다. 물론 내가 제일 그렇겠지만 말이다.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의 기쁨, 나의 슬픔, 나의 걱정, 나의 희망, 나의 꿈, 나의 절망 뭐 이런 것들을 말이다.

그 전에 나를 먼저 비워야겠다,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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