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일본 여행을 다녀오며

무소의뿔 2022. 12. 17. 13:33

게이세이 우에노 역에서 스카이라이너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길. 어제까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가을 날씨였던 도쿄는 자고 일어나니 구름으로 뒤덮여 흐리다.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할 게 없다.

여행 내내 밤마다 술을 마셨다. 산토리 하이볼 또는 기린 이치방 맥주를 그날그날에 따라 세 캔 또는 네 캔을 샀다. 간단한 주전부리와 함께 말이다. 그러다가 엊그제 밤에는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쓰러졌다. 자주는 아니고 가끔씩 그럴 때가 있었다. 전날 폭음을 하고 난 다음날 아침 기상 직후에 몇 번 그랬었다. 새벽에 요의를 느껴 화장실로 갔다가 선 채로 실신이 다가옴을 느꼈다. 머리에 열이 확 오르면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몇 초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장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넘어지면서 발과 턱을 부딪혔는지 멍이 든 것처럼 아프다.

후쿠오카에서 친구를 보내고 혼자 나리타 공항으로 넘어왔다. 도쿄에서의 짧은 이틀이었지만 나름 여행은 알찼다. 2016년 친구들과 함께 도쿄를 일주일 정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도쿄를 꽤 구석구석 많이 돌아보아서 이번 여행에서는 낯선 곳을 가보고 싶었다. 롯폰기에 숙소를 잡고 첫 날은 시부야, 둘째 날은 롯폰기, 츠키지 시장, 이케부쿠로, 도쿄역을 돌아보았다. 마지막 날은 우에노 동물원에 들렀다. 모두 저번 여행에서 들리지 않았거나, 제대로 관광하지 않았던 곳들이다. 날이 맑아서 여행하기에는 참 쾌적하고 좋았다.

후쿠오카에서는 커피를 제대로 못 챙겨마셨는데, 도쿄로 넘어와서는 카페도 자주 들렀다. Tully’s Coffee와 Starbucks 두 곳만 들렸다. 애초에 커피 맛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에서 마시는 커피와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인공눈물을 안 챙겨와서, 일주일 째 눈이 너무 건조하고 뻑뻑하다. 스킨로션도 안 챙겨와서, 후쿠오카에서는 친구의 것으로 어찌저찌 버텼는데, 도쿄에서는 핸드크림으로 로션을 대신했다.

3만 5천엔 정도가 남았다. 이 돈은 잘 아껴두었다가 다음 일본 여행 때 요긴하게 써야겠다. 다음에 일본을 또 여행한다면 가보고 싶은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오사카고 다른 하나는 후지산이다. 둘 다 아직 안 가본 곳이고,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는다는 말은 모르겠다. 그건 여행 산업의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자아’라는 고정불변의 실체는 사실 허상에 가깝다.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에게는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 두 가지가 함께 있다고 한다. 결국 이야기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변형 재생산된다. 적당한 허구와 적당한 환상을 버무려서 말이다. 우리의 기억은 미화되거나 퇴색되거나 풍화된다. 그냥 나의 경험에 한 스푼 이야기거리르 더 보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여행이란.

연말이라 정신이 뒤숭숭하다. 역마살이 뻗친 것처럼 12월 동안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 분주함 끝에 어찌되었건 2022년이 지나가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밝지도 맑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한해의 마무리이다. 나의 세계는 백색왜성처럼 움츠려들고 있다. 하나의 점으로 소멸해 가고 있다.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소침해져버린 내 모습을 매일 마주한다.

새해에는 술을 줄여야겠다. 일상에 규칙성을 회복해야겠다. 운동도 다시 열심히 해야지. 새해에는 해방을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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