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인대 봉합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퇴원했다. 6주 정도 깁스를 유지해야 하고, 그 동안 손가락을 절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외부 활동이 불가능해져서 아빠는 요새 열심히 독서를 하고 TV로 골프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꾸준히 독서를 하는 아빠가 참 대단하다. 가끔 아빠 서재에 들려 아빠가 요새 무슨 책을 읽나 넌지시 보면, 교육에 관한 것들이나 리더십에 관한 것들, 그 밖에 다양한 교양에 관한 폭넓은 내용들을 두루 읽는 것 같다.
아빠를 위해서 금요일 저녁 집에 돌아오는 길에 큰길가에 있는 정육점에 들렀다. 한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정육점이었다. 생각해보니, 혼자서 정육점에 들린 적이 있었던가 싶다. 뭐 아주 어렸을 때야 엄마 심부름으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만, 머리가 크고 나서 자의로 정육점에 방문한 것은 확실히 처음일지 모르겠다.
엄마는 맛있는 특식을 준비할 때마다 나한테 먹을 것을 권유하면서 꼭 영양 보충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복날이면, '복날인데 영양 보충도 할 겸 삼계탕 먹을래?' 이런 식이다. 나는 과히 그 영양 보충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리곤 하는데,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넘쳐나는 세상이고 다들 포동포동 살이 올라서 고민인 시대란 말이다. 결핍된 영양을 보충하여야 하는 보릿고개가 엄연히 실존하는 시공간이 아니라, 과잉 섭취된 영양이 각종 성인병의 주범이 되는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단 말이다. 그러니 영양 보충이란 말이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밖에 없단 말이다.
정육점에서 사골과 도가니, 우족을 샀다. 이것저것 다 사니 약 7만원 정도가 나오더라. 사실 사골만 사도 되는데, 뭔가 정 없이 느껴져서 주인장이 추천하는대로 도가니도 사고 우족도 샀다. 많이 사니 서비스로 잡뼈도 한 덩이 챙겨주더라. 들고가는데 꽤 무거워서 양손을 번갈아가면서 낑낑대며 돌아왔다.
나는 아빠한테 영양 보충해서 인대 잘 붙으라고 먹으라고 사왔다고 툭 식탁에 무거운 뼈를 올려 놓았다. 아빠는 고마워하는 눈치였지만 입밖으로 고맙단 말을 내뱉진 않았다. 며칠 뒤에 카톡으로 넌지시 고마움을 표현했을 뿐이다. 표현을 하는 방식이 아빠와 나는 꽤 닮아 있다. 어떻게 보면 영양 보충은 뉴트리션에 대한 현대적 감각을 상실한 시대착오적 발화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에게 맛있는 한 끼를 먹이고 싶은 따듯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