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겨울, 12월, 2022년 그리고 2023년

무소의뿔 2022. 12. 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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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부터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하룻밤 사이에 거의 10도가 낮아졌다. 세상이 얼어붙었다. 겨울은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옷장 한켠에 걸려 있던 두툼한 겨울 패딩을 오랜만에 꺼내 입었다. 장롱이 아니라 행거 타입의 옷장이니까, ‘꺼내 입는다’는 말은 어폐가 있을 수도 있겠다. 2020년 겨울에 선물 받은 타미힐피거 패딩이다. 그때 한창 국내에선 톰 브라운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힐피거와 톰 브라운 로고가 비슷해서 톰 브라운인 줄 알고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이 난다.

조깅을 할 때는 작년 이맘때쯤 산 아디다스 바람막이를 주로 입는다. 티셔츠 위에 바람막이만 걸치고 달린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사뭇 춥지만, 한 2km 정도를 달리고 나면 체열이 발생해서 견딜만 하다. 참 신기하다. 아무리 추워도 사람이 달리다 보면 손끝에까지 열기가 전해져 따듯해진다. 6km, 7km 더 달릴 원대한 계획도 있었지만, 날도 춥고 힘도 부친다는 핑계로 5km 정도를 일주일에 두어 번 달리는 게 요새 유산소 운동의 전부다. 그래도 찬 공기를 마시며 동네를 달리는 때만의 묘한 여유로움이 있다. 요새는 핸드폰과 에어팟을 놓고 달리기를 한다. 주변의 소리와 내 안의 소리에만 집중하면서 달리려고 한다.

12월이다. 2022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올 한해는 내게 어떠한 해였을까? 올해를 살아온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인데, 어떠한 해였는지 그 의미를 획정하기 위해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 한다. 날 집어삼킨 인생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을 쳐온 날들. 내가 지나온 날들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외발자전거 같았다. 잠시라도 멈추면 그대로 고꾸라질 것만 같아서, 닥치는대로 몰두할 무엇인가가 그때그때 필요했다. 그래도 3분기까지는 보디빌딩이라는 도전 덕분에 꽤나 정신 없이 살 수 있었다. 예전에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사람이 단기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달릴 때는 메타적 사고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일모레의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그 시험이 갖는 의미와 같이 거대한 관점에서의 질문은 오히려 독이 된다. 눈 앞에 당근만을 향해 달려가는 말처럼 시야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보디빌딩은 꽤나 버거운 도전이었고,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와 같은 거대한 담론은 잠시 접어둘 수 있었다. 또 자전거 국토종주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야말로 운동에 미쳐 살았던 반년이었다.

대회를 끝마치고 밀린 약속들을 소화하고 그럭저럭 한 달을 보내고 나니, 고질병이 다시 도져온다. 치유가 아니었나보다 그것은. 꽤 멀리 도망쳐 왔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이연시킨 것일 뿐이었나보다. 매일 생의 허무함과 삶의 덧없음, 그리고 중심이 없음에 무너져내린다. 불어오는 찬바람에 실없는 고뇌는 더욱 깊어져가나보다. 무엇이 이 내 가슴을 다시 충만한 열정으로 뛰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어쩌면 이제는 영원히 그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12월의 첫 번째 일요일, 아무런 약속도 없이 동네를 하릴 없이 배회한다. 밖이 춥다는 핑계로 12시가 다 되어서야 이불 밖으로 기어나왔다. 방을 대강 정리하고 장갑과 스트랩만 챙겨서 헬스장으로 향했다. 돌아와서는 쉐이크와 콩시루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조깅을 했다. 다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동네 순대국집에서 저녁을 먹고 스타벅스로 간다. 넷플릭스에서 최근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콜드플레이의 노래를 들으며 다이어리를 쓰는 일요일 저녁이다.

나의 모든 순간이 충만했으면 좋겠다. 2023년이 오고 있다. 새로운 해에는 새로운 열정과 무한한 용기로 가득찬,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샘솟아오르는 뜨거운 가슴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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