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Overseas

2023 남미 여행 [Day.21]

무소의뿔 2023. 5. 3. 20:59

23. 4. 30. 일요일

드디어 아르헨티나에서의 첫 투어를 시작하는 날이다. 후지 민박에서는 간단한 가정식으로 아침을 챙겨주는데 오늘은 카레라이스와 치킨너겟을 준비해주셨다. 군대에서 카레에 질려버려서 서울에서는 카레를 거의 먹지 않는데, 오랜만에 쌀밥에 카레를 먹으니 맛있었다. 김치도 있었는데 익숙한 배추의 맛이 아니라서 다소 별로였다. 사실 내가 예약한 빙하 투어는 10시 출발이라 이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주위가 부산스러워지는 바람에 엉겁결에 잠에서 깼다. 아침만 챙겨 먹고 다시 살짝 잠에 들었다가 투어 준비를 마치고 10시에 투어를 시작하였다.

원래는 페리토 모레노 빙하 깊숙한 곳까지 다녀올 수 있는 ‘빅 아이스 투어’를 하고 싶었는데 예약이 마감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미니 트레킹 투어’를 다녀왔다. 이곳 칼라파테의 빙하 투어는 하나의 회사가 독점하고 있어서 가격이 상당한데, 미니 트레킹 투어가 58,000 페소로 약 140 달러에 해당하고, 빅 아이스 투어는 여기에 120 달러 정도가 더 붙는다.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이 막장이라 환율이 나날이 치솟아서 몇 개월 단위로 페소로 표기되는 투어 가격이 계속 오른다. 미니 트레킹 투어가 4월까지 58,000 페소고 5월부터는 더 오르는데 나는 운 좋게 4월의 마지막 날에 투어를 다녀오는 덕분에 그나마 괜찮은 가격에 투어를 다녀올 수 있었다. 국립공원 입장료 5,500 페소를 별도로 징수하는데, 이전에 국립공원에 방문한 적이 있다면 그 반값이 2,750 페소에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후지 민박에서 만난 동생이 자기는 투어를 이미 다녀왔다면서 입장권을 준 덕분에 입장료도 아낄 수 있었다.

차로 약 한 시간 반을 달리면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본격적인 빙하 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멀리서 모레노 빙하를 살짝 맛볼 수 있는 전망대에 들렀다. 빙하를 생전 처음 보는거라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을 해야하는지 아직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약 2시간을 보내면서 페리토 모레노 빙하를 전면과 측면에서 두루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저 멀리 산의 깊은 곳에서부터 형성된 빙하가 계속 자라나 강의 하구로 흘러내려온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눈으로 마주하는 빙하는 산 속에서 400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빙하는 옅은 하늘색을 띠고 있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하얀색이지만 빛의 투과 등에 의해 하늘색으로 비치는 것. 빙하의 단면을 자세히 보면 어떤 시기에 퇴적되었느냐를 알 수 있는 층이 나 있다.

마치 막대 아이스크림을 일렬로 꽂아놓은 듯한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빙멍을 때리고 있으면 가끔씩 빙하에 균열이 가해지면서 빙하 끝자락이 부수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그 순간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았다. 산사태가 나는 소리와 함께 빙하가 부숴지면서 호수로 떨어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따끔씩은 저 산 안 쪽에서 빙하가 부숴지는 굉음이 들리기도 한다. 마치 산사태가 난 듯 우뢰와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리 살펴봐도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얼음들이 이렇게 두껍게 길게 그리고 깊게 쌓여있을까.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사실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 가장 큰 빙하는 아니라고 한다. 접근성이 좋아서 유명한 것인데, 이 산맥 안쪽으로 엄청난 빙하가 켜켜이 쌓여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 놀랍기만 하다.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투어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한다. 페리를 타고 호수의 건너편으로 이동하여 빙하 위를 트레킹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 위로 퇴적된 빙하 쪽은 균열과 해빙 등의 위험이 있어서 안전하게 땅 위로 퇴적된 빙하 쪽에서 트레킹을 하는 것.

페리에서 빙하를 조금 더 가까이서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빙하와 맑은 호수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본격적인 빙하 트레킹이 시작된다. 트레킹 전에 아이젠을 채워주는데, 아이젠이 상당히 무거워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빙하 내부로 들어오니 거대한 얼음 산맥이 펼쳐진다. 끝없이 이어진 얼음 위를 걷는 느낌이 낯설었다.

빙하 곳곳에 산 깊은데서부터 딸려온 흙이나 나뭇잎이 있다. 거뭇하게 보이는 부분이 바로 빙하의 초기 형성기에 함께 퇴적되었던 흙이다.

얼음으로 만든 왕관 같은 빙하의 모습이다. 내 눈에는 하얀 빙하보다 약간 빛을 받아서 하늘색으로 비치는 빙하가 훨씬 더 예쁘다.

토레스 델 파이네와 마찬가지로 자연 환경이 너무 깨끗해서 빙하 녹은 물을 바로 마셔도 전혀 상관이 없다. 물맛은 오히려 토레스 델 파이네보다 더 좋은 듯하다.

빙하 곳곳에는 얼음이 녹아 형성된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은 깊이가 20m에 달한다고 한다. 구멍 안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심도가 깊어질수록 선명한 푸른 색을 띤다.

1시간 여의 미니 트레킹이 끝나고 나면 빙하로 언더락을 만들어준다. 가이드가 깨끗한 얼음을 채취하는 중이다. 곡괭이질 몇 번에 금세 양동이에 가득 찰만큼 얼음을 모을 수 있다.

위스키에 빙하를 넣어 즉석으로 만든 언더락 한 잔. 화학 성분이야 일반 얼음과 동일하겠지만 모레노 빙하를 직접 맛본다는 기분이 좋았다.

미니 트레킹을 마치면 기념으로 뱃지를 준다. 딱히 쓸 데는 없지만 기념이니까 챙겨본다.

투어를 마치고 칼라파테로 돌아오니 이미 8시가 되었다. 급하게 짐만 정리하고 다운타운으로 내려가 본다. 어제 칼라파테에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페소 환전을 못한 상황. 민박에 머무는 여행객에게 우선 1만 페소를 빌리긴 했는데 여행에는 턱 없이 부족한 돈이다. 하지만 칼라파테도 작은 마을이라 이미 환전소는 다 문을 닫았고, 어쩔 수 없이 저녁부터 해결할 생각으로 다운타운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우선 시원하게 생맥주 한 잔을 마신다.

어제는 소 모둠을 먹었고, 오늘은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 스테이크 크기도 놀라운데 가격도 놀랍다. 5,700 페소밖에 안 하는데, 13 달러밖에 안 하는 셈. 양은 우리나라의 두 배고 가격은 우리나라의 절반이다. 명성에 걸맞게 맛도 훌륭하다. 배불리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다음날 여정을 준비한다. 내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피츠로이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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