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

3rd. 22. 07. 30. Sat. 남한산성 등정

무소의뿔 2022. 8. 1. 15:54

지난 주에는 동해안 라이딩을 다녀오느라 한 주 등산을 쉬고, 2주만에 다시 산을 찾았다. 차가 나오니 조금 먼 거리의 산도 과감하게 도전이 가능하다. 원래는 도봉산을 갈까 했는데, 약간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으로 남한산성을 선택했다. 물론 그 선택이 나를 알아주는 오산대학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폭염으로 몹시 더운 날이었지만, 다행히 예보와 달리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등산 시작 전에 살짝 하늘이 흐려지고 비가 조금 내리더니 금세 멎었다. 몽실몽실한 구름이 예쁜 토요일 오후의 하늘이었다.

등산 전에 글리코겐을 로딩한다는 명목으로 시원한 콩국수를 한 대접 먹었다. 별다른 것 없이 면과 콩국물만으로 훌륭한 맛을 선보인다. 원래는 막국수를 먹으려 했는데, 콩국수를 먹길 잘 한 것 같다. 가게는 남한산성 남문 앞 백숙촌에 위치한 '남문고을'이다.

왠만해서는 식당이나 음식 추천을 잘 안 하는데, 남문고을의 고추장돼지뚝배기는 정말 추천을 아낄 수가 없다. 우선 15,000원이라는 가격이 혜자 그 자체이고, 가격 대비 푸짐한 양도 놀라울 정도이다. 15,000원에 이 정도의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라고 볼 수 있다. 맛도 아주 훌륭하다. 통으로 돼지고기를 뭉텅이로 넣고 고추장 양념에 푹 삶은 음식이다. 특별할 것은 없는 조리법이지만, 아주 만족스럽게 먹었다.

배를 다 채웠으니 산행을 시작해 본다. 지화문, 평화에 이르는 문이란다. 남한산성의 남문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코스는 시작되었다. 코스는 총 5개가 준비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긴 제5코스를 택했다.

저 하얀 테두리가 바로 제5코스이다. 코스별 안내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체력 수준과 건강 상태에 맞추어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나는 당연히 빠꾸가 없다. 무조건 5코스이다. 김두한 식 협상법이 떠오른다. 오코스! 오케이 오코스! 오케이 땡큐!

제5코스를 역방향으로 등반하는 무모한 등산객이었다. 애초에 둘레길이나 올레길 같은 가벼운 코스를 생각했기에, 7.7km 거리가 별로 힘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문이 4개가 있다는 것은 4번의 봉우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문에서 동문으로 오르는 길도 쉽지 않았지만, 동문에서 벌봉을 지나 북문으로 가는 코스가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물론 돌계단이 잘 갖추어져 있었지만, 경사의 가파름이 왠만한 악(岳)자 돌림 산 못지 않았다.

그래도 벌봉에서 바라보는 동녂은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이 아름다웠다. 짙게 층층이 드리운 구름이 오히려 풍광의 맛을 더한다. 그라데이션으로 멀리 물결치는 산맥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게다가 벌봉을 강타하는 매서운 바람은 산의 정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시원함이다. 달궈진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를 온몸으로 흡수했던 기억은 벌봉의 산들바람에 깨끗이 씻겨나간다.

북문까지 오고 나서 이제 산행을 그만할까 싶다가도, 어차피 남문까지 돌아갈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인지라 그냥 나머지 코스를 강행하기로 했다. 그래도 남문에서 북문까지가 5km요, 북문에서 다시 남문으로 돌아가는 코스는 2.7km니 버텨볼만 하다고 판단했다.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일까, 다행히 남문에서 서문, 서문에서 다시 남문으로 가는 코스는 다소 완만하고 편하였다. 특히 서문과 남문을 잇는 길은 포장이 아주 잘 되어 있고, 경사가 완만하여 해질 무렵의 서울 풍광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가 없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즈음 남한산성 등반을 모두 마쳤다. 몸에서 쉰내가 올라올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고, 허벅지며 종아리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렇게 또 하나의 산을 몸과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게 선물 아닌 선물이다. 저 멀리 보이는 롯데타워와 그 위로 펼쳐진 구름 바다가 세기말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런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산행 끝에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지만, 이번 산행의 대미는 특별하게 장식했다. 남한산성에 가까운 위례신도시로 가서 연어사시미를 푸짐하게 즐겼다. 접시를 가득 채운 싱싱한 연어가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이렇게 네 번째 산행을 오감으로 기억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