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verseas

2024 도쿄 여행 [Day.3]

무소의뿔 2024. 4. 7. 23:31

이번 도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3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이번 여행의 포인트는 도쿄를 조금 벗어나 근교의 소도시를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것!!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가는 방향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면 가마쿠라라는 해안도시가 있다. 옛 가마쿠라 막부가 도읍으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고, 사실 슬램덩크 만화 오프닝에 등장해서 유명한 작은 소도시를 관광하는 날이다.

오전에는 비 소식이 있어서 우선 긴자로 향했다. 어제 백화점을 오후 느지막히 찾아갔더니 꼼데가르송 가디건 재고가 없어서 포기했었다.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 오픈런을 했다. 10시 오픈인데, 9시 40분 정도부터 대기를 했고, 우리가 첫 번째 팀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히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가디건은 사이즈가 없었지만, 그래도 검은 와펜의 흰색 반팔티, 검은 와펜의 검정 반팔티, 빨간 와펜의 검정 피케 셔츠, 3벌을 살 수 있었다!!! 다 해서 23만원 정도이니까 가격 정도로도 엄청 혜자인 셈.ㅎㅎㅎㅎ 대만족 후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금빵으로 유명한 팡 메종에 들려서 기차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구매해 본다. 평소에는 웨이팅이 꽤 있는 빵집이지만,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씨 덕분에(?) 대기 없이 편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베이직한 소금빵 외에도 속재료를 채운 베리에이션들을 많이 팔고 있다. 가격도 한국 빵 가격에 비하면 매우 은혜롭다. 기본 소금빵, 햄치즈 소금빵, 그리고 명란 소금빵 이렇게 3개를 사서 기차에서 먹었는데 짭조름한 맛이 매우 훌륭했다.

가마쿠라로 가는 열차는 도쿄 메트로 패스로는 이용이 불가능하고 따로 구매를 해야 한다. 신주쿠에서 출발하는 JR 노선과 도쿄역에서 출발하는 JR 노선 2가지가 있는데, 긴자에서 움직이느라 도쿄 발로 정했다. 도쿄 역 내부는 재작년 여행 때 간단히 둘러본 적은 있었지만 표를 사고 이동하는 여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직접 표를 구매하고 노선을 확인하려니까, 일본어가 전혀 안 되어서 매우 고되었다. 이 줄이 맞나 저 줄이 맞나 이 개찰구가 맞나 저 라인이 맞나 많이 헤매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제대로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열차를 잘못 타서 중간에 한 번 내렸던 것은 비밀이다.)

1시 반 정도가 되어서 가마쿠라의 인근 도시인 후지사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JR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된 셈. 후지사와 역에서 에노덴 1일권을 끊고 이제 가마쿠라로 진입해 본다. 에노덴은 후지사와에서 가마쿠라까지 이어지는 경전철 노선으로, 느린 속도로 시골 마을을 도는 이 지역의 명물이다. 에노덴에서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열차의 맨 처음 칸 또는 맨 마지막 칸을 사수해야 한다. 운이 좋아서 아름다운 풍광을 마음껏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가마쿠라로 가는 도중 하세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내려 먼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 지역의 유명한 음식으로 '시라스동'이 있다. 시라스동은 우리 말로 번역하면 '잔멸치덮밥' 정도가 될텐데, 껍질을 벗겨내 하얀 멸치를 가볍게 데쳐 덮밥으로 내는 음식이다. 음식점에 따라서는 데치지 않은 생멸치를 쓰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귀한 식사에 술이 빠질 수 없다. 아사히 생맥주로 목을 우선 축여본다.

드디어 영접한 시라스동!! 걱정했던 것보다는 맛이 비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맛은 고소한 편. 우리 밥상에서는 보통 멸치는 볶음 반찬으로 올라오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담백한 맛이었다. 사나이답게 다른 재료가 올라가지 않은 생 시라스동을 즐겼다. 사이드 메뉴로 날 것의 시라스를 추가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생 시라스가 없다고 한다.

오후가 되니 날이 갠다.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하세의 골목골목을 돌며 소도시의 여유를 만끽해본다.

삿포로 인근 오타루에 본점을 둔 오르골당의 분점이 여기 하세에 있다고 하여 들려보았다. 5년 전 삿포로 여행 때 들린 오르골당에서 기분으로 4,000엔짜리 오르골을 하나 샀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몇 년전 당근으로 팔아버렸다. 막상 사도 태옆을 감고 오르골 소리를 듣는 일이 많지 않았었다.

마을에서 조금만 걸어나오면 해안도로와 함께 파도가 멋진 가마쿠라의 바다를 즐길 수 있다. 해조류 때문에 비릿한 내음이 강하긴 했지만, 풍경 하나만큼은 끝내준다.

하세에는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화과자 가게가 있다. 가게 규모가 작아 하루에 내는 화과자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점심을 먹은 직후라 단 것이 딱히 당기지 않아서 가게를 들르진 않았다.

다시 에노덴을 타고 가마쿠라 역으로 이동해 본다. 이제는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졌다. 역 바로 앞 가게에서 말차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서 먹어본다. 진한 말차의 맛이 입 안 가득 퍼지는 것이 달콤하여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 비가 왔었나 싶을 정도로 맑은 하늘이다. 가마쿠라 여행의 핵심은 고마치도리 거리와 쓰루가오카하치만구 두 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마치도리는 쓰루가오카하치만구까지 이어지는 상점가이고 쓰루가오카하치만구는 11세기에 건립된 역사가 깊은 신사이다. 비록 재건된 것이긴 하지만 꽤 고즈넉한 맛이 훌륭하다.

신사 근처에 꽤 훌륭한 못이 있어 고즈넉함은 배가 된다. 잠시 자연을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가마쿠라 관광을 마치고 다시 에노덴을 타고 가마쿠라코코마에 역으로 향한다. 우리 말로 하면, 가마쿠라 고교앞 역 정도가 된다. 여기가 바로 슬램덩크 오프닝 삽화의 배경이 된 바로 그 바다이다. 잘게 부서지는 포말이 인상적인 청량한 바다이다.

강백호와 에노덴, 그리고 그 뒤로 윤슬이 아름다운 가마쿠라의 바다.

인파가 많아 슬램덩크와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는 꽤나 흡족한 사진을 찍었다. 아예 교통 통제원이 상주하면서 안전 사고를 예방하고 있었는데, 사실 슬램덩크의 구도대로 사진을 찍으려면 차도로 뛰어들어야 하는 판이라,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가마쿠라의 정취를 꽤나 만족스럽게 담아냈다고 자부한다.

에노덴 사진도 충분히 남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바다를 즐겨본다. 포말이 마치 탄산음료처럼 터져나오는 것이 청량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에노시마 섬까지 들려서 일몰을 보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고 많이 걸어서 체력이 방전된 상황. 과감하게 에노시마 섬을 패스하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쇼난해안공원으로 걸어간 후 일몰을 보기로 했다. 쇼난카이간고엔 역에을 내리면 바로 앞에 있는 Good Man Coffee에서 드립 커피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쇼난해안공원으로 향했다. 카페는 분위기도 좋고 커피 맛도 좋았지만, 사실 드립을 내리는데 꽤 시간이 소요되어서 이러다가 일몰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어차피 해는 서쪽으로 지고, 서편에는 산맥이 걸려 있어서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를 볼 수는 없었다. 괜히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갚진 풍경을 눈에 실컷 담고 올 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바다 너머 후지산 뒤로 펼쳐지는 일몰의 광경이었다. 낮은 구름이 조금 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선명하게 후지산을 목도한 것은 처음이라 울림이 있었다. 언젠가는 꼭 저 후지산을 오르리라 속으로 다짐하며, 마저 바다와 산과 석양을 즐기며 잠시 감상에 젖어본다.

JR을 타고 뒤늦게 시부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가고 싶었던 스시 가게가 있었지만, 아뿔싸 금요일의 시부야는 웨이팅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근처의 스시 가게를 급히 섭외했지만, 퀄리티가 다소 떨어졌다. 역시 일본의 가격표는 과장이나 축소가 없다. 딱 그 가격만큼의 맛을 보여준다.

아쉬운 마음에 호텔 근처의 바에서 마르게리따와 와인을 주문해 요기를 했다. 번화가가 아닌 한적한 베드타운 같은 곳이지만, 또 이런 곳에서 즐기는 우연한 한 끼와 한 잔이 추억이 된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편털로 달래본다. 맥주와 편의점 도시락으로 이렇게 도쿄 여행 3일차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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