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에 이문열 삼국지 2020년판이 올라왔다. 독서에 목말라 있던 차에 어린 시절의 향수가 되밀려 오며, 자연스럽게 클릭을 해버렸다. 한동안 투자서를 잃는다고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삼국지는 글로 이루어진 마음의 고향과도 같다. 학창시절 하교하고 학원에 가기까지 빈 시간 동안 나는 소파에 누워서 삼국지를 탐독했다. 어렸을 때는 삼국지를 읽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시간이 30분, 1시간씩 훌쩍 지나가 있기 일쑤였다.
삼국지는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뚫고 헤쳐 나가는 영웅호걸들이 보여주는 뜨거운 눈물과 피의 이야기이다. 어린 마음에 영웅들의 무용담이 참 멋있게 느껴졌었나보다. 어느덧 30대의 나이가 되어 다시 접하는 삼국지는 향수와 함께 인간과 세상에 대해 달라진, 어찌보면 조금은 단단해진 시각으로 보게 된다.
서문에 이문열은 젊었을 때는 삼국지를 읽고, 늙었을 때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경고를 덧붙인다. 아직 늙은이는 아니니까, 읽어도 괜찮을 것이다. 맨 처음 삼국지를 읽었을 때는 유관장 삼형제와 제갈량의 이야기에 흠뻑 취했었고, 그 다음 20대에 삼국지를 다시 읽었을 때에는 조조의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30대가 된 나는 다시 유비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유비의 인품이나 인화술 이런 것보다도,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조, 원소 등은 이미 군웅으로 자리 잡고 할거하여 세를 형성해 나가는데, 공손찬의 그늘 밑에서 나이에 비해 제법 뒤쳐져가는 상황이 빚어내는 유비의 초조함에 더 공감이 간다. 나도 이제 30대가 되었고, 직업적으로든 재무적으로든 안정적인 터를 형성해나가야 할 시점인데도, 나는 아직 광야를 떠도는 모터사이클마냥, 대해를 망망하는 무동력 요트마냥, 부유하고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결국 황제가 된 유비처럼, 나도 웅비하리라. 그날을 위해 묵묵히 현재에 충실하고 정진할 뿐이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 No other way, no other o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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