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ycle

1. 제주환상 자전거길 종주 후기

무소의뿔 2021. 9. 24. 15:51

제주 북서부의 어느 해안가

  생각이 많은 가을이다. 무더웠던 여름이 끝나가면서, 내 삶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상당히 부정적인 변화였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지루하지만 평화로운 내 일상을 잠식해 들어갔다. 그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도 아닐 뿐더러, 그 어떤 누구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 많이 괴롭고 슬펐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혼란스러운 몸과 마음을 정비하기 위해 훌쩍 떠나기로 결심했다. 추석 연휴 동안 제주에서 내 상념을 모두 게워낼 수 있기를 소망하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미 여러 번 방문한 제주이지만 이번 여행은 보다 특별했다. 혼자 떠나는 첫 번째 제주 여행이라는 것과 차 없이 떠나는 첫 번째 제주 여행이라는 것이 이번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나 스스로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소망하며, 그렇게 생애 첫 자전거 종주에 나섰다.

2일차 3구간 휴식 중에 찍은 한경면의 바다 사진, 물이 정말 맑고 투명하다.

  제주환상 자전거길은 총 10개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길이는 234Km이다. 구간별로 거리가 균일하지 않아서 출발 전에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나는 첫 자전거 여행이니만큼 무리하지 않는 구성으로 라이딩 코스를 준비했다. 하루에 약 60Km 내외로 총 4일에 걸쳐 라이딩할 수 있도록 구간을 나누었다. 라이딩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하는 이유는 근처 숙소를 예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첫 날이 다른 3일에 비해 거리가 다소 짧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거리 안배였다고 생각한다.

일차 구간 구간설명 구간 거리 합계
1일차 1구간 (용두암 ~ 다락쉼터) 21Km 42Km
2구간 (다락쉼터 ~ 해거름마을공원) 21Km
2일차 3구간 (해거름마을공원 ~ 송악산) 35Km 65Km
4구간 (송악산 ~ 법환바당) 30Km
3일차 5구간 (법환바당 ~ 쇠소깍) 14Km 64Km
6구간 (쇠소깍 ~ 표선해변) 28Km
7구간 (표선해변 ~ 성산일출봉) 22Km
4일차 8구간 (성산일출봉 ~ 김녕성세기해변) 29Km 63Km
9구간 (김녕성세기해변 ~ 함덕서우봉해변) 9Km
10구간 (함덕서우봉해변 ~ 용두암) 25Km

  제주도를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코스로, 1일차는 워밍업으로 다소 짧은 거리를 라이딩하고, 2일차부터 4일차까지 본격적인 라이딩을 하는 코스이다. 확실히 라이딩 후반부로 갈수록 체력이 고갈되는 것이 느껴졌는데, 특히 마지막 4일차에는 10Km를 채 가지 못하고 휴식을 반복적으로 취해 주어야 했다. 하지만 저 구성이 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1일차에 만약 3구간까지 돌파한다면 첫 날에 무려 77Km를 주파해야 하는 일정이 되어버려서 종주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법환바당에서 바라본 범섬, 현무암 너머로 바다 가운데 홀로 솟아있는 섬이 절경이다.

  라이딩 중에 가장 힘들었던 코스는 4구간, 송악산에서 법환바당까지 가는 길이었다. 전반적으로 업힐이 많았고, 해안도로가 아닌 일반도로를 달리는 구간이 꽤나 길어 해안가 라이딩의 묘미도 다소 떨어졌다. 해거름마을공원에서 송악산까지 가는 3구간도 만만한 구간은 아니었지만 해안가를 인접해서 달릴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마음에 위안을 가져다 주었던 반면, 송악산에서 법환바당까지 가는 길은 자신과의 싸움 그 자체였다. 그래서였을까, 긴 라이딩 끝에 다시 바다를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꽤나 달콤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코스는 법환바당에서 쇠소깍까지 가는 5구간이었다. 거리는 14Km로 다소 짧지만, 코스 자체가 직선적으로 뻗어있지 않고 구불구불한 길이 많고, 가끔은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험한 구간도 있어서 라이딩 자체의 맛으로는 5구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치 산악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고 타게 되고, 다운힐에서는 짜릿한 속도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만큼 안전에 신경 써야 하는 구간인 것은 분명하지만 스릴 넘치는 코스이다.

성산일출봉을 향해 가는 길, 휴식 중에 사진에 담아보았다.

  바다 자체로 가장 예쁜 해변은 바로 9구간의 도착 지점인 함덕해변이다. 마치 동남아의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에메랄드 빛깔의 이국적인 바다가 인상적인 함덕이다. 물론 제주의 어느 바다가 아름답지 않겠냐만은, 함덕은 더욱 특별했다. 만약 제주를 반시계가 아니라 시계 방향으로 도는 코스로 달렸다면, 함덕에서 몇 시간이고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서우봉을 오른쪽에 끼고 펼쳐진 백사장에 삼삼오오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마저도 평화로워 보였다.

함덕해변, 이국적인 바다 색깔이 시선을 확 사로잡는다.

  3박4일간의 라이딩을 통해 나 자신도 많이 편안해졌다. 낮에 5~6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저녁에는 숙소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독서를 하거나 그저 쉬었다. 잠은 하루에 8시간씩 정말 충분히 취했다. 어떤 날 저녁은 친구를 만나 (고맙게도 마침 같은 시기에 제주도에 내려와 있는 친구가 있었다) 회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혼자 펍에 가 맥주를 홀짝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상념도 많이 가셨고, 지나간 일들에 대해 나 스스로 어느 정도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종류의 여행의 재미에 눈을 뜬 것이 가장 큰 발견이다. 나 스스로를 치유하고, 또 작지만 도전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종주 완주가 가져다주는 성취감은 정말 짜릿하다. 이번 제주환상 자전거길 종주는 시작에 불과하다. 좋은 풍경과 좋은 공기에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마음이 어지럽다면, 지금 바로 비행기표를 끊고 제주도로 떠나보는 게 어떨까? 그곳에서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질문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종주 완주 인증. 혹시 도장을 찍게 된다면, 많이 낡아서 잘 안 찍히는 것을 감안해서 더욱 힘을 주도록 하자..

 

* 1구간 라이딩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q7W7R6FfX2o&t=309s 

1구간 라이딩 영상

* 2구간 라이딩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3jf1n7d1_SY 

2구간 라이딩 영상

* 3구간 라이딩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xzUbg1tu2ns 

3구간 라이딩 영상

* 4구간 라이딩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oVTGcLH9yp4 

4구간 라이딩 영상

* 5구간 라이딩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KC0njPy7g90 

5구간 라이딩 영상

* 6구간 라이딩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kbSt4HZ7Mfo 

6구간 라이딩 영상

* 7구간 라이딩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4zd3I3j4FlQ 

7구간 라이딩 영상

* 8 - 10 구간 라이딩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4awzxfWx5-c 

8구간 라이딩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