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독서는 오랜만에 역사서를 택했다. 잘 알려진 익숙한 시대나 나라가 아닌 조금은 생소한 역사를 알아보고 싶었는데, 마침 눈에 딱 들어온 책이 바로 '무굴 제국의 역사'였다. 수능 때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무굴 제국에 관한 몇 가지 내용을 배웠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악바르 대제라든지, 세포이 항쟁이라든지, 타지마할이라든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피상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나라는 세워지고, 성장하다가, 어떠한 계기로 몰락하는 생애주기를 거친다. 그 구체적인 서사를 들여다보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 어차피 모든 나라의 역사는 비슷하게 흘러간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굳이 무굴 제국의 역사를 디테일하게 알 필요가 없겠지만, 순수한 지적 호기심 차원이라든지 아니면 학술적인 이유라든지 그것도 아니면 어떠한 연유에서라도, 한번 무굴 제국을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이었다. 무굴 제국의 독특성에 대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얻게 되었는데, 왕조의 중앙아시아적 전통이 국가 통치에 미친 영향이 특히 흥미로웠다. 유교적 군신관계, 부자관계가 너무나 익숙한 동아시아와 달리, 중앙아시아는 형제들이 군주권을 공동으로 상속하는 바람에 제위 계승기마다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진다. 무굴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단 한 차례도 평화롭게 아버지에서 아들로 정권이 이양된 사례가 없다. 형제를 가두고, 죽이고, 심지어는 노쇠한 아버지 황제를 유폐하기까지 한다. 문화의 차이가 이렇게나 클 수 있구나, 그리고 그 문화적 차이가 역사적 경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구나를 새삼 느꼈다.
악바르 대제의 제위기에 대해 상세하게 배운 점도 만족스러웠다. 악바르 대제가 어떻게 국가를 경영하고 팽창시켜 나갔는지에 대해 상세히 서술되어 있는데, 악바르 대제는 '만사브다르'라는 무굴제국만의 독특한 유형의 봉건제를 토대로 제국을 통치하였다. 만사브다르 제도는 이후 무굴 제국 경영의 근간이 되는 제도로 자리매김하였다. 힌두 출신의 라지푸트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경쟁시키고 제국의 일원으로 통합했는지도 잘 설명되어 있었다.
초대 황제들인 바부르와 후마윤이 소위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도 이참에 확실히 배웠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 뿌리를 둔 바부르가 힌두스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다. 중앙아시아적 전통과 페르시아적 유산, 그리고 이슬람과 힌두교, 무굴 제국은 아시아 문화의 용광로 그 자체였다. 이 다양한 힘을 조화롭게 한 황제는 무굴 제국을 번영시켰고, 균형을 상실하게 한 황제(예컨대 지즈야를 부활시킨 황제도 있었다)는 무굴 제국을 쇠락의 길로 걷게 했다.
불과 몇십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무굴 제국의 시대이다. 내게 역사서 독서의 가장 큰 즐거움은 우리 삶의 현재에 알게 모르게 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을 더듬어가며 역추적하는 데 있다. 언젠가 인도로 여행을 갈 일이 있다면, 이번 독서 경험이 나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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