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부터 시작해서 7월까지 약 8개월 정도를 다닌 피아노 학원을 이번 수강기간을 끝으로 잠시 그만두기로 결정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대회 준비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다. 벌크업만 하면 되던 때와 달리 커팅 시기에는 유산소 운동을 위한 시간 확보가 절실한데, 그러다보니 학원을 등록만 해 놓고 제대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이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며 살 수는 없다. 내줄 건 내어주고, 취할 건 취해야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작년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의 기간은 매우 특별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회사에서는 주에 3일을 재택근무를 시켰다. 중간중간 코로나가 안정세로 접어들 때는 주 2일 또는 주 1일로 재택근무일수가 줄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주 3일 재택근무를 즐길 수 있었다.
즐길 수 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재택근무가 주는 이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통근 지옥을 겪지 않는 것만으로도 하루 동안 주어진 체력의 반절은 보존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또한 통근 시간을 절약한 만큼 수면 시간도 넉넉히 확보할 수 있었다. 자연히 에너지와 시간 두 가지가 모두 넉넉했고, 이 넘치는 자원을 운동과 피아노 모두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독서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하면서 회사 업무까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미크론이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호시절도 끝이 났다. 5월부터는 금요일만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월화수목 4 영업일을 내리 출퇴근해야 하는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 운동량은 이전보다 더욱 늘려야 하는 상황이니, 자연히 피아노 학원에 가는 시간이 줄 수밖에 없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정말 즐겁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다. 클래식 선생님은 내가 음악적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칭찬해줬고, 재즈 선생님은 내가 귀가 참 좋다고 칭찬해줬다. 나는 5살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었다. 구로구 오류동에 살 때였는데, 한 살 위의 동네 쌍둥이 형들이 노란 피아노 학원 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엄마를 졸라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그때부터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까지 한 8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어렸을 때 피아노 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은근히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유년기에 음악을 접하면서 내면의 정서가 보다 풍부해질 수 있었다(그런 감정을 외부로 '잘' 표현해 내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공부에 집중할 것을 주문 받았고, 그때부터 피아노를 더 이상 배우지 않았다. 그러니 다시 건반을 진지하게 접한 것은 거의 20년 만의 일인 셈이다.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다양한 여가선용과 취미 활동일 것이다. 특히, 예전부터 나는 삶이 풍성하려면 음미체 중에 한 가지 활동은 반드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왔다. 지금은 잠시 피아노 앞에서 물러나지만, 머지 않은 시점에 다시 피아노를 배울 예정이다. 우선은 올 가을 보디빌딩 대회와 올 겨울 남미 여행을 잘 마치고, 내년 봄에 다시 배우고자 한다. 금전적 여건이 허락한다면, 내 방에 디지털 피아노를 한 대 놓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