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untain/BAC 100대 명산

[BAC 100대 명산] [003] 공주 계룡산 2024. 3. 19. 화

무소의뿔 2024. 3. 20. 11:38

오늘은 대전지방법원에서 10:30 재판이 있는 날이다. 재판을 마치고 100대 명산 3번째 종주로 계룡산 등정에 도전하였다. 대전 시내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면 동학사에 도착한다. 동학사에서 은선폭포를 지나 관음봉까지 다녀오는 코스로 등정을 하였다.

동학사까지 1.2km 정도 아스팔트 포장된 도로가 있어 차가 드나들 수 있기는 하지만, 차단기가 있고 동학사와 관계된 인물만 차량 출입이 가능하다. 나 같은 일반인은 동학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1.2km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 구간은 경사도 없고 차도 옆에 인도가 잘 나 있어서 워밍업 구간 정도로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입구에서부터 1km는 족히 걸어올라가야 한다. 계룡산 동학사, Chicken Dragon Mountain East Crane Temple.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찰을 찾는 객이 많지는 않았다. 길은 매우 한산했다.

포장이 잘 되어 있다. 주지스님을 뵈러 왔다고 하고 그냥 동학사 안쪽까지 차량으로 들이밀 걸 그랬나보다.

동학사를 지나면 비로소 산길이 시작된다. 이 지점부터 관음봉까지는 약 2.5km이다.

성격 급한 친구가 홀로 꽃을 피워냈다. 아직 겨우내 쌓인 낙엽이 채 바람에 흩겨가기도 전에 먼저 앞서서 봄을 알려준다. 바야흐로 봄의 초입이다.

완만한 산길을 조금 걷다 보면, 상당한 계단이 등장한다. 물론 직전에 다녀온 팔공산 지옥의 700 계단에 비하면 경사가 급하진 않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계단을 오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계단 중간에 전망대가 있어서 황적봉과 천왕봉의 절경을 잠시 즐길 수 있다.

저 멀리 황적봉이 보인다. 오늘은 날이 흐리고 조금씩 비가 내리는 날이라 시야가 다소 제한되는 편이다.

동학사 입구에서 은선폭포 전망대까지는 약 1.2km 길이다. 올라가는 표지판 중에 0.9km라고 적혀 있는 것이 있으나, 애플워치로 실제 거리를 측정해 보니 1.2km가 맞다. 계단 오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계단만 정복하고 나면 은선폭포까지는 많이 어려운 길은 아니다.

숨을 은, 신선 선, 신선이 숨어 노니는 폭포라니, 작명 센스가 엄청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 이미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온 내게는 별다른 감흥은 없다.

유량이 풍부한 시기가 아니라 폭포는 거의 흔적만 보인다. 여름에 유량이 풍부할 때 오면, 제법 볼만한 경치일 듯 싶다.

은선폭포에서 관음봉까지는 다시 1.2km 길이다. 여기서 이번 계룡산 등정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발생했는데, 앞의 아주머니들을 좇아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등산로를 이탈하고 말았다. 사실 한참을 오르기까지 등산로를 이탈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길이 포장이 안 되어 있고 사람 발길을 탄 흔적이 좀 적긴 했지만, 군데군데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었고, 아주는 아니더라도 내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길 비스무리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길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봉우리의 거의 정상에 다다를 때가 되어서야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던가. 저 멀리 제대로 된 등산로에서 3분이서 오신 등산객 분들이 엄한 곳에서 헤매는 나를 발견하고 메아리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들이 공원관리사무소에 확인해 준 결과, 지금 위치에서 하산하는 것이 더 위험하므로, 차라리 조심히 올라서 저 능선과 만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안전한 코스라고 한다. 이미 이 봉우리에 오르기까지도 그래 왔지만, 네 발로 기다시피해서 길이 아닌 곳으로 마저 나아갔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에 도착했고 아저씨들과 만날 수 있었다. 한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물 한 병을 건네 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양 않고 물 한 병을 다 비워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마저 관음봉으로 행진하였다. 여기서부터는 부과 300m 거리이다. 헤메긴 했어도 관음봉을 향해 오긴 온 셈이다.

마지막 철계단만 오르면 관음봉이다. 그래, 이게 정상으로 가는 산길이지... 어쩐지 돌은 흔들리고 낙엽은 수북하고... 군데군데의 쓰레기들은 몇십년 전의 것이거나, 아니면 나처럼 길을 잘못 든 불쌍한 객의 흔적이었을까?

우여곡절 끝에 등정 1시간 40분만에 관음봉에 올라섰다. 은선폭포 이후에 헤매지 않았더라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했을 듯 하다.

관음봉에 서서 산수화 같은 풍경을 잠시 즐겨본다. 다소 흐린 날이지만, 나름 동양화 같은 풍광이 운치가 좋다.

외가가 대전이라 자주 들렸지만, 계룡산을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간을 내서 계룡산에 오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다.

관음봉 정상석도 사진으로 남겨본다.

아까 조난 위기에서 날 구해준 아저씨를 다시 만나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물론 나도 사진을 찍어드렸다. 음, 조난에서 구해준 것은 참 고맙지만, 사진은 다소 못 나왔다!

차라리 인물사진 모드로 찍은 내 셀카가 나은 듯!!

정상에 올랐으니 다시 하산을 할 차례다. 이정표를 보니, 나는 완전히 거꾸로 온 셈이다.

저 봉우리의 우측으로 넓게 'ㄷ'자로 돌아오는 것이 등산로였는데, 나는 좌측으로 길이 아닌 곳으로 나아갔던 것...

무사히 하산을 마치고, 계룡산 스타벅스에서 업무를 좀 보다가 산행을 마무리하는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외할머니가 살던 곳이 유성구여서 끌렸을까, 유성복집에서 복지리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 해본다.

까치복 지리로 하루동안의 노고를 위로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의 세 번째 BAC 등정이 끝이 난다. 다음은 대구의 비슬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