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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삼국지 완독 후기

무소의뿔 2022. 9. 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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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주가 채 안 되어 이문열 삼국지 10권을 모두 완독했다. 독서 구력이 있어서인지, 어렸을 때 읽었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문장 하나하나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면서, 그리고 내용을 곱씹으면서 읽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손 치더라도 확실히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아서인지, 받아들이는 자극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을 지금 다시 완독한 것이 의미가 없지는 않다. 헬스장 트레드밀에서 하는 지루한 유산소 시간을 소중하게 채워준 책이기도 하고, 어릴 적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또 그 자체로 얻어가는 것도 많은 독서였다.

어렸을 때는 전투 장면과 신묘한 계책 이런 부분에서 짜릿함을 느꼈다면, 이번 독서에서는 서사의 큰 흐름에 더 주목했다. 그렇게 하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절로 그렇게 되었다. 흥망성쇠라는 것이 이제는 그닥 부질 없는 일장춘몽임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인물들의 처절하고 비통한 심정에 대한 공감도 좀 덜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들이 흘러가는구나. 정해진 것은 없겠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조위가 흥하고 촉한이 망하는 것이 어렸을 때는 서글펐는데, 이제는 서글프지 않다. 조위가 아니라 촉한이 흥하였더라도 역사는 어차피 비슷한 결로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새 왕조의 창립, 융성, 환관과 외척의 발호, 쇠락, 역병의 창궐과 무수한 반란들, 새로운 변화의 물결, 군웅할거 시대의 도래, 그리고 다시 새 왕조의 창립. 중국이 삼천 년을 반복해 온 역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와 같을진대, 유씨가 흥하든 조씨가 흥하든 손씨가 흥하든 사마씨가 흥하든 괘념할 일이 아니다.

특정 세력에 대한 감정의 이입 없이 책을 읽다보니 정서의 진폭은 예전보다 얕아졌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고, 억지로 교훈을 끌어낼 것은 없겠지만 소소한 가르침들도 있었다. 그걸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쓰는 것은 이제 나의 몫일진저.

삼국지를 읽고나니 어투가 약간 옛스러워진 게 가장 큰 변화다. 장난기가 발동해 자꾸 고어체를 쓰고 싶어진다. 가장 큰 영향이라면 바로 이것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늘어났다는 것도 주요한 변화다. 물론 정사와 소설은 구분해야겠지만 말이다. 다음 번에는 초한지나 수호지에 한 번 도전해 볼까 한다. 수호지는 특히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 기대가 된다. 어차피 남은 한 달 동안 내가 해야 할 유산소 운동 시간은 너무도 많으니, 그 적적한 시간을 수호지로 한 번 채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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